작아도 괜찮아, 어느 스몰리스트의 이야기 #09.
지난 회사를 다닐 때의 일이었다. 사무실이 이사를 했다. 그런데 마케팅 팀과 커뮤니케이션 팀 사이에 싸움이 났다. 오픈된 넓은 사무실 공간에서 자리 다툼이 난 게 사단이었다. 서로 조금이라도 영역을 넓히기 위해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그 회사를 나와야 했다. 경영이 어려워진 탓이다. 그래봐야 몇십 센티미터의 수준, 그때 그들은 왜 그렇게 싸웠던 것일까?
제임스 웹(James Webb)의 우주 사진이 공개되던 날, 나는 나사의 웹사이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려 18조 원이 투자된 우주 망원경, 그로부터 전송되어진 사진은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이 망원경은 밤하늘의 손끝만한 공간에 초점을 맞추어 사진을 찍는다. 이전에는 텅 빈 공간이었다. 하지만 제임스 웹으로 찍어보니 그 안에 수많은 은하가 존재하고 있었다. 무려 1조 개의 별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별들이 탄생하는 우주의 협곡. 어떤 철학자의 말보다 울림이 큰 그런 사진들이었다.
우주의 발견은 정말 우리의 일상과 무관한 것일까? 이 사진을 보고도 우리가 여전히 비교하고 경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십 센티의 공간을 두고 싸울 때 나는 심지어 그 싸움에 끼지도 못했다. 내 공간은 다른 팀들이 자리잡고 남은 구석진 자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다. 이때의 공간은 자존심이자, 회사에서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래서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회사에서 발간하는 격월간 전문지의 판권 자리 싸움도 치열했다. 어찌나 신경을 썼던지 나중에는 원탁 형태로 이름을 배치하기도 했다. 그래봐야 무엇하나. 거기서도 맨 처음 자리와 나중 자리는 정해져 있는데 말이다.
크고 작음은 비교 대상이 있을 때 유의미한 것이다. 제임스 웹의 우주 사진은 우리 인생이 얼마나 거기서 거기인지를 보여주는 상대적인 지표가 된다. 마치 손주들이 과자를 두고 벌이는 싸움을 할아버지가 흐뭇하게 바라보는 형국이다. 우리가 작다고 좌절하는 이유도, 성공했다고 우쭐하는 이유도 그 비교 대상이 회사 안에, 인생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겨우 2,3년의 수명을 가진 회사에서 우리는 하루 종일 치열하게 싸웠다. 좌절하고 우쭐해했다. 그런데 지나고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오해는 마시라. 우주 얘기 하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얘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우주는 우주고 우리는 우리다. 나는 오히려 우주 사진을 볼 때마다 나의 몸도 하나의 우주겠거니 생각하곤 한다. 내 세포 하나 하나가 은하계만큼 크다고 생각한다. 우주가 넓은 만큼 내 존재 가치도 귀하다. 인생은 결코 덧없지 않다. 하지만 우리 삶의 많은 비교와 경쟁이 사실은 그만한 가치를 지니지 않을 때가 더 많음도 잘 알고 있다. 그 비교와 경쟁에 응당 따르는 좌절과 낙망, 자기 비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적어도 50년을 살아본 결과는 그랬다.
서울 강남에 '모두의연구소'란 회사가 있다. 이곳은 AI를 비롯한 다양한 지식을 배우는 일종의 사설 연구소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지식을 배우는 곳에 교수나 선생님이 따로 없다.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토론하며 집단지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인공지능을 배운다. 그리고 내노라 하는 기업들에 취업한다. 이 회사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경쟁은 나와 하는 것이다. 남과는 상생하는 것이다.' 나는 실제로 이들의 수업을 참관해보고 알았다. 관심과 흥미가 같은 사람들이 모이면 시너지가 난다. 만약 회사를 만든다면 이런 곳으로 만들겠다고 혼자 다짐했다.
우주를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밤을 맞으면 된다. 어릴 때는 집 앞 마당에 자리를 깔아놓고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그때마다 은하수를 보았고 별똥별을 보았다. 그때 바라본 하늘은 때로는 놀랍기도 했고 때로는 두렵기도 했다. 인생을 바라보는 우리 눈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낮에는 최선을 다해 일상을 살아가지만, 밤에는 유한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겸손해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겸손함으로 다시 다음의 하루를 살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힘든 일을 겪거나 의기소침할 때면 우주를 찍은 사진을 보자. 시간이 된다면 지리산 노고단의 밤 하늘을 바라보자.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래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