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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꿀 수 없다면, 게임의 룰을 바꾸자

작아도 괜찮아, 어느 스몰리스트의 이야기 #10.

브랜드 전문지에서 7년을 일했다. 수없이 많은 아티클을 썼다. 하지만 글로써 인정받아본 적은 거의 없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너무 쉽게 쓴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때 쓴 책(격월간으로 30여 권 정도가 나왔다)들을 다시 읽어 보았다. 브랜드 당 원고 한 편이 10여 페이지에 달한다. 논문을 방불케 하는 길이다. 참고 서적에서 비롯한 현란한 인용구들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해외 석학들의 이론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한 마디로 '있어보이는' 글들이다. 하지만 이때 쓴 많은 아티클들은 지금도 나도 읽기 어렵다. 어렵지만 갖고 싶은 책, 읽지 않으면 불안안 책, 이것이 어쩌면 그 책의 컨셉이었는지도 모른다.


오해는 마시기 바란다. 이때 함께 일한 에디터들은 대단한 능력자들이다. 지금도 다양한 현업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종종 연락도 하는 친구들이다. 논리적인 글쓰기에 대한 이들의 필력에 다른 의심은 전혀 없다. 이 친구들은 외국어 능력까지 탁월했다.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하워드 가드너 등의 대학자들을 직접 인터뷰했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 일할 때는 나는 언제나 엄청난 열등감을 달고 살았다. 10살의 나이 차이가 주는 트렌드 인지 부족도 큰 문제였다. 나는 그때 브랜드를 잘 몰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하지만 나는 한 가지를 더 알아야 했다. 모두가 그렇게 어려운 글만을 원하지는 않았다. 어떤 이들은 내가 쓴 쉬운 글들을 원하고 있었다.


나는 한 마디로 머리가 나쁜 사람이다.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는 글들을 잘 쓰지 못했다. 다만 한 번 이해하면 쉽게 쓰는데 능했다. 사람들은 내 글이 '잘 읽힌다'고 말했다.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에 나와보니 내가 쓴 글들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 5년 간 브런치에 1,000여 편의 글을 썼다. 10여 권 이상의 대필 및 브랜드 북 작업을 했다. 내 책만 세 권을 써냈다. 그 중 한 권은 10쇄를 찍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때의 단점이 고스란히 장점이 되었다. 그때 쓴 브랜드 전문지 중에 10쇄를 찍은 책은 없다. 그 책들이 가치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지금도 수시로 그 책들을 꺼내어 참고하고 감탄한다. 다만 그때의 글과 지금의 내 글은 스타일이 다를 뿐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탁월함을 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이러한 그들의 강점이 발현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장점을 모른채 타인과의 비교와 경쟁을 통해 살아간다. 이건 불행한 일이다. 아니 불공정한 일이다. 지금의 수능 시험은 암기력과 성실함으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교력이나 자연친화력 등의 능력은 점수에 반영되기 어렵다. 토론하는 능력만으로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사회는 어떤가. 사람들을 좋아하고 말까지 잘한다면 이보다 좋은 인재가 또 어디 있을까?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유튜브의 등장이다. 유튜브는 기존의 학습 능력과는 또 다른 능력을 요구한다. 게임의 룰이 달라진 셈이다. 그리고 거기엔 또 다른 의미의 어마어마한 능력자들이 어마어마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사람 중 한 사람은 김작가이다. 나처럼 지방대를 나온 그는 토익 200점의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었다. 무슨 말이냐고? 영어로 경쟁이 힘들다 판단한 그는 그 특유의 친화력으로 사람들을 섭외하고 영상을 찍었다. 그 중 한 가지가 바로 수능 만점자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들이다. 그 자신이 가지지 못한 강점을 가진 이들을 역으로 이용?했다. 그리고 '나는 당신처럼 공부하지 않았다'라는 엄청나게 매력적인 컨셉의 책을 써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현재 우리나라 상위 1%의 수입을 올리는 고소득자가 되었다.


단점은 상대적인 것이다. 시대가 달라지만 장점의 조건도 달라진다. 문제는 지금이 '다양성'의 시대라는 것이다. 수능 점수만으로 줄을 세우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먹방, 언박싱, 커버송, 격투기, 유머, 기타 연주... 수능과는 전혀 상관없는 능력으로 사랑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졌는가.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나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스스로를 닥달했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나는 죽어도 어려운 글은 쓰지 못하는 사람이다.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시장은 나처럼 쉽게 쓰는 사람도 요구하고 있다. 이때 비교는 무의미해진다. 나도 내 스타일의 글쓰기로도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수입은 그때보다 네다섯 배는 늘었다. 물론 그때 함께 일한 에디터들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그런 능력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는 경쟁의 시대를 살았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살아야 할 시대는 상생의 시대다. 독립해서 일한지 5년 째, 나는 수시로 내가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협업을 한다. 저마다 다른 능력으로 함께 일하니 비교하거나 다툴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 존중하며 일한다. 감탄하며 일한다. 나는 그들처럼 사진을 찍지 못한다. 디자인을 하지 못한다. 그들만큼의 스펙도 없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덕분에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나의 가치도 함께 올라간다. 그러니 나의 약점과 단점에 매달리지 말자. 내가 가진 작은 것들에 주눅들지 말자. 그보다는 게임의 룰을 바꿔버리자. 다른 운동장(SNS 채널 같은)에서 뛰어 보자. 글로벌한 채널에서 경쟁해보자. 당신의 삶에 작은 혁명이 일어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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