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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흰자가 어때서, 로컬이 어때서

작아도 괜찮아, 어느 스몰리스트의 이야기 #11.

얼마 전 '나의 해방일지'를 보았다. 재밌는 사실은 이 드라마의 배경이 '경기도'라는 사실이었다. 주인공은 자신이 사는 경기도를 서울이라는 노른자를 둘러싼 흰자로 표현을 했다. 실제로 노른자가 건강에 더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주류에 들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이는 드라마 속 인물들을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대학만 해도 '인서울'이 아니면 모두 지잡대로 치부하는 시대 아닌가. 지나치게 자학적인 표현이 아닌가 싶다가도 일부분은 공감이 갔다. 나 역시 서울에 입성하지 못하고 경기도를 전전?하고 있는 중이니까.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에서는 로컬이 사랑받고 있다. 독립하기 전 회사를 다닐 때의 일이었다. 남자 디자이너 한 사람이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행지가 부산이라는 거였다. 중3때 이후로 줄곧 부산에서 살았던 나는 그 장면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부산을 왜 가지? 볼 데가 어디 있다고? 이런 의문이 시대에 뒤떨어진 질문이라는 걸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는 부산 여행을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부산에서도 힙한 브랜드들이 많이 등장한다. 부산이 등장하는 TV 화면을 보면서 이제 더는 놀라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비단 이게 부산만의 일일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출판사 중 하나는 통영에 본사가 있다. '남해의 봄날'이라는 출판사다. 지역에 특화된 콘텐츠로 차별화에 성공한 출판 브랜드다. 춘천 하면 이제 감자빵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감자 농사를 핫한 브랜드로 바꿔 놓았다. 와이프가 연신 감탄하며 감자빵을 먹던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 부산을 대표하는 삼진어묵과 덕화명란은 어떤가. 2세 경영이 성공적으로 궤도에 오르면서 두 브랜드는 내가 가장 인터뷰하고 싶은 브랜드가 되었다. 이 브랜드들은 이제 서울의 주요 백화점에서 만날 수 있다. 이들의 변화가 반가운 이유는 로컬 브랜드의 가능성 때문이다. 지방은 이제 촌스러운 것들의 대명사가 아니다. 새롭고 힙하고 핫한 것들이 되어가고 있다.


'지방'이라는 말은 오염되어 있다. 노른자를 둘러싼 계란의 흰자처럼 한때는 변두리와 비주류를 상징하는 단어로 읽히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역과 로컬에 기반을 두고 성장하는 브랜드들이 적지 않다. 못생기고 버려진 농산물로 화장품을 만드는 회사가 있다. 이들은 지역의 비품 농산물을 유통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사들여 원료로 삼은 후 고품질의 화장품을 만든다. 이 회사의 이름은 브로컬리(BRAND + LOCALLY)다. 이들은 구절초로 유명한 전남 화순 수만리에서 '온도'라는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었다. 구절초가 피부 진정에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덕분에 구절초의 판로가 막힌 이 마을도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서울은 우리나라의 수도이자 정치, 경제의 중심지이다. 하지만 서울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미국의 대학만 해도 특성화된 명문 대학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SKY가 이를 대신한다. 그리고 이런 서울과 지방의 구도는 우리의 사고에도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것을 주류와 비주류, 중심과 변두리로 이해한다. 시장 역시 한 두개의 신데렐라 브랜드와 난장이 브랜드들로 재편된다.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할까? 각각의 브랜드들이 각자 다른 이유로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나'라는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주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러나 기준이 달라지면 나의 가치도 바뀐다. SKY를 나오지 못해도, 대기업을 다니지 못해도, 나만의 차별화된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로컬을 핫한 키워드로 바꿔가고 있는 지방의 브랜드들처럼. 이제 우리를 스스로 만든 '작음'의 카테고리에서 해방시키자. 제주에 가면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우뭇가사리 푸딩, '우무'를 먹어보자. 해녀를 직접 만날 수 있는 '해녀의 부엌'을 찾아보자. 그리고 나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재발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자. 나의 작음에 갇혀 나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말자. 노른자를 일부러 골라내고 만드는 수많은 요리법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