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도 괜찮아, 어느 스몰리스트의 이야기 #12.
'놋토'라는 일본 시계 브랜드가 있다. 이 브랜드의 컨셉은 'Made in Japan'이다. 시계 스트랩과 같은 부품을 일본의 유명 공방이나 브랜드로부터 수급한다. 놋토가 하는 일은 전국 각지의 파트너들이 보내온 시계 부품들을 '커스터마이징'하는 일이다. 이렇게 완성된 시계는 무려 2만여 가지의 조합이 가능하다.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시계를 가질 수 있다. 나는 우연히 이들이 만든 손바닥만한 브랜드북 하나를 볼 수 있었다. 거기에는 다양한 시계 부품이 이미지와 함께 이를 생산한 일본 장인들의 사진이 나란히 소개되고 있었다. 이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매력이 한층 배가되는 기분이었다.
28년 동안 논술을 가르쳐온 어느 원장님을 만났다. 나이 예순을 훌쩍 넘기셨지만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서 에너지가 퐁퐁 솟는 분이셨다. 이 분의 제안은 다음과 같았다. 글쓰기에 관한 한 누구보다도 잘 가르칠 자신이 있다. 그런데 요즘 커뮤니티로 글쓰기 수업을 하는 곳들을 보니 생각보다 수준이 낮았다. 걔중에는 사기꾼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니 함께 글쓰기, 책쓰기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커뮤니티 구성과 운영을 비롯한 마케팅, 브랜딩은 내가 전담하는 조건이었다. 왜곡된 글쓰기 교육 시장의 문제를 나 역시 경험했기에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서로 자신있는 영역이 다르기에 가능한 콜라보였다.
지난 5년 간 다양한 사람들과 회사를 만나 함께 일했다. 그러면서 비즈니스를 바라보는 내 눈도 조금은 성장했다. 나는 아무리 큰 회사라 해도 다시는 출근할 생각이 없다. 나는 놋토의 시계줄을 만드는 장인처럼 혼자 일하는 것이 편한 사람이다. 하지만 실제로 혼자 일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다. 서로 다른 각자의 장점을 연결해 협업하는 일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렇듯 콜라보를 통해 작지만 큰 회사들을 만들어온 사례가 수없이 많다. 제휴 마케팅은 브랜딩의 영역에서도 꽤나 매력적인 수단이 된지 오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곰표가 만든 맥주와 팝콘, 오리털 파카를 떠올려보자. 브랜드 이미지만 선명하다면 이런 콜라보만큼 효율적인 마케팅 방법도 다시 없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그럴만한 매력을 가진 사람, 혹은 브랜드인가의 여부다. 동네 빵집이나 시골의 허름한 식당이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강점에 집중해 양이 아닌 질적인 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삼성과 현대, LG와 애플이 협업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개성 넘치는 두 개의 작은 브랜드가 콜라보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각자의 장점이 선명하고 집중하는 영역이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커다란 회사의 대표였다면 논술 학원 원장님이 나를 찾았을까? 이러한 협업을 통한 확장의 가능성이 늘 열여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은 사람과 사람, 브랜드와 브랜드가 만나면 보다 더 큰 일, 많은 일을 할 수가 있다. 홀로 일하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고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