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도 괜찮아, 어느 스몰리스트의 이야기 #13.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그 날을 기억한다. 분홍색 점퍼에 분홍색 안경을 쓴 그때의 아이 모습이 집 앞에서 찍은 사진 만큼이나 눈 앞에 선하다. 우리 부부는 창문 너머로 발갛게 상기된 아이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유난히 사교성이 좋은 아이라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 눈에 놀란 거북이 눈을 한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한 아이의 얼굴이 들어왔다. 괜스레 마음이 쓰였다. 과연 저 개구쟁이 아이들 속에서 학교 생활을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마치 시골 학교에 전학을 가서 내내 놀림을 당했던 나 자신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딸 아이는 이제 어엿한 고등학생이 되었다.
앞서 말한 눈이 똥그란 아이의 이름은 민서였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민서는 둘째 희원이의 베프 중 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집도 가까웠다. 더 놀라운 일은 민서가 걔중에서 가장 트렌드에 민감하고 리더십이 있는 아이라는 것이다. 일찌감치 진로를 정해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개구지고 당찬 행동에 나는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어쩌면 민서는 원래 그런 아이였을 것이다. 그저 내가 감정 이입을 해서 그런 아이로 오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때의 민서에게 그토록 마음이 갔던 것일까? 아마도 나 자신이 세상 속에서 그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평균의 삶을 살고 싶었다. 남들 만큼만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 남들보다 항상 주먹 하나만큼 작았던 키가 나의 평균의 삶을 가로막았다. 넋살 좋은 농담 하나 받아치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 항상 나를 주눅 들게 했다. 하다못해 회식 자리에서 주고 받는 편한 농담들에도 나는 잘 끼지 못했다. 심지어 워크샵을 가서 게임이라도 할라 치면 언제나 맨 나중에 선택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나는 언제나 무리의 주류에 끼지 못하고 겉돌고 있었다. 친구들도 그런 나를 깍두기 정도로 보았을 것이다. 더 좋은 학교를 가고 더 좋은 회사를 가도 그 시선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소심하고 열등한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달라진 건 혼자 일하면서부터다. 나를 칭찬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하고 칭찬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레퍼런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대여섯 장에 이르는 이력서를 보내면 거의 대부분 일을 딸 수 있는 상황에까지 다다랐다. 이제는 친구들에게 겁없이 소고기를 살 정도로 재정적인 여유도 생겼다. 가끔은 월세 사는 내가 왜 집 있는 친구들에게 밥을 사야 하는지 의아할 때가 있다. 하지만 아깝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저 곁에 있는 친구들이 소중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올 초에는 가족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지난 제주도 여행때 둘째는 젖먹이였다. 둘째는 십 수년 만에 다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얼마 전 지인의 도움으로 강점 혁명 책에 나오는 테스트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책은 각 사람의 강점을 5가지 테마로 보여준다. 대학생 무렵 첫 번째 검사를 받았으니 무려 3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셈이라 흥미로웠다. 그런데 내 기억 속에 있는 하나의 테마가 이번 검사에서도 동일하게 나왔다. 그건 바로 '최상화' 테마였다. 소심하기 그지없던 그 시절에도 나의 강점은 최상화라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하지만 찬찬히 읽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나는 주변의 지지와 응원이 있을 때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그건 30년 전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내가 비로소 나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도, 어느 작은 화장품 회사 대표가 나를 인정해주던 그 시점부터였다.
나는 민서의 그 동그랗고 겁에 질린 그 표정을 지금도 기억한다. 아마도 그 모습에서 나는 내 삶을 가로막고 있던 소심하고 주눅들어 있는 나의 민낯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 모습의 일부일 뿐이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조금 예민하고 겁이 많을 뿐, 제대로 된 환경을 만나면 얼마든지 신나고 당당하게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주변 환경을 한 번 더 생각해보자. 나를 인정하고 지지해주는 모임이나 그룹을 적극적으로 찾아보자. '나다움'이란 결국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진짜 민서는 내가 상상하던 그 민서가 아니었다. 그건 나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를 작다고 생각하는 당신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