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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까칠하지만, 괜찮습니다

작아도 괜찮아, 어느 스몰리스트의 이야기 #14.

하나 뿐인 처제는 영화관에 가지 않는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집에서 영화를 보는게 더 좋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뿐인 팔걸이 때문에 신경전을 벌이거나, 의자를 발로 차거나,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다소 흔한 일이다. 영화를 보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더니 뒷사람의 발이 나와 있었다는 딸의 고백을 듣고 기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니 처제의 그 까칠했던 영화관 기피증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아니, 나는 처제보다 훨씬 더 예민하고 까칠하고 공격적인 사람이다. 그런 일화는 셀 수 없이 많다.


하루는 미팅을 마치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버스 뒷자리에 앉은 사람이 쉴새 없이 통화를 했다. 한참을 가다보니 그의 출장과 귀국에 관한 모든 스토리를 모조리 알게 되었다. 견디다 못한 내가 고개를 돌려 '까칠하게' 한 마디 했다. 아마도 '조용히 좀 하시죠?' 라는 외마디 경고였던 듯 하다. 이 정도면 대부분의 사람은 꼬리를 내리며 전화를 끊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대기업의 임원인 듯한 이 분은 조금 달랐다. 공중 장소에서 허용된 소음의 데시벨을 따지기 시작했다. 분노가 일었다. 애써 꾹 참고 맨 뒷자리로 자리를 옮기던 나의 볼은 아마도 붉게 상기되어 있었을 것이다.


지하철에서도 이런 일은 자주 벌어진다. 한 번은 30대 여성이 만원 지하철에서 내 뒤에 자리잡았다. 문제는 날이 더웠다는 것이다. 그녀는 작은 손부채를 들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내 뒷통수에 대고 부채자락을 흔들기 시작했다. 참다 못한 내가 도끼눈을 하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씩씩대며 다음 역에서 내리고 말았다. 그 날은 밤늦게까지 이불킥을 했다. 이 정도면 화를 내도 충분한 상황이 아닐까?


문제는 내가 아주 사소한 소음과 터치에도 민감하다는 거였다. 때로는 이어폰으로 새어나오는 소리도 견딜 수 없을만큼 힘들 때가 있다. 서로 맞닿은 팔뚝의 촉감 때문에 견디다 못해 자리를 뛰쳐 나올 때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견딜만한 것들이 내게는 버거울 때가 너무도 많다. 어깨 싸움을 하다가 다투고, 짝다리를 한 사람을 내내 신경 쓰기도 한다. 내게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너무도 무례한 나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정도의 소음과 터치를 개의치 않고 살아간다.


하지만 나이 50을 넘기면서 조금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학창 시절 내내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채로 살았다. 친구끼리 편 먹기 할 때 가장 마지막에 선택받기 일쑤였다. 짓궂은 친구들이 수없이 나를 놀렸다. 동네 동생과 싸움을 붙인 형 때문에 서럽게 울었던 그 날의 오후를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렇게 나는 방어적일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다. 언제나 남을 의식하며 살았다. 그리고 나는 가시 돋힌 고슴도치처럼 공격적으로 관계를 맺었다. 조금이라도 무시를 당하면 몇날 며칠이고 곱씹으며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때보다 조금은 너그러워졌다. 몸무게는 걱정하지만 키 때문에 고민하는 시절은 예전에 지나버렸다. 사람은 누구나 잘하는게 있다고 믿게 되었다. 타인을 향한 내 마음도 조금은 너그러워졌다. 어느 순간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게 된 탓이다. 내 배가 고플 때는 남의 허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비교와 부족으로 인해 허덕이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은 '다르게' 반응하는 사람들도 자주 만나게 되었다. 나를 인정하면서 타인도 조금은 더 넓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예민한 사람이다. 당신보다 조금은 까칠한 사람이다. 그래도 영화관을 간다. 지하철을 탄다. 버스를 탈 때면 가능한한 체구가 작고 덜 예민해보이는 사람을 가려 앉는다. 여전히 옆 사람의 통화 소리는 불편하고, 가끔씩 살갗이 닿을 때면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은 더 참게 되었다.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었다. 나를 무시하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나를 인정하고 포용해주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난 덕분이다. 그러니 나처럼 예민한 사람이라면 타인을 향한 시선을 내게로 돌리자. 내가 만족하고 행복하면 덜 예민해지더라. 어차피 덜 예민한 그들은 살던대로 살아갈 것이다. 언제나 관계의 해답은 내게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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