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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헤어 스타일을 바꾸던 그 날

작아도 괜찮아, 어느 스몰리스트의 이야기 #15.

결혼식 날이었다. 예식을 마치고 끝나갈 즈음 목사님이 장인 어른에게 이렇게 물었다. 사위의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드시나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어렵사리 나온 장인의 대답은 이랬다. "착해서..." 장중에 웃음이 흘렀다. 예상 못한 대답에 상황을 추스리기 위해 목사님이 다시 물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침묵 끝에 나온 답은 다음과 같았다. "그냥, 착해요.."


나는 색깔로 치면 회색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무던하고 평범하고 튀기 싫어했다. 교실이건 회사건 공기처럼 존재감 없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회사 소개 영상을 찍기 위해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연말 송년회 때 나온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안절부절,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자연스러움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었다. 가장 친했던 동갑내기 디자이너가 이렇게 말했다. "저거 봐, 저거 봐, 또 혼자 긴장했네. 긴장했어."


그러던 내가 요즘은 강연을 즐기는 사람이 됐다. 특강이라도 할라치면 화면 화면 세팅을 끝내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여유를 부린다. 자리에 앉은 청중 중 한 사람을 지목해 농담을 걸기도 한다. 강연자보다 더 긴장한 그들을 보며 이것 저것 묻곤 한다. 그리고 혼자 생각한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넋살이 좋아졌지? 그런데 그때 문득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었다.


회사에서 유독 친하게 지내던 후배가 하나 있었다. 넓은 어깨가 특징인 이 친구는 누가 봐도 훈남 스타일이었다. 우리는 종종 밤늦게까지 소주 한 두 병을 비우며 회사 욕을, 상사 욕을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미용실을 다녀온 나를 본 후배가 묵묵히 나를 데리고 회사 밖으로 나갔다.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깎은 건지 보는 사람들마다 웃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는지, 나를 지켜주고 싶었던 건지 후배는 나를 자신이 가는 미용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윗머리를 바짝 세운 모히칸 스타일로 바꿔 주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한없이 착하기만해 보이던 내가 머리를 옆을 바짝 깎은 채 윗머리를 세워 올리니 조금은 덜 착해 보였다. 함께 일하던 디렉터가 이렇게 말했다. "팀장님, 왠지 모르게 세 보여요." 나는 슬쩍 화장실로 가서 내 모습을 보았다. 확실히 예전보다는 조금 더 빠릿해 보이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분명한 건 예전처럼 순하고 착해보이진 않는다는 거였다. 그 후로 나는 여전히 옆머리를 짧게 깍는다. 물론 앞으로도 예전처럼 착해보이는 스타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다.


나는 종종 궁금해하곤 한다. 내가 헤어 스타일을 바꿔서 조금 독해진 것인가? 아니면 그 즈음해서 내가 전에 없던 자신감을 찾은 탓인가. 그럴 때마다 나의 손을 잡고 미용실로 데려갔던 그 후배에게 한없이 큰 고마움을 느낀다. 회사 내의 루저였던 나를, 그는 끝까지 팀장님 팀장님 부르며 따라 주었다. 진심으로 나에게 공감하고 위로해주었다. 자신이 아픈 이야기도 가감 없이 털어놓곤 했었다. 아마도 그날 그 후배는 화가 났을 것이다. 안그래도 루저로 사는 팀장이 안쓰럽고 딱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지켜주고 싶었는지도.


세상엔 잘 나가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감에 가득 찬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그들 중 몇몇은 나처럼 숨죽이며, 우울하게, 착하게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의 '실패기'를 닮은 책이 그렇게나 많이 팔려나갈 이유가 없다. 그런 이들에게 나는 말해주고 싶다. 헤어 스타일이라도 바꿔 보라고. 일상의 익숙한 패턴들에 균열을 일으켜보라고. 나는 더 이상 착하기만한 사람이 아님을 용기 있게 말해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렇게 기도하곤 한다.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고 믿어주는 그 한 사람을 찾아보라고. 왜냐하면 자신감은, 자존감은 언제나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 사랑받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소외되고, 패배에 익숙한, 그저 착하기만한 사람에게는 당신이 필요하다. 그런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해줄 단 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잘 나가고 멋진 사람보다는, 공기처럼 존재감 없는 사람들에게 더 마음이 간다. 그들에게 베푸는 작은 친절이, 조심스레 내민 손이,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을 살릴 수도 있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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