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소심하지만, 잘 살고 있습니다 #17.
얼마 전 아내가 청약을 넣었습니다. 경쟁률이 40:1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왜 진즉 돈을 모으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신혼 초 수중에 2,000원 밖에 없었을 때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 돈으로 첫째가 좋아하는 두부를 살지 말지 고민을 했다고 하더군요.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왜 지난 30년을 그토록 무지하고 무기력하게 살았던 것일까요. 그래도 가까운 친구들은 빚을 내서라도 집 한 채씩은 다 사던데 말입니다.
마지막 직장 월급이 연봉 3,000만 원이었습니다. 7년 간 단 한 번 월급이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습니다. 팀장급은 실업 급여를 타가면서라도 함께 일하자는 대표의 말이 지금도 아스라이 들려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 직장을 그만 둘 생각은 못했습니다. 사업은 타고난 사람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 밖은 지옥이니 그나마 월급 받는 지금이 낫다고 여겼습니다. 자연스럽게 카드빚을 내어 가계를 메꾸는 날들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달 벌어 그 달 살기 바빴습니다. 대출을 내어 집을 살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독립한지 5년이 지났습니다. 수입이 늘어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두세 달 후를 예측하기 힘든 1인 기업의 삶이지만 아내는 알바를 그만 두고 부동산과 주식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러라고 했습니다. 100만 원 버는 것보다 돈과 관련한 지식이, 지혜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신기한 일은 수입이 느는 만큼 지출도 는다는 것입니다. 재수생과 고1을 위한 사교육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의 미래를 돈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는 아내의 말을 믿고 어렵사리 감당하고 있습니다. 아마 다들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겠지요?
제 나이 때의 사람들은 집 한 채와 2,3억 정도의 현금은 가지고 있다고 아내가 이야기합니다. 친구들의 사정을 보아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몰려오는 자괴감은 어쩔 수 없네요. 지난 30년 간 나는 무엇을 한 것일까요? 하지만 뒤늦게라도 생각의 전환을 한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회사 밖이 무조건 지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나를 돕고자 하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나의 생계와 미래의 주인이 바로 나라는 인식입니다. 세상의 필요를 읽는 눈이 있다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는 자각입니다. 저는 회사 밖에서 그런 사람을 너무도 많이 만났습니다.
서점에는 돈에 관한 책들이 넘쳐납니다. 너도 나도 주식이며 부동산이며 코인과 NFT에 열광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돈의 주인이 되는 지혜입니다. 연봉 3,000일 때와 연수입 1억을 넘긴 지금의 삶이 다른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내 삶을, 내 재정을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게 되었다는 깨달음입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그런 내게는 키가 작은 것도, 지방대 출신인 것도, 소심한 것도 더는 고민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런게 '나답게' 산다는 것의 참된 의미가 아닐까요?
지금의 나는 직장에 있을 때의 나에 비해 일하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그런데도 월 수입은 서너 배를 훌쩍 넘길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자각은 더 이상 내 삶을 누군가가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자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직장을 그만 두던 날 아내가 말했지요. "편의점에서 밤샘 알바라도 하는게 어때?" 그때 와이프도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운한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로 생계의 최전선에 바로 뛰어들 수 있었습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로 누군가를 돕기 위해 이곳 저곳을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니 매달마다 월급의 노예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을 버리세요. 적어도 마음만큼은 회사 밖으로 뛰어나와야 합니다. 세상의 필요를 알기 위해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세요. 돈 버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르게 사는지, 어떤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지 귀를 기울이세요.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더 많이 고민해야 합니다. 작은 도전과 성취를 통해 자신감을 쌓으세요. 발전이 없는 회사라면 뛰쳐나와 원점에서부터 다시 도전하세요. 절박함으로 나아간다면 분명 기회는 오고 말테니까요. 그리고 그때부터 당신의 진짜 인생이 시작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