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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 기획자가 글 쓰는 방법에 대하여

<조금 소심하지만, 잘 살고 있습니다 #18.>

어느 코치의 브랜딩 작업을 돕고 있습니다. 컨셉 도출에서 사이트 구축, 커뮤니티 구성까지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미팅이 끝날 즈음이었습니다. 코치님이 약속된 일정을 갑자기 변경한 이유를 물으시더군요. 갑자기 뜨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일정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코치는 약속 변경의 이유와 그로 인한 서운한 점을 덤덤히 털어놓은 후 내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님이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게 하려면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사실 저는 디테일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이 일을 하기 전 웹사이트 기획자로 일할 때는 별명이 '빈틈 기획자'였어요. 스토리보드를 꼼꼼히 구성하는게 가장 어려웠죠. 사이트 기획은 방문자의 동선을 예측할 때 모든 변수를 고려해야만 합니다. 저는 그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글을 쓰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교정, 교열이 어려웠습니다. 서너 번쯤 제 글을 읽다보면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인터뷰 녹취가 세상에서 가장 싫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일단 글을 올린 후 뒤늦게 오타와 띄어쓰기 등을 수정하곤 합니다. 그 부분까지 고려하다보면 하나의 글을 완성하기가 너무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니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인 기업으로, 프로로 일한다는 것은 이 디테일을 놓치고서는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지난 5년을 생존해 왔습니다. 과연 저는 지난 5년 동안 얼마나 더 꼼꼼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일까요? 생각컨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여전히 덤벙대고 많은 실수를 합니다. 그래서 클라이언트를 놓친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 단점을 고치는 것보다 장점을 강화하는데 집중했습니다. 저의 약점은 일의 과정을 꼼꼼히 공유하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 대한 자유가 주어졌을 때, 저는 많은 경우 기한에 맞춰 만족스런 결과를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 일을 통해 밥벌이를 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코치님의 조언을 받고 저는 바로 'padlet'이란 사이트에 게시판을 만들었습니다. 타일 형태로 일정을 공유하는 웹서비스입니다. 그리고 지난 미팅의 과정과 내용을 꼼꼼히 기록한 후 해당 페이지를 공유했습니다. 물론 이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강점을 강화한다는게 약점을 무시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이 과정에 저는 저만의 강점을 넣었습니다. 바로 '함께 일한다'는 공감의 메시지를 보낸 것입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는 신뢰받을 때 가장 일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 숱한 빈틈에도 저를 써주는? 사람들은 이 신뢰가 만들어진 분들입니다. 앞서 언급한 코치님의 질문이 놀랍고도 힘이 되었던 건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페이스북에 글쓰기를 즐깁니다. 생각나는대로 자유롭게 글을 쓸 때 가장 좋은 글이 나온다는 사실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이없는 오타와 오류가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무서워서 글을 안쓰는 것보다는 이 방법이 더 낫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무런 댓가 없이 내가 쓴 모든 글을 교정해주는 분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단 글을 올리면 어김없이 맞춤법 교정을 가이드해주는 톡이 날아옵니다. 아직 얼굴도 모르는 분이지만, 저는 그분의 가이드를 따라 지난 글을 수정하곤 합니다. 제 글의 가치를 알아주는 분이기에, 신뢰할 수 있는 분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숱한 실수를 할 것입니다. 여전히 제가 쓴 글은 오타와 오류 투성이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게 무서워서 글을 쓰지 않은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글 속 생각에 공감해주는 분들이 더 많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애정을 가지고 내 글을 고쳐주는 분들이 제 뒤에 있음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잘하는 일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도움과 조언과 질책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글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에 게으르지 않을 것입니다. 강점은 강화하고 약점은 보완할 것입니다. 그러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저는 언제나 전자쪽을 택할 것입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저는 여전히 '불완전한' 사람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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