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소심하지만, 잘 살고 있습니다 #19.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은 한 고등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를 공부를 못했습니다. 곰곰히 생각하던 이 친구는 한 가지 수를 내었습니다. 무턱대고 그 회사의 임원 한 분을 찾아가기로 한 것입니다. 일종의 들이대기 작전인 셈입니다. 물론 첫날 회사 입구에서 보기 좋게 거절을 당했습니다. 미리 약속되지 않은 만남이 가능할리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회사를 찾아갔습니다. 역시 담당 임원을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들이대기가 한 달 가까이 계속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달 하고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여느 날 처럼 회사 로비를 찾은 그의 뒤에 한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만나고 싶었던 바로 그 임원이었습니다. 그 임원이 물었습니다. 왜 나를 그렇게 만나고 싶어하죠? 학생이 대답했습니다. 이 회사에 들어오고 싶습니다. 아무리 임원이라도 들어줄 수 없는 요구였습니다. 그 대신 그 임원은 학생에게 사이드 프로젝트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 이 학생은 그 회사에 당당히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지인으로부터 직접 들은,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 마흔 중반을 넘겨 회사를 나와야 했던 그 날, 와이프는 제게 밤샘 편의점 알바를 하는게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저는 다른 일을 찾았지만 위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내가 실제로 편의점 일을 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저는 아마도 편의점에서 있었던 일들을 꾸준히 글로 썼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동네 편의점 알바로 일하고 있었던 와이프는 종종 재밌는 손님들 이야기를 해주곤 했습니다. 그 중에는 와이프에게 밥 한 번 꼭 먹자던 알콜 중독자 아저씨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매일 100일 간의 편의점 알바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린다면 어떨까요? 진상인 손님, 감동적인 이야기, 새로운 신상 이야기를 올린다면 재밌지 않을까요? 거기에 매출에 기초한 트렌드와 손님들의 분포도를 분석해서 올린다면 어떨까요? 제가 임원이라면 이런 친구를 뽑을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과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면 꾸준히 구독하는 독자가 생길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유명하고 똑똑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찾는 건 아니니까요. 오히려 나보다 조금 더 앞서 간, 조금 더 무모한, 조금 더 경험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컨설팅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한은 현업에서 결코 손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글을 쓰는데는 영 재주가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그런 글을 읽고 좋아해주었습니다. 만약 제가 실무를 놓고 남의 이야기만 쓴다면, 컨설팅을 하고 글을 쓰는 저의 '업'은 힘을 잃을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현업에서 손을 뗀 순간 더 이상 새로운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났습니다. 물론 그들도 계속 글을 쓰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자기복제'에 그치는 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일종의 추억팔이인 셈입니다. 그걸 누군가는 '꼰대'라고 표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코치들은 이야기합니다. 그 믿음이 단순한 티칭이 아닌 코칭을 가능케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잠재력을 발현시키는 것은 언제나 '러닝Learning'이 아닌 '두잉doing'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가진 진짜 매력은 이러한 실행을 통해 발현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앞서 소개한 친구는 그 특유의 용기와 끈기로 자기다움을 어필했듯이, 저는 소심한 경험을 글로 녹여내는 방법으로 저다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는 '들이대기'가 어려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름의 방법으로 나를 드러내는 방법을 오랜 성찰과 경험을 통해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한때 우리나라 만화 시장을 이현세와 허영만 같은 천재 작가가 좌우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로지 실력으로 자신의 만화와 스토리를 풀어낼 수 있는 플랫폼이 생겼습니다. 아마도 이런 변화는 우리가 일하는 모든 영역으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만일 브런치가 아니었다면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책을 내고 강연을 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여기엔 전제가 있습니다. 나만의 방식으로, 꾸준한 실행을 통해, 성과를 만들어내는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당장 실직을 한다면 당장 내일부터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새로운 직장이나 직업을 찾을 수 있을까요? 가장 나다운 방법으로, 지치지 않고, 나의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 그것이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