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스타트업 대표를 소개받아 강연을 했다. 첫 번째 강연 반응이 좋았는지 한 번 더 강연을 할 수 있었고, 그게 인연이 되어 교육 프로그램 제안에 대한 요청까지 받았다. 한참 잘 나가는 회사라 나도 좋은 레퍼런스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교육 내용과 일정을 조율하는 미팅을 앞두고 연기를 요청하는 대표의 전화를 받았다. 문제는 그 '연기'가 너무나도 연기된다는게 문제였다.
나도 일정이 있는 사람인지라 얼마 후 회사 대표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너무 미안하다며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반갑게 나눈 그 약속이 허무할 정도로 다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도 잊고 지내다 문득 전화를 한게 두어 달 후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날도 그 대표는 이전과 똑같은 톤과 매너로 내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게 완곡한 거절의 인사라는 것을. 또 한 번 나의 순진한 껍질이 벗겨지는 경험이었다.
지난 5년 간 일하다보니 참으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어법에 익숙해지는 것도 나름의 역량이 될 수 있음을 하나씩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가장 어렵게 적응했던 것 중의 하나가 위와 같은 '완곡한 거절'이었다. 그들은 어떤 이유로든 '헤어질 결심'을 한다. 하지만 결코 그 사실을 입 밖으로 확인해주지 않는다. 규모가 크든 작든 상관이 없다.
그래서일까? '이런 저런 사정으로 프로젝트를 조금 연기해야겠다'는 말을 들으면 지금은 아예 마음을 접게 되었다. 그게 바로 '더는 함께 일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일종의 통보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냉정한 마침표 보다는 여지가 있는 쉼표로 마무리하는게 여러모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혹 아는가? 내가 엄청나게 성공한 사람이 되어 다시 만날지, 정말로 다시 필요한 순간이 올지, 부족한 예산이 다시 채워질지... 그래서 그들은 아주 친절한 잠수를 선택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도 그럴거냐면, 그건 아니다.
대학 시절이었던가? 많지 않은 연애 경험이지만 아주 짧게 사귄 한 사람이 있었다. 2살 연상의 누나였다. 관심을 먼저 표해온 것도 그쪽이었다. 나도 싫지는 않았기에 우리 사이는 금방 가까워졌다. 아주 단아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문제는 어린 마음에 덜컥 데이트를 시작했는데 내 마음이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만날수록 부담이 됐다. 나이도 부담이 됐고 외모도 부담이 됐다.
오해는 마시길. 키도 크고 보통 이상의 미모를 가진 분이었다. 문제는 만날수록 좋아져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 거였다. 자꾸만 핑계가 생겼다. 선물을 받아도 기쁘지 않았다. 그러다 한 달쯤 되던 때에 '이건 아니다'라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시내 카페에서 그 사람을 만나 내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난 후 나는 일주일을 꼬박 앓아누웠다. 미안함과 부끄러움과 무책임한 나에 대한 실망이 골고루 섞인 감정이었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것만큼이나 누군가를 거절하는 것도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님을 그 때 배웠다.
모두가 나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 필요도 없다. 내 마음 편하자고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예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 감정과 선택을 오해하지 않도록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 그게 나는 옳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비즈니스 역시 그렇게 실천하도록 애쓰고 있는 중이다.
일을 하다 보면 느낌이 올 때가 있다. 나의 능력과 상대의 기준과 기대가 다름을 문득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나는 클라이언트를 찾아가 솔직하게 얘기하곤 했다. 그러면 일은 드롭이 될지라도 마음은 지킬 수 있었다. 사실 일 자체가 드롭되기보다는 더 강한 신뢰와 결과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될 때가 더 많았다. 물론 지금도 많은 사람들과 이별 아닌 이별을 경험하곤 한다. 잠깐 생각할 시간을 가지자는 연인의 통보처럼 그 말은 언제나 어렵고 잔인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씩 그런 관계에 익숙해지고 있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게다가 조금 소심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을 만나면 생각이 많아지곤 한다. 이런 거절 아닌 거절을 경험할 때마다 깊은 우울에 빠진다. 자책으로 힘들어 한다. 역시 나는 이 정도인가, 하는 생각만큼 나를 절망케 하는 생각은 다시 없다. 이른바 회복 탄력성이 높은 어떤 사람들이 부럽다. 무슨 일을 당해도 통통 다시 일어서는 그들의 성격과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부럽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라고 아무렇지 않을까?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일 뿐이다. 아무렇지 않게 보이려고 조금 더 애쓸 뿐이다. 방법은 한 가지다. 또 다시 도전하는 것이다. 나의 능력을, 성격을, 일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나의 커리어를 지켜올 수 있었다. 사랑도 어차피 새로운 사랑으로 지우는게 정석이 아니던가. 세상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누군가에겐 부족한 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나도 필요한 사람임을 확인한다.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간다. 다행히도 나의 견디는 힘이 조금씩 늘고 있다. 이게 다 나를 인정해주는 그 사람들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