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들이 기타를 전공한다고 했을 때 나는 속으로 조금 놀랐다. 내가 아는 한 우리 가족은 물론이려니와 친척 중에도 음악 비슷한 걸 한 사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은 보란듯이 정원이 한 명 뿐인 예고에 진학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요즘은 백수처럼 가열차게 재수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300만 원짜리 기타는 어쩌다 기분이 좋아 사주고 말았지만 학원비에 연습실 비용까지 매달 대는게 만만치 않다. 하지만 내 귀가 막귀이니 저놈이 잘하고 있는 건지 그냥 놀고 있는 건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소설가 김영하 씨가 무명일 때 재떨이를 비워주셨다는 작가의 아버님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나의 아버지가 전국노래자랑 예선에 지원한 적이 있다는 사실, 그것도 딱 반 박자씩 틀리는 그 특유의 절대 음감 때문에 어김없이 땡 소리를 듣고 오셨다는 사실이 떠올랐을 때, 나는 아버지가 반장 소리를 들으실 때의 그 전성기의 하룻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음주가무를 정말로 즐기셨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아버지는 거의 득도한 모습으로 소줏병(혹은 숫가락)을 들고 노래를 부르고 계신다. 아, 저 피가 손주에게로 갔구나, 정말 피는 못 속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 절로 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갑자가 기타를 치는 손주 옆에서 뽕짝 한 곡을 땡기시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혼자 흐뭇한 기분을 즐겼다. 아버지는 얼마나 그런 삶을 바라고 또 바라셨을까.
하지만 그냥 건너 뛰었을 법한 음악의 피가, 혹은 뽕짝의 피가 내게도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종종 느낄 때가 있는데, 그건 유튜브에서 우연히 발견한 '돌아와요 부산항'이란 곡의 기타 연주 영상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그 신나는 기타 연주 소리 때문에 그날 하룻밤을 꼬박 세울 수밖에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이 어린 유튜브 기타리스트가 연주해대는 온갖 뽕짝에 물들어 (예를 들어 진성의 '안동역에서' 같은), 그 밤을 정말로 근래 들어 가장 행복한 날로 기억하기까지 한다. 아마도 중학생 아들의 영혼을 일으켜 깨운건 이런 감흥 때문이었으리라. 그러고보니 나를 거쳐 아들에게 건너간 피의 3할 정도는 아버지의 뽕짝의 피가 섞여 있으리라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 시대의 트로트도 엄연한 대중 음악의 한 장르이니 뽕짝이라는, 다소 비하하는 듯한 뉘앙스로 말하는 것이 괜히 마음이 쓰일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오래 전 그 날 아버지가 부르던 그 노래 한 소절에 실린 헤아릴 수 없는 우울과 회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뽕짝이라는 이름에 정겨움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아들에게 전해진 그 뽕짝의 기운은 재즈라는 장르로 진화해 아들의 심금을 울리고 인생을 바꾸고 있다. 바라건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손주의 연주로 그 무거웠던 인생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내셨으면. 오늘도 산책을 하다가 유튜버 양태환의 기타 연주를 듣는다. 내게도 이렇게 미약하마나 엄연히 뽕짝의 피가 흐르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IO9Cviqw2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