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중간평

이대 나온 후배와 일한 적이 있다. 아주 예쁘고 친절한 친구였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자신의 욕심이 성에 차지 않자 금세 속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배운 것도 많다. 적어도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돈과 명예를 가진 사람들은 이중 국적자가 많구나. 그들은 따로 만나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는구나.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는 사실을 직접 듣고 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트이는 기분이었다. 밀어주고 끌어주는 그들은 평범한 우리의 삶과는 아주 다른 삶을 산다. 요즘 재밌게 보고 있는 '작은 아씨들'에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나는 한 번도 걔를 왕따시킨 적이 없어. 애초에 우리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거든."


주인공은 흙수저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철저히 왕따로 일하고 있다. 이른바 13층의 왕따로 불린다. 그런 그녀에게도 친구가 있는데 그녀는 14층의 왕따다. 이 왕따 언니가 무려 700억을 횡령하고 자살을 하면서 이야기는 급물쌀을 탄다. 주인공은 언니가 남긴 요가 센터 라커룸에서 20억을 발견한다. 가난한 세 자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700억을 추적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을 그냥 둘리 없다. 흥미진진한 이 스릴러 드라마는 우리와 다른 세상을 사는 그들의 삶의 편린을 보여준다. 그리고 알게 된다. 그들은 그저 돈이 많은게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그들의 세계'를 살아간다.


이 드라마에는 여러 명의 부자가 등장한다. 바로 세 자매의 고모 할머니다. 이 할머니가 또 은근히 매력이 있다. 막내 조카의 수학여행비 250만 원을 빌려주면서 세금까지 뗀다. 이 할머니가 마시는 계란술은 처음 보았다. 법무팀과 비서가 따로 있을 정도로 부유하지만 조카들을 향한 죄책감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린다. 또 한 사람의 부자는 이 드라마의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시장 후보 부부다. 너무도 친절하고 스마트한 이 두 부부는 욕망의 화신이다.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아버지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사람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들의 세계'는 과연 우리보다 행복할까?


나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내게 어느 날 20억의 돈이 생긴다면 행복할까? 700억이 아닌 5만 원권 20억의 부피가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있었다. 조금 큰 김치통 두 개에 딱 맞는 분량이다. 허리 길이의 배낭에 가득 들어가는 부피와 무게다. 드라마는 이 가방을 메고 최소 5층 높이의 건물을 젊은 여자가 완강기를 타고 내려가는 판타지를 보여주지만... 적어도 이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부'는 단지 배고픔과 추위와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자존감, 그리고 인간다운 삶의 영역에 치명타를 안긴다. 세 자매가 이 부에 각각 다르게 반응하는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드라마는 아직 진행 중이다. 보랏빛 난과 같은 화려한 떡밥들을 착실하게 수거해낼지 자못 기대와 우려가 큰 바이다. 다만 조금 안심이 되는 것은 이 드라마의 작가가 '헤어질 결심'을 쓴 작가라는 거다. 그리고 드라마의 인트로에는 생각보다 많은 메시지가 숨어 있다. 웰 메이드 드라마다. 스릴러의 자격도 충분하다. 몇몇 캐릭터는 아직도 선과 악의 애매한 중간 지점에 있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로 보기에는 드라마가 던지는 메시자가 자못 묵직하다. 방금 켈리 최가 쓴 '웰씽킹'이라는 책을 보아서 그런가. 이 책의 저자는 부자는 그 '생각한 방식'도 다르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그건 꼭 부자가 되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일까? 드라마가 끝나면,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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