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의 기분이나 상태를 점검하는 기준이 하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내 최고의 상태는 바로 '청소하고 싶은 기분'이 날 때이다. 천성이 우울을 타고 난 나는 좀체 웃지 않는다. 그걸 나이 들고 살 찌고 알았다. 미간에 깊이 패인 두 줄을 바라볼 때마다 세상 걱정은 혼자 다 하고 난 나를 반성한다. 문득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감정을 읽으라는 아버지가 붙여 놓은 사진 한 장이 생각난다. 그 사진엔 각양 각색의 표정이 스티커 사진처럼 정렬되어 있었다. 나는 세상에 그렇게 다양한 표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아무튼 나는 좀체 웃지 않는다. 진지충이다. 그런 내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청소다.
청소하고 싶은 기분이 날 때가 있다. 거실 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한다. 함께 사는 고양이 까망이의 뒷처리가 가장 큰 청소다. 얘는 집안에서 가장 어둡고 구석진 장소에서 볼 일을 본다. 아마도 서열 싸움에서 밀린 거라 짐작은 하는데, 그래서 비싼 돈 주고 산 화장실을 외면하고 거실 소파 뒤 구석진 곳에 볼 일을 본다. 그것도 하루에 두세 번, 정기적으로, 아주 착실하게. 그래서 이 녀석의 뒷처리를 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축축히 젖은 배변 배드를 정리하고, 맛동산 덩어리를 주워 담고, 두어 번 물걸레질을 하고, 탈취제를 뿌린 후 정성스럽게 배변 패드 네 장을 겹쳐서 올려놓아야 비로소 마무리가 된다. 그 참에 빈 먹이통을 씻고, 채우고, 물통까지 채워야 끝이다. 그리고 그 작업을 하고 나면 그렇게 상쾌할 수 없다.
네이버 사전으로 '재미'를 검색해보니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어디에도 웃어야 한다는 정의는 없다. 나는 고양이 똥을 치우며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 된다. 어쩌면 이렇게 재미를 해석하는 방법도 재미없을 수가 있는지. 적어도 재미에서만큼은 아이들 걸음마 배우듯 하나 하나 실천하고 경험하는 수밖에 없겠다. 얼마나 인생이 재미 없으면 고양이 똥을 치우는 것에서 재미를 찾겠나 싶다다가도, 굳이 해맑게 웃지 않아도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에서 아주 큰 위안을 얻는다. 이제 나도 나만의 재미를 갖고 싶다.
살다 보면 참 힘든 일이 많은 것 같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 날'의 일로 인해 나는 소주를 배웠다. 참고로 나는 아버지의 주사 때문에 지금까지 소주를 거의 마시지 않았다. 군대에서 말고는 취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끔 소주를 마신다. 소주 말고는 답이 없는 슬픔과 괴로움을 만날 때가 있다. 이런 소주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술이 된 이유는 뭘까? 아마도 나처럼 재미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가 아닐까? 앞으로 나만의 재미를 찾아보려 한다. '청소하고 싶은 기분'에서 시작하려고 한다. 아내와 딸이 브런치를 먹으러 간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팬티만 입고 청소를 하려고 한다. 아주 작은 나만의 재미를 누리기 위해서이다. 부디 보아도 못 본척 해주시기를, 혹이라도 상상 같은 건 하지 말아주시기를 간절히 부탁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