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요철

내 이름은 돌림자다. 우리 형제는 물론 사촌에 팔촌까지 죄다 '요'자를 쓴다. 그래서 탄생한 이름들은 실로 현란하다. 일단 내 동생은 요연이다. 그나마 준수하다. 사촌으로 가면 요식, 요준, 요상이가 있다. 요상이는 요자 돌림이 만든 기발한 이름 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데 다행히도 잘 생긴 편이다. 사촌 밖으로 가면 요청이가 있는데 그 밖의 친구들은 그닥 왕래가 없어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 이름이 마음에 든다. 요자 돌림 중에서는 그나마 쓸만한? 이름이라 스스로를 속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이름이라도 50년을 쓰다보면 익숙해지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이름 때문에 '재미'난 일이 적지 않았다. 일단 한자를 좀 아는 사람들은 이 이름의 뜻을 간파하고 혼자 웃곤 한다. 오목할 요, 볼록할 철... 물론 내 이름은 높을 요에 맑을 철을 쓰지만 이를 설명할 일은 많지 않다. 올록 볼록 엠보싱 같은 이름은 다행히 한자를 더 이상 쓰지 않으면서 덜 신경쓰게 됐다. 문제는 이 한자가 이상한 곳에 종종 쓰인다는 점이다. 어느 날 대학에서 MT를 가던 길이었다. 마침 지반이 약한 곳이었는지 꽤 긴 구간 동안 10미터 간격으로 안내 표지판을 걸어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표지판에는 다음과 같은 강렬한 문구가 씌여 있었다.


'요철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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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에선지 몰라도 지반이 올록볼록한 곳에서는 어김없이 '요철 주의'가 쓰인다. 그런데 하나도 아니고 수십 개의 요철 주의 구간을 지나가다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선영아 사랑해'를 만난 선영이도 플래카드 하나에 쓴웃음을 지었을 텐데, 아무튼 그 날의 MT는 내 이름 얘기로 두고 두고 회자되었는데, 그 후로도 만난 '요철 주의'를 대하는 나의 자세에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결혼한 후 아이들을 이름은 자유롭게 지을 수 있었다. 서원이와 희원이, 그런데 막상 짓고 보니 유행을 따라 지은 듯 평범해서 임팩트가 없다. 역시 그래서 내 이름이 좋다.


개명이 자유로운 시대다. 와이프 이름은 '은영'인데 '수연'으로 바꾸고 싶어한다. 혹이라도 새로 결혼하는 기분이 들까봐 적극 찬성했는데 소식이 없다. 필명을 쓸 기회도 있었다. '스몰 스텝'을 쓸 때만 해도 첫 책이니 멋진 필명을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감에 쫓겨 내용에 코를 박느라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한 가지 희망은 내가 글로벌한 작가가 되어서 영어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이다. '현대'도 '히운다이'로 읽는 그들이 내 이름을 정확히 읽을 확률은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위키는 '요철'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러니 부디 나를 만나시는 분은 주의하시길...


"도로에서의 요철은 차량에 충격을 주는 요소로 운전 중 치명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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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상, 박요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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