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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며 책을 읽으면 일어나는 일들, 책바

백일 동안, 오늘의 브랜드 #39. 책바

1. 연희동에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술을 즐길 수 있는 바(Bar)이자 책을 구매할 수 있는 서점의 기능을 겸하고 있는 ‘책바(Chaeg Bar)’다. 책바에서는 ‘책 속의 그 술’을 판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 나오는 커티삭 하이볼이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에 나오는 압생트를 파는 식이다. 그리고 책과 술을 함께 구매하면 특별 할인도 해 준다.


2. 정인성 대표는 책바를 열기 전 LG생활건강에서 마케터로 수년간 일했다. 그러다 평생 가져갈 수 있는 취미를 찾게 됐고,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따기에 이르렀다. 칵테일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었고, 칵테일을 제조하며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었다. 그렇게 바텐더의 길을 걷게 됐고, 술만큼 책도 좋아하던 터라 과감히 책바의 문을 열었다.


3. 책바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사실 거창하지 않다. 어렸을 적부터 좋아하던 책과 사회인이 되어 친해진 술을 나만의 방식으로 한 공간에 풀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밤에 일하다 보니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까지 달라졌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인간관계가 바뀌었다. 하루 스물네 시간을 자율적으로 보내며 길게는 인생을 주체적으로 디자인하는 삶에 익숙해지는 중이다.



4. “출근할 때마다 팟캐스트를 들었다. 그 중에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 졸업 연설을 들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데 네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라고 했다. 그 연설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내 인생을 살고 있나 싶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것 같아 그날 바로 퇴사했다.”


5. 정 대표는 책바를 다음과 같은 공간으로 구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우선, 표면적으로는 책과 술을 모두 좋아하는 사람이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혼자 오는 손님들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혼자서 마음 편히 쉴 수 있다면, 책은 안 읽어도 되니 글이나 일기를 쓰고, 여행 계획도 세우는 편한 장소가 됐으면 했다. 운영하다 보니 책바가 품고자 하는 범주가 넓어진 것이다. 이 또한 책바를 칵테일바나 책방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이유다.


6.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는 민트 쥴렙이라는 칵테일이 나온다. 유부녀 데이지가 개츠비와 갈등 있는 상황에서 민트 쥴렙을 마시자고 제안하는 장면인데, 민트 쥴렙은 버번 위스키를 베이스로 하고, 약간의 설탕 시럽과 스피어민트, 그리고 잘게 부순 얼음을 넣어 차가운 칵테일이다. 즉 소설 속 묘사처럼 땀방울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흘러내리는 찰나에 마시기 알맞은 칵테일이다. 


7. 여기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데이지의 고향이 켄터키 주 루이빌이라는 점이다. 민트 쥴렙은 18세기 미국 남동부에서 탄생해 3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오래된 칵테일이다. 게다가 미국의 3대 경마대회인 ‘켄터키 더비’의 공식 칵테일로 지정돼 5월 첫째 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경기에서 민트 쥴렙이 서빙되고, 매년 만드는 칵테일만 해도 12만 잔이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칵테일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잘 몰랐다면 『위대한 개츠비』에는 민트 쥴렙이 아닌 다른 술이 등장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8.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책바는 주택 창고로 쓰이던 공간을 개조한 곳으로, 15평 남짓한 공간에 바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로만 운영하고 있다. 수익을 위해 최대한 많은 자리를 마련하기보다는 고객들이 편하게 책을 읽게끔 테이블 간격에도 신경을 썼다. 1인용 테이블은 5개가 전부다. 바에서 책을 구입하고 또 다른 손님이 기부한 책을 대여할 수 있는 것 또한 다른 바와의 차이점이다.


9.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하기 위한 여러 노력도 눈에 띈다. 메뉴판에는 해당 술이 등장하는 책 속 문장을 옮겼고 책에 나온 대로 칵테일 레시피를 정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미국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 <기나긴 이별> 속 ‘진과 로즈사(社)의 라임주스 반씩 그 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는 문장대로 칵테일 김렛을 만드는 식이다


10. “책을 읽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숨겨진 감수성이 살아난다고 생각해요. 논리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책도 있지만, 시, 소설, 에세이는 감수성을 요구하거든요. 술을 가볍게 마시면서 그 책에 몰입할 수 있어요. 두 번째로, 술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다 보면 그 술이 등장하는 시점에 읽는 이도 그 술을 마시면서 책 속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 내용 출처

https://bit.ly/3xJ53eO (내외경제 TV, 2020.12)

https://bit.ly/3xJjHTz (조선일보, 2019.11)

https://bit.ly/3SoJOqA (독서신문, 2017.03)

https://bit.ly/3Usgf9u (한국금융, 2020.05)

https://bit.ly/3qZ80V4 (시사인, 2016.10)

https://bit.ly/3Bx0x4l (독서신문, 2017.08)

https://bit.ly/3UslzcS (동아일보, 20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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