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매일 잠들기 전 5분, 세 줄 쓰기

스몰 스텝 스케치 #03.

나는 매일 잠들기 전, 세 줄의 일기를 쓴다.

어쩌면 일기보다는 기록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첫 줄은 안 좋은, 아쉬운 기억을 쓰고

두 번째 줄은 하루 중 가장 좋았던 기억을 기록한다.

마지막 세 번째 줄은 내일의 짧은 각오를 쓴다.

시간은 대략 5분 정도,

길어도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우연히 읽은 책의 조언을 따른 글쓰기 방법인데

이후로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으로 자리잡았다.


이 '세 줄 쓰기'를 제안한 일본인 의사는

영국 병원에서 일하던 시절 배운 7줄 짜리 차트 쓰는 법에서

이 글쓰기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이 7줄은 언제 누가 보아도

환자의 상태를 한눈에 알아보기 위한 방법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세 줄 쓰기는

일상을 스쳐가는 세 가지 장면과 생각을 캐치한 후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소스 모으기에 가깝다.

첫 줄은 안 좋은 기억, 두 번째 줄은 좋은 기억을 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일 다양한 자극에 노출된다.

그리고 그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같은 기회와 위기를 맞딱뜨려도

우리는 저마다의 기질과 상황, 가치관에 비추어

전혀 다른 반응을 하곤 한다.

그것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주고

그것이 미래의 우리를 만들어가며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나를 말해준다.


몇 달 간의 세 줄 쓰기가 계속되던 어느 날,

나는 지난 글 들 속에서 특이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언제나 대인관계와 소통의 어려움을 호소하던 내가

그 어려움 속에서 가장 큰 만족과 에너지를 얻고 있다는 점이었다.

불편한 관계에 있던 이웃,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클라이언트에 대한 미안함,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와이프와 아이들의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았을 때의 놀라움과 반가움이

어느 주제보다 일기장에 자주 등장하곤 했다.


또 한 가지는 내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점이었다.

평일이나 주말,

잠깐 쉬자며 TV를 켜는 순간

그 날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이 휘발되어버린 후회가

반복해서 세 줄의 일기 가운데 드러나고 있었다.

잠깐의 휴식이 나태함을 부르고

그 나태함이 가장 에너지 넘치는 시간들을 휘발시키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이번 한 번쯤은...'이었지만

세 줄 일기 속에 기록된 내 모습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나였다.


글쓰기는 어렵다.

일기를 쓰고 싶어지는 날은 자주 오지 않는다.

그러나 세 줄은 가벼운 산책처럼 부담을 주지 않는다.

후회와 우울, 희망과 용기, 기대와 다짐이

일기장 속 세 줄 안에서 쉼없이 교차한다.

그 짧은 시간,

내 삶 속 나의 감정은 비로소 균형을 찾는다.

세 줄 쓰기의 제안자가 의사라는 점은 흥미롭다.

그는 이 세 줄 쓰기가 자율 신경의 자연스러운 균형을 불러오며

결국 진정한 건강으로 이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의학적인 효과를 논하기에 앞서

이 짧고 단순한 잠들기 전의 작은 습관이

의외로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갈 수 있는

작지만 큰 단서들을 제공한다는 점이 더 흥미로웠다.



혹자는 일기의 장점보다 단점을 말하곤 한다.

잊어도 좋을 힘들고 아픈 과거들을

의도치 않게 끄집어낼 수 있는 위험을 말하는 듯 하다.

하지만 세 줄 쓰기는 그런 위험이 없다.

좋지 않은 일들은 반드시 좋은 기억으로,

내일에 대한 기대와 다짐, 계획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다.


5분이면 족하다.

10분을 넘지 않는다.

그 날 하루, 두 개의 기억만 끌어올리면 된다.

그렇게 쌓인 기록들은 몇 달 후의 어느 날,

당신 앞에서 당신이 누구인지를 친절하게 말해줄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몰랐던 당신의 단점일 수도 있고

장점이자 기회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단점조차도 당신의 변화를 위한 불꽃이 되어 줄 것이다.

그저 오늘 밤 잠들기 전,

단 세 줄만 일기장에 옮겨 적으면 된다.

단 세 줄만.


(*참고 도서 : 하루 세 줄, 마음 정리법 - 고바야시 히로유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움직이는 작은 힘, Small Step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