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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ecting the Dots, 필사의 유익

스몰 스텝 스케치 #04.

오늘 아침 85번째 필사를 마쳤다.

희귀질환을 앓는 '은서'와 보편적 복지에 관한 이야기.

필사의 대상은 권석천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근 JTBC 보도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유석 판사, JTBC의 앵커브리핑을 번갈아가며 옮겨 적는다.


노트북 화면에 칼럼과 에버노트를 동시에 띄운뒤

그대로 타이핑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5분에서 10분 사이.

가능하면 글을 옮겨적기보다

글쓴이의 마음을 따라가보려고 애를 쓴다.

오늘 필사한 칼럼은 무려 6년 전의 이슈,

자연스럽게 지금과의 비교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글쓰기를 배우려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덤으로 배운다.

그것도 현존 최고의 칼럼니스트로 불리는 기자의 눈을 빌어.


권석천 기자는 유독 약자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인천공항의 청소부를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가습기 살인 기사를 놓친 자신을 질책하기도 한다.

세월호에 관한 그의 기사를 읽고 눈시울이 뜨거워진적도 여러번.

결국 좋은 글은 '손끝'이 아니라 '발끝'에서 나옴을 배운다.

가르치지 않고 보여주는 글의 위엄.

돌이켜보면 내 글 역시 나의 체험을 옮겼을 때 가장 반응이 컸었다.

쓰는 이 뿐 아닌 읽는 이도 그 차이를 귀신같이 알아낸다.

직접 체험한 이의 손끝에서 뿜어져나오는 그 에너지를.


권석천 기자는 매번 다르게 쓴다.

취재 대상의 시선으로 글을 쓰기도 하고

1인칭 시점으로 몰입을 유도하기도 하고

대화체로 지루한 칼럼에 생동감을 더하기도 한다.

때로는 웅변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직한 독백으로 이어가기도 한다.

소재는 항상 사회적 이슈지만

전혀 다른 책이나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엄청난 독서량, 혹은 축적된 지식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매일 그의 글을 옮겨쓴다.

아침에 커피 한 잔 마신 것 이상의 각성효과를 얻기 때문이다.

내 일상의 문제에 함몰된 좁은 시야를 넓히고

같은 소재로 이렇게 다르게 쓸 수 있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때로는 공분으로 파르르 떨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같은 마중물의 힘을 입어 실제로 글을 쓴다.


필사는 내게 작은 '점' 찍기다.

이 점들이 몇 달의 시간을 거쳐 숙성의 과정을 거치면

그렇게 희미한 점을 이어 또렷한 선을 하나 만든다.

이 땅에 얼마나 소외된 이들이 많은지에 대한 자각은

또다른 세상의 사각지대에 눈을 뜨게 만들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주 작은 소시민의 양심으로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보육원의 한 아이와 8년 가까이 교류하고 있고

아내의 길고양이 입양 제안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이렇게 아주 사소하고 작은 점들이 이어져

결국 가장 '나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간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뿌듯하며

매너리즘에 빠진 나를 일으켜세우는 힘의 원천을 찾아가는 일.

이것이 바로 스티브 잡스가 말한

'Connecting the Dots'의 진짜 의미는 아니었을까?


오늘 나는 그렇게

85번 째의 점을 찍었다.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고

6년 전 두 명의 은서의 희망과 절망을 읽었다.

이 작은 점을 이제,

무엇과 이어갈 수 있을까?


<권석천의 시시각각, 중앙일보> 201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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