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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것

스몰 스텝 스케치 #05.

13년 째 같은 동네에서

이사만 세 번을 했다.

그래서 출근길 역시 오랫동안 정해져 있었다.

일단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 역에 내려

서울에 있는 여러 직장으로 향하는 식이었다.


그러던 며칠 전,

직장 동료와 함께 얘기를 나누다가

굳이 따로 운동할 필요없이

퇴근길에 걷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전 직장에서는 실행 자체가 불가능한 환경이었지만

지금은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날부터 실행에 옮겼다.

퇴근길 마을버스를 타지 않고

집까지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몇 가지 놀라운 깨달음이 있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집까지 가라면

대략 15분에서 20분이 걸린다.

버스가 달리는 시간은 10분 정도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또 그만큼 걸린다.

하지만 걷는 시간은 대략 25분,

빨리 걸으면 20분에도 주파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버스를 타는 시간과

걷는 시간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왜 나는 버스가 당연히 빠르리라 생각했을까?)


하지만 더 놀라운 발견은 따로 있었다.

퇴근길 걷기를 시작하면서

지난 10여 년 동안 보지 못했던

탄천의 아름다운 저녁 풍경을

이제서야 비로소 보게 된 것이다.

팔뚝을 넘어서 발뚝?만한 잉어떼와

무리지어 헤엄치는 오리와 간간히 보이는 두루미,

어른키를 넘어 자란 억새풀숲과

출근길 러시아워를 연상케하는 부지런히 운동하는 수많은 사람들...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것,

익숙하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습관이 만들어낸 관성이 중력처럼 무겁기 때문이다.

약 1년여 전,

먹고 살 수는 있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시작한 새 일도 같았다.

그렇지만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 삶은 여전히 '마을버스' 속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이 주는 기쁨과 감동도 없었을 것이다.


변화는 언제나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늘 가던 길이라면

가끔씩은 샛길이나 좁은 길을 택해 걸어가보자.

그렇게 자신의 선택이 새로운 경험을 만들기 시작하고

그 경험이 습관으로 쌓여가는 순간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은 내일을 살아갈 힘이

가슴 속 깊은 곳 내면에서부터 솟아날지도 모른다.


p.s.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 길을 걷고 있냐고?

두 주 전부터는 주말마다, 가족과 함께 그 길을 걷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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