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옛 것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 을지다락

천 일 동안, 오늘의 브랜드 #52.

1. 조선시대만 해도 진흙으로 된 언덕길이던 을지로 일대는 햇빛을 받으면 구리처럼 반짝인다 해서 ‘구리고개’라고도 불렸다. 옛 지명은 구리와 같은 각종 금속, 목재, 유리 등의 원자재가 이곳을 채우며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계승됐다. 1960년대부터 건축 자재 관련 업종이 몰리며 을지로는 도시 제조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세상을 이루는 작고 단단한 것들과 그 위에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실핏줄같이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가득 채웠다. ‘을지다락’은 이같은 을지로의 풍경과 정신을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플래그십 스토어다.


2. 을지로4가의 낡은 건물을 개조해 다양한 세대에게 을지로의 가치를 공유하자는 코오롱FnC의 제안에 따라, 임태희 소장은 ‘을지로다운’ 공간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의 해답은 기존의 건물이 놓인 골목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을지다락은 인스타그래머블한 분위기의 카페와 음식점을 연상케 하는 힙지로의 이미지와는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있다. 이곳을 처음 방문한다면 눈을 크게 뜨고 골목을 잘 살펴야 한다. 언뜻 보기엔 을지로의 여느 건물과 다를 바 없어 그냥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3. 코오롱FnC는 을지다락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각 브랜드의 영업·마케팅·비주얼머천다이징(VMD) 팀에서 소수 인원을 차출해 팀을 꾸렸다. TF의 고민은 “코오롱FnC가 보유한 23개 브랜드의 정체성을 보여줄 통합된 공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브랜드의 역사·가치·변화를 오롯이 담을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했다.



4. TF는 을지로로 키워드를 좁혔다. 보통 패션 브랜드의 대표 매장은 강남·명동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있지만, TF는 최근 2030대 사이에서 떠오르는 ‘힙지로(힙+을지로)’에 주목했다. 낡은 것과 새 것이 공존하는 을지로 상권이 오랜 역사를 지닌 코오롱 브랜드를 알리기 적합한 장소라고 판단했다.


5. 임태희 소장은 프로젝트에서 자신의 역할은 ‘침묵하고 듣는 일’에 가까웠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졸업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을지로를 찾았던 대학생 시절을 회상했다. 머릿속 형태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을지로의 작업자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고 제작을 의뢰하던 중 그들의 손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오랜 시간 계속된 고된 노동 탓에 새까매진 손가락과 반밖에 없는 손톱이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을지로에서 일어나는 노동의 행위가 빚어낸 결과물을 다채로운 디자인 요소로 치환해 노동의 신성함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6. 을지다락 건물 역시 20여년 된 기존 건물 원형을 유지하고. 간판도 주변 분위기에 맞게 무채색으로 디자인했다. 내부 인테리어와 집기 또한 오래된 장롱과 마루바닥을 그대로 활용했다. 주위의 공업사들이 모여있는 골목이니 만큼, 공구들도 함께 연출해 을지로만의 색깔을 구현했다. 전체 공간은 1층과 2층으로 구성했다.1층은 에피그램의 올모스트홈 카페를 을지로 감성에 맞춘 ‘을지다방’이다. 이곳에서는 올모스트홈 카페의 에코백, 양말, 에이프런 등의 굿즈 판매뿐 아니라 을지다락만의 음료 메뉴인 ‘달달이커피’와 ‘쌍화 밀크티’도 선보인다.



7. 을지로 인쇄골목 사이, 길고 좁다란 계단 끝에 자리 잡은 을지다락의 공간은 묘한 재미가 있다. 가장 아끼는 것을 비밀스럽게 모아둔 어느 다락처럼 음식도 아기자기하게 담아낸다. 육즙이 가득한 로스가츠로 만든 가츠 산도는 다른 소스를 넣지 않아도 간이 딱 맞아 로스가츠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담백한 등심의 감칠맛에 마지막까지 눅눅해지지 않는 바삭한 튀김옷을 입히고 폭신한 식빵으로 감쌌다. 오므라이스는 소스가 살짝 매콤해 질리지 않고 끝까지 맛볼 수 있다. 보기엔 단순한 구성이지만 요소마다의 조합이 한 치도 틀어지지 않았기에 낼 수 있는 맛이기도 하다.


8. '을지다락'의 건물 역시 20여년 된 기존 건물 원형을 그대로 유지했다. 간판도 주변 분위기에 맞게 무채색으로 디자인하여 상권과 어우러지도록 했다. 내부 인테리어와 집기 또한 오래된 장롱과 마루바닥을 그대로 활용했다. 주위의 공업사들이 집중적으로 모여있는 골목이니 만큼, 공구들도 함께 연출하여 을지로만의 자연스러움을 더했다. '을지다락'의 컨텐츠는 비정기적으로 달라질 예정이다. 코오롱FnC가 전개하는 다양한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부터 고객과의 소통을 위한 컨텐츠 전시 공간까지 아우르게 된다.





* 내용 출처

https://bit.ly/3Rzh2CO (헤럴드경제, 2020.02)

https://bit.ly/3dYhQng (조선일보, 2020.02)

https://bit.ly/3SoOSM9 (브리크, 2021.12)

https://bit.ly/3rnWBhx (1코노미뉴스, 2022.09)

https://bit.ly/3rqgl4o (한국섬유신문, 2022.02)

https://bit.ly/3SRRrq0 (allure, 2022.02)

매거진의 이전글 카페 진정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