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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머가 그림을 그리면 벌어지는 일, 정진호

사람도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04.

1. 요즘 주부와 직장인 사이에서 입소문 난 그림 강좌가 하나 있다. 정진호의 ‘행복화실’이 바로 그것이다. 공대 출신의 그림 작가라니, 도대체 어떤 계기로 그런 색다른 길을 가게 됐을까? 약속 장소로 향하는 내내 그의 예사롭지 않은 경력이 물음표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궁금증은 그를 만나 명함을 받는 순간 더 깊어졌다. 명함에는 푸른색이 인상적인 그의 세 번째 개인전의 대표작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뒷면에는 ‘J비주얼스쿨 대표 정진호’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2. 공대 출신으로 정보기술(IT) 업계에서 16년간 일하다 J비주얼스쿨을 창업한 정진호 대표(44)가 희망퇴직 이후 1인 기업가로 제2의 인생을 꾸려가는 비결이다. 회사를 차린 2014년 3월부터 그는 글과 그림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비주얼씽킹(visual thinking)'과 그 생각들을 한 장의 종이에 정리하는 기술인 '마인드맵(mind map)'을 대중에 전파하고 있다. 개발자와 기업문화 전문가로 바쁘게 활동한 직장인 시절 틈틈이 책을 읽고 그림을 꾸준히 그린 게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데 큰 발판이 됐다고 털어놨다.


3. 그가 최근 5년간 그림에 쏟은 시간은 1800여시간. 습관처럼 지니고 다닌 천가방 안에 든 것이라곤 크고 작은 도화지 여러 장과 24색 수채화 팔레트, 스케치펜과 얇은 두께의 붓 두 자루가 전부일 만큼 단출했다. 그렇지만 마음만은 늘 행복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방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중요도에 따라 꼭 필요한 것만 간추려 구조ㆍ체계화하는 작업은 IT 개발자인 그의 업무 효율을 눈에 띄게 높여줬다. 처음엔 선 긋는 것조차 어려웠던 그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법 구도와 색감을 갖춘 그림들을 완성해나갔다. 그림에 취미를 붙이게 된 때부터 지금까지 '철들고 그림을 그리다(2012)', '비주얼씽킹(2015)', '행복화실(2016)'을 차례로 출간했다. 이 책들은 모두 대만과 중국 등으로 수출됐다.


4. 그가 행복해지기 위해 시작한 그림 그리기 활동은 소소하게 시작됐다. ‘스케치 쉽게 하기’라는 책을 사 하루에 하나씩 그림을 그리는 데서부터 시작해 그는 주변 사물 등을 그려나갔다. 이후 회사 내에서 실행했던 ‘2011년 컴즈인의 드림 캠페인’에 ‘그림 그리기’로 도전해 도전자들의 작품들을 모아 경매를 해 수익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고 한다. 이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사람들과 모여 ‘행복화실을 만들다’라는 동호회를 사내에 직접 만들어 70여명의 사람들이 함께 그림을 그리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경험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5. 1997년 12월 IMF 외환위기 직후, 취업 전선에 뛰어든 남자는 30곳에 이력서를 넣어 31번째 기업으로부터 합격통보를 받았다. 이후 내리 12년간 개발자로 일하다 2010년 대기업 기업문화팀으로 이직해 경력전환에 성공한다. 4년간 기업문화전문가로 가장 행복한 직장생활을 보냈지만 회사의 실적악화로 인해 2013년 12월 희망퇴직자 대열에 서게 됐다. 그리고 3년 후, 그는 대기업이라는 거대한 항공모함을 떠나 작지만 자기만의 배를 띄우는 데 성공했다.



6. "에반젤리스트는 '누군가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끔 도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내게 사람과 사람, 그리고 일들을 연결하는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대한민국에서 개발자로 30년 이상 일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어요. 그래서 찾은 것이 '생각 정리' 기술인 '마인드맵(mind map)'이었습니다."


7. 마인드맵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정리하고 또 그것을 새로운 경험과 연결해가는 과정에 매료된 정씨는 마인드맵 공인 강사가 됐다. 직원들을 상대로 3시간짜리 사내 교육을 실시했고 블로그에 올린 강의내용을 정리한 슬라이드를 본 SK컴즈로부터 강의요청을 받게 됐다. 그 일이 인연이 돼 6개월 후 그는 SK컴즈로 이직하게 됐다.


8. "IT업계에서 계속 일하는 것이 맞나 하는 회의가 들던 차에 SK컴즈에서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얻게 됐어요. 기업문화팀에서는 900명의 직원이 즐겁고 행복하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는 일과 사내게시판을 통한 소통, 방송, 동호회 지원 등 새롭고 다양한 일들을 했어요. 제 직장생활 중 그때가 가장 행복하게 일했던 시기였어요."


9. 2013년 겨울 회사의 실적악화로 기업문화팀 전원이 희망퇴직을 신청했고 게임 관련 회사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나이가 너무 많다거나 연봉이 높다는 이유로 퇴짜맞기 일쑤였다.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었고 생계를 위해 뭐든 해야만 했다. 독립하겠다는 특별한 의지는 없었지만 재취업까지 시간을 번다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다.


10. "회사 안에서 했던 3가지, 비주얼씽킹 마인드맵 행복화실을 그대로 들고나와 밖에서 해보기로 했어요. 2014년 비주얼씽킹 첫 강좌를 개설했는데 하루 만에 40명 수강인원이 마감되는 것을 보고 가능성이 보이더군요. 3개월 정도 지속했더니 수입도 괜찮았고 직장 다니는 것보다 시간적 여유도 있어 자연스럽게 1인기업으로 활동하게 됐어요."


11. "1인기업이든 직장인이든 중요한 것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라고 봅니다. 조직 안에서 익힌 기술을 갖고 조직 밖에 나와서도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렇게 만들어낸 가치가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것인가 이 2가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일단 나와서 만들면 된다고 하는데 굉장히 무모한 생각입니다. 대기업이 항공모함이라면 15~20년 후에는 내려야 하는데 배 위에 타고 있을 때 새로운 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12. "1인기업가 상당수가 내가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증명하기 위해 책을 씁니다. 조직 안에 있을 때 책을 한 권 정도 써보는 게 좋습니다. 하루 1시간씩 1년 300시간만 투자하면 가능합니다. '1만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지만 저는 5년 동안 1800시간을 그림에 투자했습니다. 앞으로 동화작가가 되는 것이 꿈인데 동화책을 2~3권 펴내고 나면 동화작가를 위한 수업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13. ‘철들고 그림그리다’(정진호 저·한빛미디어): 공대 출신인 마흔 살 남성이 문득 그림을 그리고 싶어 펜과 노트를 들고 스스로 연습한 결과를 정리한 책. ‘그리기의 행복’은 학원이나 전문가가 알려주지 않는다며 비전공자가 일상에서 그림을 그리는 데 눈높이를 맞춘 책이다. 전문적인 용어를 쓰지 않고, 자신이 그림을 시작할 때를 떠올리면서 그림이 나아지기까지 직접 겪은 경험들을 쉽게, 그림을 통해 알려주기 때문에 재밌고 이해하기 쉽다. 자신의 소품과 일상들을 쉽게 그린 것들이 많아, 따라 그려볼 것도 풍부하다. 펜과 물감, 색연필 등 그리는 데 쓰이는 도구의 종류와 장단점을 정리해 놓아 자신이 원하는 도구를 선택하는 데 도움을 준다.


14. “사람들은 작은 행복들이 얼마나 많은지 잘 몰라요. 그래서 로또 당첨 같은 큰 행운이 오면 행복할 거라고 착각하죠. 하지만 저는 절대 그런 큰 행운은 바라지 않아요. 그런 건 찰나의 쾌락 같은 거예요. 욕심내지 않고 작은 기쁨을 찾아요. 그게 진짜 행복인 거 같아요. 저는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했어요. 행복한 그림을 그리고 싶고요.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도피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일과 일을 연결한다면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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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호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jinho.jung


* 정진호 블로그


http://lovesera.com/


* 내용 출처


https://bit.ly/3fFMrGJ (오마이뉴스, 2016.07)


https://bit.ly/3CuYQpT (한겨레, 2020.03)


https://bit.ly/3CtoHhM (경남신문, 2015.01)


https://bit.ly/3fxdXpD (레이디경향, 2015.04)


https://bit.ly/3C6FQMG (조선비즈, 2012.07)


https://bit.ly/3MgqESd (아시아경제, 2016.10)


https://bit.ly/3EcpODL (헤럴드경제,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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