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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레오

2016년, 대학생 이승우 씨는 건국대 인액터스(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를 만들고 실험하도록 지원하는 글로벌 대학 연합 단체)에서 활돟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소방관들의 근무 환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혈관육종암으로 세상을 떠난 (故) 김범석 소방관의 이야기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소방관들은 국민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지만 현실은 그들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김 소방관의 유족들이 지방 법원에 소송을 냈음에도 근무 중에 생긴 병임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대표의 이러한 관심과 노력은 결국 재판 승소라는 보람된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1심 패소 후 2심 재판 결과 공무상 사망으로 인정받게 됐고, 승소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볼 수 있어 감사했다. 다만 아직까지 암 투병 소방관과 관련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소방관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더 열심히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화재 현장에서 나오는 유해 물질로 암에 걸리는 소방관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故김범석 소방관은 생전에 1살 된 아이에게 ‘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가 아니라 불을 끄다 죽어간 아버지로 기억되길’ 원했습니다. 그는 이런 소방관들을 돕기 위해 그을리고 구멍 난 폐방화복을 가져다 씻고 분해해서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산소통, 마스크 모양을 본뜬 업사이클링 백팩, 슬링백, 메신저백… 소방호스로 만든 동전 지갑은 용기의 에너지를 전염시켰습니다.


“종종 '가방에 검댕이 묻어서 왔어요!'라는 피드백이 와요. 저는 그걸 생명을 구한 흔적이라고 해요. ‘더러워도 그냥 써’가 아니라 오해하지 않도록 설명하고 선택권을 주는 거죠. 깨끗한 것과 흔적이 남은 것, 어느 쪽이든 그 자체로 용기의 빈티지고 환경의 무늬잖아요.”


회사 이름 119레오(REO)는 ‘Rescue Each Other’의 앞글자를 딴 이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누군가 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듯 나도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서로가 서로를 구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폐방화복으로 만든 백팩은 견고하면서 수납공간이 넉넉하고, 소방 현장에서 실제 사용됐던 만큼 생명을 구한 흔적도 남아 있는 특별한 아이템입니다.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사용하던 소방 호스로 만든 카드 지갑은 질감이 독특하고 고리가 있어 어디든 가볍게 걸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가방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복잡합니다. 우선 소방서로부터 내구연한이 지난 방화복과 소방 호스 등 소방 안전 장비를 무상으로 수거합니다. 그 후 지역 자활센터 내 세탁 작업장으로 전달해 2중 세탁을 진행하고, 임가공 작업장으로 보내 분해 과정을 거쳐 원단으로 만듭니다. 이 원단을 각 제품 생산 공장에 전달해 가방과 카드 지갑, 액세서리 등으로 업사이클링합니다. 119레오의 주 고객층은 소방관에 긍정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소방 호스 카드 지갑과 REO926 백팩이에요. 이 대표는 자신의 브랜드가 세상에 전하는 가치를 묻자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용기요. 소방관 직업을 갖지 않고도 열정과 용기를 가진 보통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길지 않은 생애를 시간을 살았지만 행동하면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5년 만에 암투병 소방관 재해 인정 법안이 통과되고, 폐방화복 가방도 조금씩 세상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어요. 후원자들과 꿈꿔왔던 ‘서로가 서로를 구하는 세상’이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방화복 다섯 벌을 빨고 분해하고 조립해야 가방 두 개가 겨우 만들어비니다. 7년 동안 17톤의 폐방화복이 가방으로 재생됐고, 40톤의 이산화탄소배출이 절감됐습니다. 그렇게 밤낮으로 애써 번 영업 이익의 50%는 암 투병 소방관에게 기부되고 있죠. 119레오의 생명 자본은 이렇게 소리없이 암과 싸우는 소방관에게 흘러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 사이 회사도 함께 성장했습니다. 2019년에는 고용노동부에서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했고, 지난해 12월에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소방청장 표창, 올해 7월에는 고용노동부 장관 표창을 받았습니다.


그는 소방관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119레오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역할이 완료되면 해외로 눈을 돌려 방화복을 입지 못하는 나라에 이를 공급할 예정입니다. 2016년 폐방화복을 시작으로 2019년에는 소방 호스, 2020년에는 기동복, 올해에는 리사이클링 원단까지 범주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폐방열복도 업사이클링할 예정입니다.


세상에는 리사이클 브랜드가 수없이 많습니다. 가방 브랜드 역시 적지 않죠. 그 중 가장 유명한 브랜드는 프라이탁입니다. 국내에는 폐차된 자동차의 카시트와 안전 벨트로 가방을 만드는 컨티뉴도 있아요. 하지만 레오119는 친환경에 스토리를 더했습니다. 음지에서 수고하는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브랜드로 만들어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브랜드란 이처럼 제품에 가치를 더하는 과정을 통해 지속가능한 견고함을 얻습니다. 특별한 의미를 가진 사진은 소중하고, 이름을 얻은 반려견은 친구이자 가족이 됩니다. 레오119가 택한 차별화는 소방관들의 스토리였습니다. 용기라는 가치였습니다. 제가 이 브랜드의 성장과 성공을 바라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