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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루루흐

자주 가던 동네 카페가 있었습니다. 훈남 사장님이 정성스럽게 만든 멋진 카페였어요. 하루 멀다하고 그곳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두명의 아리따운 아가씨가 내 앞자리에 앉아 쉴새 없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카페는 사진관이 되어버렸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다 나도 모르게 싫은 소리를 했습니다. 나를 벌레 보듯하며 소리없이 사라지던 그분들을 보며 내가 심한 건지 아닌지를 둘고 한참을 자책을 했습니다.


카페의 목적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카페가 막 등산을 다녀온 아줌마, 아저씨 무리에 점령당할 때면 종동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잠시 일상을 벗어나 사색에 잠기고 싶은, 굳이 집을 나와 주말에 일을 하는 저같은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항변할 사람도 있을거에요. 어차피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곳이니 그게 뭔 대수냐고 말하기도 하겠지요. 저도 이런 사람들에 굳이 토를 달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주길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속초에 있는 비건 카페 '루루흐'는 그럴 염려가 없습니다. 두 사람 이상 착석 금지고 큰 목소리의 대화도 불가입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를 옮기는 것도 불가합니다. 촬영을 위한 대관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이들의 인스타그램을 찾아가보면 정갈한 폰트로 무엇 무엇이 안되는지를 명확하게 써놓고 있습니다. 이른바 '불가, 불허의 카페'인 셈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끝없이 이 카페를 찾습니다. 아마도 저처럼 조금은 예민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겠지요.


사람들은 크고 화려한 브랜드를 좋아합니다.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한 곳을 가고 싶어합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루루흐의 슬로건처럼 '각자가 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건 취향의 문제입니다. 우리도 이제 먹고 살만해지면서 서로 다른 삶을 추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카페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임에 분명합니다.


브랜드를 어려운 이론 속에 가두지 말았으면 합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 과정이 즐겁고 지속 가능하려면 나름의 철학을 담아야 합니다. 세상에 카페는 많습니다. 하지만 루루흐처럼 '각자'가 존중받는 카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걸 어려운 말로 '디마케팅'이라고 부릅니다. 일부러 고객의 수요를 줄이는 마케팅 방법론입니다. 하지만 루루흐가 이런 마케팅을 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좋아하는 카페를 만들었고 수익에 목을 매지 않았을 뿐입니다.


만일 제가 카페를 만든다면 그곳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사방이 트인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봄날이면 통유리 안으로 따뜻한 햇볕이 흘러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유럽 풍의 심플하고 간결한 가구들을 들여놓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루루흐처럼 조용한 곳이길 바랍니다. 밀린 원고를 쓰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화이트 노이즈가 있는 곳... 아, 그냥 카페 이름을 '화이트 노이즈'라고 지어도 나쁘지 않겠다 싶습니다. 여러분이 카페를 만든다면 어떻게 만드시겠습니까? 어쩌면 그 속에 이 시대가 요구하는 브랜딩의 기본이 담겨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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