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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트가 아닌 '양심'을 팝니다, 김하경

1. 1995년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녀는 남편의 건강 악화로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인근 대학가에 3평짜리 이름도 없는 조그만 토스트 가게를 열었다.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어서 더 절실했고 7년 동안을 주 6일, 하루 16시간 이상씩 토스트를 팔았다. 매일 코피를 쏟으면서도 병원에 갈 시간이 없었다. 위궤양으로 아픈 속을 부여잡고도 가게 문을 닫지를 못했다. 그 덕에 1000원대에 팔던 토스트가 하루에 1500개씩 팔리며 ‘대박’을 냈다.


2. 김 사장은 "처음에는 학원에서 애들을 가르쳤지만 수입이 형편없었다"며 "토스트는 가끔 애들 간식으로 만들었는데 맛있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다'라는 생각에 토스트 장사를 하게 됐다"라고 한다. 이때가 1995년 12월이었다. 6개월후에 보증금 500만원에 7㎡(약 2평)가게로 옮겨 아침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영업했다. "문을 열려면 학생들이 줄을 서 있는 거예요. 정말 쉴틈없을 정도였는데 보통 하루 매출이 200만원이 넘었었죠." 1분당 토스트 한 개 이상을 판 셈이다.


3. 김 대표는 “당시 돈을 셀 시간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와 마치 신이 함박눈을 부어주시듯이 돈과 손님을 주신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신도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돈을 부어주시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심는대로 거두는 거고, 세상엔 공짜가 없고, 그만큼 고생을 했다”고 회상했다. 처음에는 케찹 등 기본적인 소스로 맛을 낸 일반 토스트였지만, 이삭토스트를 자주 찾던 한 여학생이 ‘달콤한 소스를 곁들여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해 이삭토스트만의 ‘특제소스’가 탄생했다.


4. 김하경 대표는 이삭토스트 특유의 소스를 개발하게 된 계기가 '의문의 여학생'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케첩, 설탕 등으로 기본적인 토스트를 팔았는데 장사가 잘 됐다. 그런데 경쟁사가 생겨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돌파구를 찾던 중 어떤 여학생 손님이 '소스를 바르면 정말 맛있겠네요'하더라. 그 말이 화살처럼 다가왔다. 심지어 그 여학생은 단골도 아니었다. 연구 끝에 지금의 소스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5. 김 대표는 1995년 생업을 위해 10㎡ 매장에서 토스트 판매를 시작했다. 2004년 주식회사 ‘이삭’을 설립하고 가맹 사업에 나섰다. 그는 공격적인 출점 전략을 구사하지 않는다. 2월 말 현재 가맹점 수는 813개. 5년 전(795개)보다 2.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유가 있다. 가맹점과의 상생 원칙 때문이다. 김 대표는 프랜차이즈 사업의 성공 요인으로 꼽히는 △가맹비 △점포 확장 △물류마진 등에 집착하지 않는다. 가맹비는 매출에 상관없이 월 11만원만 받는다. 본사의 식자재 공급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류 마진도 최소로 잡는다.


6. 김 대표는 간판없이 장사를 했기에, 정작 ‘이삭토스트’ 1호점은 그녀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 주어졌다. 2003년 아파트 단지에서 좌판을 펼치고 장사를 하던 젊은 부부를 우연히 보고, 그들이 눈에 밟혀 며칠을 고민한 끝에 “장사비용을 대줄테니 내가 했던 토스트 장사를 해 보겠냐”고 제안했다. 가게 계약부터 기계 설비, 인테리어까지 8000만원이 넘는 돈을 사비를 털어 지원했다. 고마워 하며 가게 이름을 정해달라는 부부의 요청에 성경에 나오는 인물 ‘이삭’의 이름을 따 이삭토스트라는 이름도 선물했다.


7. 김 사장은 2003년 6월께, 40대 초반의 부부를 보면서 팔자에도 없던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게 됐다. "매일 아파트 입구에 좌판을 깔아놓고 남편은 우유를, 부인은 엑세서리를 파는데 수입은 변변치 않더군요. 내가 포장마차를 해봐서 아는데 장사라는 것이 참 힘들거든요. 잠이 안왔어요. '혹시 나처럼 토스트 장사를 하면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생각했죠."


8. 김 사장은 아무 관계도 없는 이 부부에게 보증금 8000만원에 30㎡(약10평)짜리 가게를 얻어주며 토스트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이름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삭'이라고 지었다. 3년만이지만 맛은 변하지 않았다.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순식간에 소문이 퍼져 전국으로 퍼졌다. 갖가지 사연을 들고와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오는 사람들에게 토스트 기술을 전수해줬다. 서울에 25개 등 약 2개월만에 전국 각지에 토스트 가게가 50여개를 넘었다. 말 그대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빵을 준 것이 아니라 빵 만드는 기술을 제공해 준 것'이었다.


9. 김대표에게 수명 짧은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오래 살아남은 ‘장수비결’을 물었다. “욕심내지 않고, 무리하게 비용창출을 하지 않은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욕심 없는 사장 덕에 이삭토스트는 여전히 가맹비, 로열티를 전혀 받지 않는 프랜차이즈로 운영된다. 인테리어나 물품 조달도 업체를 연결해 직거래 하게끔 하고 별도로 관여하지 않는다. 이삭의 특제소스나 일회용품(컵) 등만 직접 가맹점주들에게 제공해 수익을 낸다. 여기에 월 4만 5000원의 광고분담금이 있다.


10. "살면서 돈은 분명히 필요합니다. 돈이 있어야 생활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도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어떤 사람은 다른 것에 가치를 두는데 저는 어떤 삶을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1995년 개인 창업 하였을 때부터 프랜차이즈 회사를 운영하는 지금까지 ‘장사는 제 양심을 파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기와 과정을 중요시하고 성실과 공의와 정직의 원칙 아래, 공동선 의식 동행을 회사의 사명으로 삼고 정당하고 바른 기업이 되고자 노력하며 이삭을 운영하고 있다. 이삭을 통해 우리 이삭토스트 고객과 가맹점주님들, 직원들, 협력업체들이 더불어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삭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기쁨과 웃음, 행복과 축복을 유통하는 삶 되시기를 소망한다."





* 내용 출처

https://bit.ly/301R5U6 (국민일보, 2021.02)

https://bit.ly/3T8H1Cp (한국경제, 2021.03)

https://bit.ly/3yrLQ1E (미주중앙일보, 2016.09)

https://bit.ly/3SOY6BH (매일경제, 2016.07)

https://bit.ly/3Ci4udD (인사이트, 2018.09)

https://bit.ly/3MkZOYN (머니투데이, 20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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