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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꾼 소설 한 편, 김호연

사람도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12.

1. “인생을 바꿀 시나리오를 써라. 그것을 팔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당신의 인생은 바뀌었을 것이다.” 김호연(48) 작가는 이런 말에 용기를 얻어 20여년을 버텼다. 긴 무명 생활 속에서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꾸준히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소설 <불편한 편의점>이 완성됐고, 이 책은 지난해 4월 출간 뒤 현재까지 1년 넘게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누적 70만여권이 팔렸으며, 지난 8월 출간한 <불편한 편의점2>도 곧바로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


2. “만화 편집자를 하면서, 만화가 종이 잡지에서 웹툰의 시대로 넘어가는 걸 가까이에서 봤어요. 만화 잡지에 작품을 연재하려면 작가의 데생 실력이 중요했어요. 하지만 웹툰은 달라요. 작가가 그림을 좀 못 그려도 (제대로 된,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으면 성공할 수 있었죠.” 그림 없이 스토리만 구하는 대회도 등장했다. 그는 ‘제1회 부천 만화 스토리 공모전’(2005)에서 대상을 받았다.


3. 그러나 '불편한 편의점' 인물들처럼 좌절의 연속이었다. 신춘문예에 두 번 떨어지고, 처음엔 영화 시나리오도 팔리지 않았다. 2007년 전업 작가로 나섰지만 긴 무명 생활이 이어졌고, '망원동 브라더스'로 주목받았지만 스릴러 등 잇단 소설은 빛을 보지 못했다. 산문집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2020)는 출판사 7곳에서 거절당했다. 시나리오를 쓰고 돈이 생기면 몇 개월씩 소설에 집중하는 생계형 작가였다.



4. 그는 숱한 영화와 드라마 작업이 엎어지고, 소설책 판매도 시원찮은 시절을 “생계형 글품팔이 생활”로 버텨냈다. 그 사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인기를 끌며 창작의 기회가 획기적으로 늘어나고, 이야기의 힘이 부각됐다. 2017년 씨제이이엔엠(CJ ENM)이 기획한 작가 지원 프로그램 ‘오펜’ 1기 영화 부문에 선발돼 시나리오 한 편을 팔 수 있었다. 소설을 쓸 여유도 얻었다.


5. "의도했다기보다는 해오던 것 하나하나에 관심 갖고 집중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다. 소설가 지망을 한 게 아니라 어쩌다 소설가가 된 셈이랄까. 그것도 어쩌다 책이 잘 돼서 갑자기 그렇게 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원래부터 이야기를 좋아했고 이야기를 담는 매체를 좋아한 건 확실하다. 관통하는 맥락은 이야기다. 스토리텔러라는 이름에 지금은 욕심이 난다.


6. 이 작품은 서울역에서 홈리스 생활을 하던 독고가 70대 여인의 지갑을 주워준 인연으로 변화하는 내용이다. 이 여인은 동네 편의점 사장이었고, 그녀는 독고에게 편의점의 먹을 것을 주다가 편의점을 통째로 맡긴다. 홈리스 생활을 하던 독고가 의외로 편의점 일에 잘 적응하면서 치유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린 것으로 보인다. ‘불편한 편의점’은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위기에 몰린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자영업자들 중에서 생계가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고, 업종에 따라서는 구조조정의 칼날이 가해지기도 하고, 확진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7. <불편한 편의점>은 출판사 계약 없이 일단 썼다. “텀블벅, 브런치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대중소설을 낼 수 있는 세상이 됐으니까요.” 대학가 운동권이던 학교 선배가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고 해서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인데 타인에 대한 불편한 오지랖이 존재하는 곳’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8. “시대의 공기를 느끼려고 노력해요. 어느덧 편의점이 동네 구멍가게처럼 늘어났고, 아르바이트 직원을 포함해 관련 종사자들도 많잖아요. 편의점 이야기를 친숙하게 느낄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죠.”



9. '불편한 편의점'과 '휴남동 서점'이 연이어 히트를 친 후 출판계에서는 비슷한 부류의 소설 출간이 크게 늘었다. 주로 '어느 동네'에 '어느 가게'가 들어선 이야기들이다. 최근 출간된 일상 소설만 해도 지난 7월 '수상한 목욕탕'과 '하쿠다 사진관'부터 이달 출간된 '외모 대여점'까지다. 그 밖에도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지 않으면서도 유사한 표지를 한 소설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출판계에 따르면 '불편한 편의점' 이후 유사한 표지와 제목으로 출간된 책은 50여 종에 달한다.


10. 최근 늘어난 일상 소설에 대해 출판계는 "하나의 생존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출판계 관계자는 "중소형 출판사는 갈수록 작아지는 출판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슷한 느낌의 책을 낼 수밖에 없다. 최근 유행인 '불편한 편의점'류 소설을 출간하면 최소 2쇄는 보장된다고 한다"고 밝혔다.


11. "달라진 거 없다. 이제 막 데뷔작으로 벼락출세를 했다면 크게 흔들리기도 했을 테고, 30대 중반이나 40대 초반만 하더라도 막 기가 살아 펄펄 뛰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년에 벌써 50이다. 마음가짐은 변함이 없다. 다만, 제일 좋은 거는 이제 소설만 쓰고 살아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물론 대본 작가라는 정체성과 그 작업의 즐거움도 알고 있고, 내가 쓴 대본이 영화나 드라마로 표현되는 것도 여전히 꿈같은 일이지만, 소설가로 자리를 잡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책을 내줄 출판사가 내 작품을 기다리고, 읽어줄 독자가 많아졌다는 거, 그게 가장 큰 변화이고 안정감이고 행복이다."





* 내용 출처

- https://bit.ly/3RSc7Nn (CNB NEWS, 2022.02

- https://bit.ly/3Mh13Iu (여성조선, 2022.08)

- https://bit.ly/3rGAjrv (연합뉴스, 2022.08)

- https://bit.ly/3yn2yz5 (한겨레, 2022.10)

- https://bit.ly/3Esl3Gl (뉴시스, 2022.09)

- https://bit.ly/3RQqUbs (허프포스트, 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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