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막국수 한그릇에 환대를 담습니다, 김윤정

사람도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11.

1. 고기리막국수는 한적한 산골에 있는 작은 가게다. 고기리 계곡을 지나 인가가 드문 골목에 들어서면 식당 하나 덩그러니 있는데, 널찍한 주차장엔 손님들이 타고 온 차들로 가득하다. 메뉴는 막국수와 수육이 전부. 사람들은 국수 한 그릇 먹자고 이곳까지 찾아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 하루 1000명 이상이 찾고, 70번 이상 방문한 단골손님이 생겨날 정도로 인기다.


2. 서울 압구정에서 7년간 운영하던 이자카야를 경영난에 접은 후 살 길을 찾던 부부는 경기도 외진 마을을 찾아 작은 막국수 집을 열었다. 평소 좋아하던 막국수라면 진심을 다해 대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외진 길 옆에서 손님을 기다리며 부부가 마주 앉아 묵묵히 그날의 메밀을 맛보던 가게는 이제 '들기름막국수'의 선구자로 전국에서 몰려온 손님을 맞고 있다.


3. "손님이 우리 가게 외 또 어느 가게를 방문하는지 유심히 본다. 의사나 식당 주인이나 내 가게만 홍보되면 좋겠고 내 가게, 내 병원만 잘 됐으면 좋겠는게 사람 마음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꼭 내 가게만 오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주인이고 너는 손님'이라는 식에서 벗어나 사람을 관찰하고 다른 가게를 경험하는 게 필요하다. 막국수집을 연 뒤에도 10년간 손님이 돼 다른 막국수집을 찾아다녔다. 원래 막국수를 좋아해 먹으러 다니던 시절까지 합하면 20년 정도다. 그렇게 얻은 통찰을 우리 가게에 적용하고 손님의 후기를 보고 고쳐나갔다."



4. “매일 손님들의 후기를 읽는다. 많은 사람이 빅데이터만 있으면 손님들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아니다. 빅데이터도 개인의 취향이 묻어있는 자료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들여다볼 때만 의미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맛에서 타협하지 않으려 한다 . 식당은 매번 100점짜리 음식을 내는 곳이 아니다. 85~95점짜리 맛을 꾸준히 오래도록 내놓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아무리 손맛이 좋은 주방장이 있더라도 맛이 들쭉날쭉하면 오래갈 수 없다. 지금도 365일 중에 280일은 좋아하는 막국수를 먹으면서 손님 입장에서 미세한 맛의 변화를 살핀다.”


5. "소위 대박난 집에 가면 너무 바쁘니까 대표가 계산하고 다음 사람 자리 앉히느라 '정말 맛있었다'는 손님 목소리를 못 듣는다. 그렇게 손님과 접점이 없어진다. 우리는 손님을 맞는 '단체 인사' 안 한다. '쇼'를 한다고 손님이 반가워하지 않는다. 병원 문턱을 넘어올 때, 식당 올라설 때 손님이 제일 먼저 느끼는 감정은 낯섦이다. 대체 내가 어딜 쳐다봐야 하나 고민한다. 그 짧은 순간 오직 나를 맞는 따뜻한 눈빛, 반가운 미소를 마주할 때 비로소 손님은 내가 알던 바로 그곳, 내가 찾던 바로 그 가게라는 생각에 안심한다."


6. "이건 애정의 문제고 집중의 문제다. 눈 앞에 있는 한 사람한테 온전히 집중하면 하루에 1,000명이 오든 2,000명이 오든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집중의 힘은 바로 상대방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다. 내가 만든 국수를 소중한 사람과 맛있게 먹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 내 치료를 받고 다시 건강해지고 행복해지려는 환자, 그리고 이들 덕분에 내가 행복하고 가족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찾아오는 이들에게 애정을 품지 않을 수 없다."


7. "식당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식사를 하기 전부터 무엇을 먹을지, 어디가 좋을지 찾아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맛과 공간에 대한 여운을 나누지 않나. 혼자  배가 고파 하는 식사라면 아무거나 먹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먹을 때에는 먹는 즐거움을 나누기 위한 경우가 많다. 손님들이 만족감을 느끼고 다시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맛있는 음식을 편안하게 드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식당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8. “맛과 위생, 서비스와 친절은 잘되는 가게의 기본이다. 예전에는 기본만 지켜도 성공한다 했지만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다르다. 외출을 꺼리는 시기에 어렵게 결심한 외식이라 기왕이면 친근하고 믿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집을 찾는다. 신뢰와 믿음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음식을 파는 게 전부가 아니라 진심을 다해 믿음을 주고, 음식과 함께하는 순간의 행복한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이다. 작은 가게의 힘은 여기서 생긴다."


9. 김 대표가 말한 '진심'은 "사소하고 지루한 것의 반복으로 진심을 담는 일"이다. 9년 동안 매일 반죽 기계의 나사를 다 풀어 분해한 다음 세척하는 일처럼 그가 말한 '진심'은 말이 아닌 구체적인 일상으로 나타난다. 가장 어려운 일은 나태해지려는 자신과의 싸움이란다.


10. "막국수라는 메뉴를 판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 파스타도 있고, 스테이크도 있는데... 막국수라는 음식이 사람들 머릿속에는 낮은 곳에 있었다. 막국숫집을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덕분에 경쟁이 그리 치열하지 않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고기리막국수는 많은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음식을 선택함으로써 존재 이유를 찾았다.


11. 김대표는 한때 남편과 함께 서울 압구정에서 규모가 큰 일본식 선술집을 운영했다. 워낙 상권이 좋아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모든 손님을 다 만족시키려다보니 메뉴는 80여가지에 이르었고, 어떤 걸 주문해도 무난하지만 손님들에 인상적인 메뉴가 한가지도 없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차별화에 실패하고 경쟁력이 없어진 가게는 압구정 상권이 무너지면서 같이 무너졌다. 힘든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밤낮이 바뀐 삶 속에서 남편이 대장암 1기 판정을 받았다. 불어나는 카드 값에 가게 운영마저 어려워진 부부는 결국 수억 원대의 빚을 떠안고 모든 것을 접어야 했다. 10여 년 전 일이다. 그때의 뼈아픈 경험은 ‘진심 경영’ 철학을 쌓는 큰 계기가 됐다.



12. "손님을 음식을 팔아야 하는 대상으로 보게 되면 손님에게 집중할 이유가 없어진다. 빨리 매출이나 올려주고 나가기를 바랄 테니까. 하지만 저 손님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맛, 서비스, 위생에 대한 기준을 더 엄격하게 잡게 된다. 오신 분들이 행복한 기분으로 가시도록 노력하는 만큼 결국 제가 행복해진다고 생각하니 아무리 찰나의 순간이라도 손님에게 초집중하게 된다. 김치 한 접시를 갖다드리는 순간, 화장실을 안내해드리는 순간,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순간들이다."


13. "흔히 사람들은 말한다. 식당은 음식만 맛있으면 된다고.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당연히 식당의 기본은 맛이다. 하지만 그 기본인 맛보다 더 앞서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화장실에서 배웠다. 화장실은 맛보다 우선하는, 좋은 식당의 기준이다. 주방의 청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화장실의 청결이다. 손님은 식당 화장실이 깨끗하지 않으면 주방에 직접 들어가보지 않아도 주방 역시 깨끗하지 않을 거라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14. “손님들은 작은 것들에 마음이 움직인다. ‘어머! 오늘은 아드님과 함께 오셨네요?’ 하고 먼저 알아보는 거다. 손님은 돈을 내서 우리 음식을 사고, 우리는 그에 맞춰 음식을 내어주는 교환 관계에 있다. 관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로 만드는 것이 이 일의 본질이다. 손님과 나 사이에 이야기와 추억이 쌓여 지금을 만든다. 가게 매출이 오르는 것보다 ‘그 집 가서 좋았어’라는 손님의 한마디가 더 힘이 난다.”





* 내용 출처

https://bit.ly/3ymYP4U (이코노미 조선, 2020.12)

https://bit.ly/3CF0SUe (북DB, 2020.12)

https://bit.ly/3Cb46NK (탑클래스, 2021.01)

https://bit.ly/3oVXwlQ (오마이뉴스, 2021.01)

https://bit.ly/3eh7lva (세계일보, 2021.04)

https://bit.ly/3V5JIGJ (조선일보, 2022.07)

https://bit.ly/3SN9pdk (청년의사, 2022.0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