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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스토리를 팝니다, 개항로 맥주

천 일 동안, 오늘의 브랜드 #63.

1. 투박한 갈색병에 아버지가 편지 쓰듯 써 놓은 ‘개항로 맥주’란 이름. 포스터 모델은 인천 영화관의 간판 그림을 직접 그렸던 나이지긋한 아저씨. 이것만 봐도 이 맥주, 매력 있다. 인천 해안동에 있는 양조장에서 만들고, 맥주병 글씨는 50년 넘게 인천에서 목간판을 만드는 장인이 직접 썼다. 무엇보다 인천에서만 판다. 맛보고 싶다면 수고스럽게 인천을 방문해야 한다. 수제맥주 열풍 속 전국 여느 편의점 냉장고를 꽉 채운 맥주와는 분명 다르다.


2. "개항로 맥주는 인천의 수제 맥주 양조장 ‘칼리가리 브루잉’이 2020년 ‘인천맥주’란 이름으로 다시 브랜딩한 뒤 만든 첫 맥주랍니다. 맥주 종류는 라거로, 도수는 4.5%입니다. 맥주 이름은 개항지인 인천 신포동의 역사를 담았습니다. 지역 스토리를 담았다는 취지에 맞춰 인천에서만 판매해요. 나는 인천 해안동에 위치한 인천맥주 브루어리에서 직접 구매했습니다만, 꼭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인천의 펍이나 치킨집 등 인천에 있는 가게에서도 맛볼 수 있어요. 최근 SNS에 이 맥주에 대한 피드를 많이 볼 수 있어요."


3. 인천으로 시작해 인천으로 끝나는 개항로 맥주만의 스토리가 있어요. 인천 사람과 오래된 가게의 이야기를 담아 원도심을 새로운 명소로 만들어가고 있는 이창길 개항로 프로젝트 대장과 인천맥주를 이끄는 박지훈 대표가 함께 기획했어요. 또 50년 넘게 인천에서 목간판 작업을 하는 전종원 대표(전원공예사)가 글씨를, 인천에서 영화 간판을 그렸던 최명선 대표가 포스터 모델이 돼 만든 로컬 브랜드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브랜딩이 있을까 싶어요. 나도 그랬고 많은 사람이 이 맥주를 마시며 인천이라는 지역을 다시 보게 됐으면 해요.



4. 인천지역 고유 브랜드 맥주인 ‘개항로 맥주’(사진)가 인기를 끌고 있다. 29일 인천시에 따르면 ‘개항로 라거’는 중구 개항로 상인들의 연합체 ‘개항로 프로젝트’에서 7개월간의 기획·연구를 거쳐 만들어졌다. 현지 노포들이 협업으로 경제적 이윤을 나누면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올해 1월 중구청 앞쪽에 위치한 인천맥주(생산공장)와 개항로 통닭에서 팝업 스토어 형식으로 시범 판매를 시작했다. 현재는 인근 개항로 통닭, 개항로 고깃집 등에 납품되고 있으며 편의점이나 택배로는 구입할 수 없다.


6. “인천 가서 사업을 해본다고 하니까 인천 출신인 저희 아버지도 반대를 하셨어요. 하지만 그런 선입견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전 신선한 콘텐츠를 발굴해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노포 점주들과 함께 만들어 낸 ‘개항로 맥주’는 상생의 대표작이다. 배다리에서 50년간 간판에 각인을 새겼던 공예사가 맥주 로고를 만들고 중구 항동 부둣가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는 ‘인천맥주’ 대표가 맥주를 유통한다. 광고 포스터 모델은 동인천역 인근에서 벽화 미술을 하던 영화관 대표를 기용했다.


7. 개항로 프로젝트는 현재 16명의 구성원이 운영한다. 각자 개항로 인근 소식을 추려 SNS를 통해 전달하는 방법으로 홍보한다. 이창길 개항로 프로젝트 대표는 예상대로 인천 출신이다. 버려진 공간을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의 손을 거쳐 제주 귤창고가 펜션 ‘토리코티지’로, 이대 앞 여관이 호텔로 변신할 수 있었다. 이창길 대표가 최근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곳은 인천 대표 구도심인 중구 개항로 600m 거리 일대다. 그는 2018년부터 이곳의 건물 20여 채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는 수십년간 공실로 남아있던 건물을 카페, 술집, 편집숍, 숙박시설 등으로 개조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중구 일대 골목길을 '인스타그래머블'한 상권으로 바꿨다.



8. “구도심이 건재하다는 것은 지역이 낙후돼 있다는 의미이면서도 오래된 역사가 잘 보존돼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보다 앞서서 산업 혁명을 이뤄낸 나라의 대다수 공장도시는 이렇게 오랜 역사와 함께 새로운 창업자들의 상점이 어우러지며 현재 문화·관광 도시로 바뀌었다. 일본의 요코하마, 미국의 뉴욕, 영국의 리버풀 등이다. 개항로 일대는 그 다음 차례라고 봤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1990년대 이후 구도심 상권이 몰락하며 수십년간 공실로 비어있던 건물을 개조하기 시작한다. 과거에도 통닭을 팔던 호프집의 인테리어를 개조해 ‘개항로 통닭’을 팔기 시작하고 산부인과, 이비인후과는 카페로 변한다."


9. 이 때 이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것이 ‘노포’다. 이 대표는 노포를 콘텐츠로 내세우는 것이 최근 트렌드와 걸맞으면서도 이 일대 지역 주민과도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봤다. 이 대표는 “최근 사람들이 규격화된, 따라할 수 있는 콘텐츠를 지루해 한다”며 “로컬 콘텐츠는 그 지역의 시간과 철학인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지역에 와야만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사람들이 일본에 가서 료칸을 체험하고, 독일에 가서 맥주를 마시는 것처럼 개항로에 와서 개항로 맥주를 마시고 이곳의 정취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요소가 노포”라고 말했다.


10. 크래프트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지역성이다. 지역에서 만들어 지역에서 소비할 때 가장 가치 있는 술을 만들 수 있고, 또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에선 “맥주는 양조장 굴뚝이 보이는 곳에서 마셔라”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다. 이동 거리가 짧으니 그만큼 신선한 맛을 즐길 수 있으니 당연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지역에 뿌리내리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기존 입맛에 길들여진 술들을 밀어내고 쇼케이스를 차지해야 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많은 술도가가 전국 유통을 꿈꾸며 대도시 등의 외지 마케팅을 펼친다. 하지만 이것도 만만찮은 일이다.



11. "카피(복제)가 쉬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가령 사람들이 좋아하는 카페를 만들면 비슷한 곳이 곧장 또 생겨나지요. 지금처럼 임대료가 치솟는 상황에서는 견디기가 어려워요. 그 장소가 가진,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을 강조하면 사람들은 거리가 멀어도 기꺼이 찾아옵니다. 과거의 번영은 뒤로 하고 요양병원이 들어서던 인천 개항로에 다시 사람들이 몰려든 것처럼요.


12. 이 대표가 인천 개항로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돈이었다. 장사가 잘 되서 상권이 형성되도 임대료가 폭등하면 결국 쫓겨날 수밖에 없는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원주민 유출 현상)이 본격적인 사회 문제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그는 개항로에 위치한 건물 22채를 매입해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평당 약 600~800만 원으로 서울 시내 건물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었다.


13. 그는 “영국 유학 당시 벽에 붙여놓은 영국 지도를 보며 한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며 "리버풀 위치가 인천인데, 실제로 글로벌 도시인 리버풀을 비롯해 런던과 뉴욕, 요코하마 등은 모두 과거 공장이 빼곡하던 산업지대였던 만큼 인천의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천광역시의 인구는 약 300만 명이며 서울과 수도권 등의 배후인구도 200만 명에 이른다.


14. 2016년 ‘칼리갈리 박사의 밀실’이라는 이름으로 송도에 펍을 내면서 시작된 박 대표의 맥주 도전기는 2018년 현재 위치에 양조장을 만들면서 본격화된다. 그리고 2019년 연말에는 이름마저 ‘인천맥주’라고 바꾸면서 지역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낸다. 인천 연고의 맥주라는 ‘인천부심’을 자신의 맥주에 담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박 대표의 이러한 선택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양조장을 내고 처음으로 만든 맥주에도 그 정신은 깃들어 있다. 신포동은 인천의 대표적인 상업지역이다. 따라서 지역에 뿌리를 내린다는 생각으로 ‘신포우리맥주’라는 이름의 맥주를 선보인다.



15. 이 대표가 인천 개항로에서 로컬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크루를 모집하는 일이었다. 이 대표는 일이 잘되고 안 되는 이유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최소 자신과 5년 이상 알고 지낸 사람, 가치관이 잘 맞는 사람을 찾고 모아 크루를 꾸렸다. 크루와 함께 인천에서 건물을 매입하며 다양한 문화를 가진 업소를 차렸다. 여러 사업을 동시에 진행 중인 이 대표는 비결을 '다른 기업이 절대 베껴낼 수 없는 것, 시간과 철학'이라고 밝혔다. 오랜 시간 노포를 운영한 상인들의 시간과 철학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는 생각으로 노포 상인들과 관계를 맺고 협업했다.


16. 노포상인의 내공에 새로운 트렌드를 접목하니 '올드앤뉴(Old and New)'라는 아이덴티티가 창조됐고 이에 MZ세대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60년 경력 전원공예사의 글씨로 개항로맥주에 로고를 새겼고, 한때 영화 간판 포스터를 그렸던 페인트가게 사장을 개항로맥주 모델로 섭외했다. 맥주 모델을 한 노포상인은 현재 유명 셀러브리티가 됐다. 그는 크루 멤버와 노포 상인어른들과의 협업을 사업 노하우로 전했다. 이 대표는 로컬 콘텐츠를 담은 K-브랜드 버라이어티쇼를 넷플릭스 등 OTT 매체에 실어 해외 송출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 공식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gaehangro.beer/


* 내용 출처

- https://bit.ly/3yx4aXd (세계일보, 2021.04)

- https://bit.ly/3ROvlDM (땅집고, 2022.08)

- https://bit.ly/3yoz4kD (비즈엔터, 2022.08)

- https://bit.ly/3SR0GqF (라이프인, 2022.09)

- https://bit.ly/3EwT08U (대한금융신문, 2022.06)

- https://bit.ly/3CHEyJN (서울경제, 2022.08)

- https://bit.ly/3fSse0g (중앙일보, 2021.09)

https://bit.ly/3ejmhJn (라이프인, 2021.04)

https://bit.ly/3GpDRqI (디퍼,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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