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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칸트'를 아시나요? 배철수

사람도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16.

1. 저널리스트 메이슨 커리의 저서 '리추얼: 세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혼자만의 의식'에 소개된 161명의 위대한 창작가들 일상을 살펴보면 창작가들이 일하는 방식은 그들의 얼굴 생김새만큼 제각각이지만 그 와중에도 다양성을 관통하는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일을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하루를 보내는 엄격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예술을 업(業)으로 삼은 자유로운 영혼들은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며 단조로운 루틴으로 채워진 하루를 보냈다.


2. 다음은 배철수가 한 방송 인터뷰에서 밝힌 하루 일과다. ‘배칸트’는 아침 9시에 일어나서 토스트 두 쪽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뉴스를 검색한다. 11시30분이 되면 방송국 주변으로 가서 주로 20~30대 젊은 PD나 작가들과 점심식사를 한다. 커피까지 마신 후에 피트니스센터로 가서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만 하면서)목욕을 한다. 그는 오후 4시가 되기 전에 생방송 스튜디오에 입장한다(대부분의 DJ들은 방송 직전에 녹음실로 들어간다). 방송이 끝나는 8시엔 곧장 집으로 간다. 책을 읽거나 쉬면서 저녁 시간을 보낸다(많은 독서량은 그의 또 다른 특징이다). 그의 삶에 없는 것 세 가지는 술, 담배, 저녁 약속이다. 이 생활을 지난 30년 동안 반복했다.


3. "나도 좀 신기하다고 할까. 내가 하루 중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스튜디오에 있는 시간이에요. 너무 행복해. 스튜디오의 오디오 시스템도 좋거든요. 음악 맘껏 듣고 청취자들하고 이야기하고 또 실없는 농담도 한 마디씩 하고. 그래서 청취자들이 재밌어 하면 또 기쁘고. 지겹지가 않으니까 지금까지 한 거지, 이걸."


4. "항공대의 캠퍼스 밴드였던 활주로(Runway)로 1978년 해변가요제에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로 인기상을 수상하고 한 달여 만에 다시 대학가요제에 '탈춤'으로 출전해서 은상을 받았다. 구창모는 해변가요제 2차 예선에서 처음 보았다. 우리는 거칠고 투박하게 음악을 했지만 구창모가 속한 홍익대의 블랙테트라는 음악을 깔끔하게 아주 잘했고 구창모의 보컬은 너무나 뛰어나서 한 순간에 반했다."


5. "음악은 다양한 것이 존재해야 한다. 음악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과 싫어하는 음악 두 종류로 나뉠 수 있다. 모든 대중들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TV에서는 모든 장르의 음악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뮤직비디오를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에서의 립싱크를 없애야 한다. 립싱크만 없어진다면 방송도 라이브 위주로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음악도 발전할 수 있다. 모든 제반 여건의 발전이 여기에서 출발한다."


6. ‘음악캠프’를 진행하는 25년동안 그는 자신이 모르는 음악은 소개하지 않는 원칙에 충실했다. “99%는 내가 들어본, 아는 음악을 소개하죠. 나도 모르는 음악을 청취자들에게 들어보라는 건 민폐여서 오후 6시 생방송 시작 두 시간 전에는 늘 방송국으로 출근합니다.” 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청취자들과의 소통이 장수 요인이라고 그는 꼽았다.


7.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내내 음악하면서 너무 자유롭게 살아서 질렸나봐요. 그때는 그게 좋았는데, 막상 방송 시작하고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까 이게 더 잘 맞더라고요. 출근시간은 규칙적이지만 내적 자유를 많이 누리잖아요. 무엇보다 저는 이 일을 진짜 좋아해요. 전세계에서 히트하는 팝음악을 매일 듣고 좋은 사람과 얘기하고 좋은 글도 매일 읽으니까요.”


8. "어떻게 하면 방송을 잘 할 수 있느냐고 묻는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말해요. 다만 지엽적인 충고는 해주죠. 방송에서 거짓말하지 말라고요. 자기는 무슨 말을 했는지 잊어도 청취자들은 다 기억하거든요.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지 말란 말도 해요. 둘 다 발각되는 순간 신뢰를 잃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음악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려면 기본적으로 음악을 좋아하고 뮤지션에 대한 존경심이 있어야 합니다.”


9. 30년 장수는 좋아하니까, 행복하니까, 그리고 배캠을 중심으로 설계된 담백한 하루하루를 살았으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이 단순한 진리를 더 단순한 그의 일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톱스타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좋아하는 일을 재미있게 할 수 있으면 최고 아닌가요. 우등상은 못 타도 개근상은 탈 수 있어요.” 이 멋진 말을 곱씹다 보면 지난해보다 올해 더 멋있는 DJ의 오프닝 멘트가 듣고 싶어진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출발합니다!”





* 내용 출처

https://bit.ly/3yLnxMd (한국일보, 2015.03)

https://bit.ly/3s1sOvG (IZM, 2001.04)

https://bit.ly/3MA40Ei (이코노미스트, 2020.05)

https://bit.ly/3TpsEtn (경향신문, 20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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