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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묵은 문학인들의 아지트, 보안여관

천 일 동안, 오늘의 브랜드 #81.

1. 경복궁역 4번 출입구로 나와 궁궐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통의동에 닿게 된다. 한복 체험을 하는 외국인들, 체험 학습을 나온 중고등학생들 등이 눈에 띈다. 이들을 지나면 낮은 건물들 사이로 ‘보안여관’이라고 쓰여 있는 낡은 간판 하나를 볼 수 있다. 간판은 레트로 감성을 좇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노린 마케팅의 일환일까 의심하게 하지만 이곳은 1936년부터 2004년까지 실제로 운영된 여관이다. 지킬 보(保), 편안한 안(安), ‘손님의 안전을 지킨다’는 이 공간을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문학인들의 아지트’였다는 것이다.


2.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천재 시인 이상, 그리고 문학청년들의 시인부락까지. 오랫동안 수많은 예술가들이 머물고 떠나며 문화촌의 명맥을 이어온 서촌 통의동 일대. 그 통의동 길, 경복궁 영추문과 마주한 거리에 흑갈색 2층의 보안여관이 있다. 영업이 종료된 2004년까지 70년 넘게, 오가는 나그네들의 보금자리였다. 새하얀 간판에 파란 고딕체의 ‘보안여관’ 이름은 그대로지만 이제 여관은 뜨내기손님 대신 이른바 문화 투숙객을 받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


3. 한국의 근대식 여관은 1910년 이후 일제의 식민지 정책으로 도시와 함께 번성하게 됐다. 당시 여관의 역할은 잠을 자야 한다는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공간이었을 터. 하지만 보안여관은 쉼의 공간, 방이라는 명제를 넘어 시인·작가 등이 장기 투숙하며 예술혼을 불태운 곳이다. 보안여관은 서정주·김동리·김달진·오장환뿐만 아니라 이상·이중섭·구본웅 같은 문인·화가들도 장기 투숙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고 알려졌다.


4. 1942년 일본인 건축가가 설계해 지었다는 보안여관은 2002년까지 나그네들의 쉼터이자 숙박 공간으로 쓰였다. 특히 우리 문학계의 거장들이 거쳐간 곳이어서 소중한 측면이 있다. 미당(未堂) 서정주는 ‘천지유정’에서 "1936년 가을 함형수와 나는 둘이 같이 통의동 보안여관이라는 데에 기거하면서 김동리, 김달진, 오장환들과 함께, ‘시인부락’이라는 한 시의 동인지를 꾸며내게 되었다"고 썼다. 최성우 대표는 2007년 이런 역사가 있는 건물을 매입한 후 카페·서점·갤러리 등이 한데 모인 복합 예술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5. 보안여관은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됐다. 보안여관은 여관으로 운영됐던 구관 그리고 새로 지어진 신관으로 건물이 나뉘어 있다. 구관은 현재 보안1942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는데, 1942는 구조물의 상량판에 일본어로 새겨진 ‘1942년에 이 여관이 지어졌다’는 문구에서 따왔다고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서정주의 자서전에 1936년이라고 쓰인 것으로 보아 1930년대부터 이 공간이 운영됐고 1942년에 중축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6. 2층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가 보인다. 그 건물의 이름은 ‘보안 1942’. 이 건물은 보안여관과 달리 오랫동안 보존된 건물이 아니다. 새롭게 지어진 건물이다. 이곳에서 갤러리와 카페 그리고 서점까지 운영되고 있다. 1층에는 ‘카페’가 있고 2층은 전시 주제와 연관된 또 다른 작품들과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지하3층과 4층은 여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7개의 방으로 이뤄져 있다.


7. 구관 2층으로 올라가면 신관과 연결되는 다리를 만날 수 있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과거에서 현대로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신관 1층은 커피 겸 바인 ‘33마켓’이 자리하고 있고 2층에는 서점 ‘보안책방’, 3~4층에는 보안여관의 명맥을 잇고 있는 숙박 시설인 ‘보안스테이’가 운영 중이다. 특히 보안스테이는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작품, 가구로 인테리어 돼 있어 공간에 예술성을 부여했다. 또한 신관 지하 1, 2층은 ‘보안클럽’이라는 프로젝트 공간으로 운영되며 보안1942의 작품들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 공식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oan1942/


* 내용 출처

https://bit.ly/3E5rLBr (매거진한경, 2022.10)

https://bit.ly/3WybcFA (신동아, 2011.09)

https://bit.ly/3NEs1KO (미디어파인, 2021.04)

https://bit.ly/3WyXNwV (아시아경제, 2021.03)

https://bit.ly/3Efx9lT (매거진한경, 20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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