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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에 영혼을 담다, 르라보

천 일 동안, 오늘의 브랜드 #85.

1. 르라보의 창립자 중 한 명인 에디 로시는 프랑스 출신으로 화학을 전공하다가 우연히 향수 원료 및 향료를 개발하는 파르메니히 공장을 방문하게 됐다. 그는 그곳에서 향에 대한 매력을 느꼈고, 2000년 조르지오 아르마니 뷰티 향수 사업부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또 다른 공동 창립자 파브리스 페노를 만나게 됐다. 둘은 출장길마다 서로의 꿈을 공유했고, 그렇게 2006년 뉴욕 다운타운의 롤리타 지역에 첫 르라보 매장을 선보였다.


2. 르 라보는 마케팅 전문가 에드워드 로쉬, 파브리스 피노가 만들었다. 그라스(Grasse)에서 태어나고, 뉴욕에서 자란 브랜드다. 프랑스 남부도시 그라스는 역사 깊은 향수의 중심지다. 에디와 피노는 세계적인 조향사들과 함께 그라스에서 향수를 공부했다. 르 라보 제품에 사용된 고품질의 원료 가운데 상당수가 이 그라스 지방에서 바로 공수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후 르 라보는 뉴욕 로어 맨하탄의 자유로운 감성과 소울을 담아 부티크 매장을 열었다. 


3. 프랑스어로 ‘연구실’이라는 뜻을 가진 르라보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지친 소비자를 위로하는 브랜드다. 거대한 매스 브랜드 유통 방식과 마케팅 방식에서 벗어나 조향사의 연구실을 개방해 고객들이 직접 향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선사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들은 단순한 체험을 넘어 자신의 브랜드가 줄 수 있는 명확한 가치에 집중한다. 심지어는 향수에 얼마나 진심인지 선언문을 작성했을 정도다. 선언문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향수는 너무나도 많지만, 영혼 없이 만들어진 게 많다."


4. 향수 브랜드 ‘르라보’는 기존 향수 유통 방식의 규칙을 깨부수면서 브랜드 경험을 특별하게 만드는 전략을 취한다. 우선 르라보 매장에는 테스트 제품을 제외하고는 미리 만들어 놓은 제품이 없다. 고객이 선택한 향수를 주문과 동시에 레시피에 따라 즉석에서 블렌딩하고 제조 장소와 날짜 그리고 고객이 새기고 싶은 문구를 새겨 제품에 라벨링해 준다. 효율성을 생각한다면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겠지만 그들이 선택한 것은 ‘나만의 향수’를 갖게 되는 경험이다. 제품을 고르고 구매하는 행위에서 더 나아가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온전히 ‘나의 경험’이 된다.



5. 르라보는 개개인의 스토리와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개인 큐레이팅 향수 서비스를 제공한다. 차별성을 둔 것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곧바로 향수를 블렌딩해 유리병에 담고, 근사한 이름 대신 고객이 원하는 메시지를 라벨로 남긴다. 조향사의 장인 정신과 ‘나만의 향수’라는 희소성이 오롯이 깃들어 있다.


6. 르 라보는 ‘made-to-order(주문제작)’ 형식으로 판매한다. 나만의 향기를 골라 주문이 완료되면, 제조사(랩 테크니션)가 고객 앞에서 향수 원액과 에탄올, 물을 블렌딩해 향수를 만든다. 르 라보 관계자는 “배합한 향수는 시간이 흐르수록 산화되면서 신선함이 떨어진다”면서 “완벽한 향을 위해서 향수의 신선함은 필수이기 때문에 주문 즉시 향수를 만든다”고 밝혔다.


7. 브랜드명이 지닌 의미처럼(프랑스어로 ‘실험실’이라는 뜻) 르 라보의 향수는 즉석에서 ‘소울’이라 불리는 부티크의 직원이 제조하는 방식인데, 그라스에서 공수한 고급 원료를 기반으로 농축 재료를 정교하게 혼합해 신선한 향수를 만든다. 제조 날짜와 장소, 이름, 메시지를 적을 수 있는 라벨링 단계까지 거쳐야 비로소 완성이다. 향기를 맡고 탐구하며 취향을 발견하는 여러 과정을 통해 향기를 둘러싼 모든 경험을 판매한다.


8. 르 라보의 향수에는 성별의 구분이 없이 특징이다. 프레쉬한 향에서부터 아주 스모키하고 우디한 향까지 모든 향수 컬렉션을 유니섹스로 분류하고 있었다. 르 라보 관계자는 “앤디 워홀의 예술 작품에 성별이 없는 것처럼 향수는 예술 작품과 마찬가지다. 진정한 향수에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면서 “르 라보는 고객의 성별보다는, 오히려 고객의 성격이나 취향, 스타일, 감정에 집중한다”고 강조했다.


9. 르 라보는 향수 업계 최초로 고객들에게 맞춤형 라벨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향수 라벨에 띄어쓰기를 포함해 23자까지 원하는 문구를 적어 넣을 수 있어 소장 가치를 높였다. 여행용 미니 향수병인 트래블 튜브에 고객의 이니셜을 새겨주는 인그레이빙 서비스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외에도 매장에는 보디로션, 보디오일, 샤워젤, 향초 등 제품군이 다양했고 완제품으로 판매하는 제품도 있었다. 


10. 르 라보의 모든 향수는 하나의 주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베르가못, 로즈, 베티버, 네롤리, 오렌지 블로썸, 패츌리, 아이리스, 암브레트, 자스민, 라다넘, 아가우드, 샌달우드, 일랑, 릴리 등 원료들은 각 향수를 대표하는 주원료가 된다. 제품의 이름은 각각의 향수가 어떻게 조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조향사들이 실험실의 향수 샘플 이름에 번호를 매기는 것에서 착안해, 르 라보 향수의 제품명은 주 원료의 이름과 향수에 들어간 모든 원료의 가짓수를 숫자로 더해 만들었다. 예를 들면, 플레르 도란줴 27 은 총 27개의 원료를 블렌딩했고 그 중에서도 그라스의 오렌지 블로썸(불어로 플레르 도란줴)을 주 원료로 하는 향수라는 뜻이다.


11. 또한 르라보는 샘플도 제품으로 판매한다. 보통 샘플은 이벤트에 의해 지급되거나 구매 고객에게 한정으로 제공되는 것임에 반해 르라보에서는 플래그십스토어의 유선 전화를 통해 샘플을 구매할 수 있다. 유선 전화라는 번거롭기 짝이 없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그만큼 고객의 관여도를 높일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이렇게 어렵사리 내 손에 들어온 샘플을 그냥 화장대에 던져두겠는가.



12. ‘시티 익스클루시브 컬렉션’이라는 독특한 향수 컬렉션은 구매할 수 있는 기간을 일 년에 한 달로 한정해 놓았다. 그 외의 기간에는 컬렉션에 포함된 각각의 향수가 모티프를 따온 도시에서만 구매할 수 있게 했다. 향수 덕후들은 이 제품을 사기 위해 일년을 기다리고 다른 도시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13.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르 라보의 희소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전 세계 15개 도시에 대한 사랑의 헌사로 각 도시에서 얻은 영감과 이야기를 담아낸 ‘시티 익스클루시브 컬렉션(City Exclusive Collection)’은 르 라보의 철학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주제로 한 컬렉션이다. 향신료를 얻기 위해 인도로, 럼을 얻기 위해 서인도제도로 떠났던 과거의 조향사들처럼 시티 익스클루시브 향수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해당 도시로 직접 여행을 떠나야 한다.


14. 또한 대량생산-대량판매 방식에 익숙해진 소비자 개개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제품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 예쁜 디자인과 브랜드 이름을 통해 전달하는 게 아니다. 만드는 과정과 스토리 자체를 제품에 입히고 이를 소비자가 느낄 수 있게 마련해주고 있다. 단적인 예로 앞서 언급한 상탈33은 3년간 417회의 시향 테스트를 거쳤으며, 파브리스가 5개월간 이 향수만 뿌리고 다녔을 정도로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시간별로 어떠한 잔향이 남는지 확인해 다듬는 작업을 계속한 것이다.


15. 쏟아져 나오는 향수 브랜드 사이에서 르라보가 빠르게 성공한 데는 지역과 사람의 가치를 부각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도 유효했다. 특히 시티 익스클루시브 라인은 그 도시 매장에서만 구매할 수 있게 만든 제품들로 매우 희소가치가 높다. 예를 들어 가이악 10은 도쿄에서만, 프아브르 23은 런던에서만 판매한다. 그 제품을 구매하고 싶으면 그 도시에 방문해야 한다. 이러한 비상업적인 방식을 계속 고수할 수 있는 건. 르라보의 철학이 확실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 공식 웹사이트

https://www.lelabofragrances.com/


* 내용 출처

https://bit.ly/3fTSk3t (박진호의 브런치, 2022.09)

https://bit.ly/3G8PHFA (보그, 2022.04)

https://bit.ly/3UONnri (아이즈매거진, 2022.08)

https://bit.ly/3WVwg96 (CHIEF EXECUTIVE, 2022.11)

https://bit.ly/3hxvgIi (보그, 2022.09)

https://bit.ly/3WTZ95t (아주경제, 2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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