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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사진의 이유있는 진화, 시현하다

천 일 동안, 오늘의 브랜드 #103.

1. 구직자와 직장인들 사이에서 10만~40만원의 고가 프로필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이다. 채용 플랫폼에 사진을 내걸고 상시 구직 활동을 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회사 업무에서 소셜미디어(슬랙·카카오톡)·화상회의(줌) 활용이 잦아지면서 ‘화면 속 얼굴’의 중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과거 증명서·이력서에 붙이기 위해 찍었던 정형화된 증명사진과 달리 고가 프로필 사진은 개성을 드러내는 옷차림과 자세·표정이 특징이다.


2. 굳이 전문 스튜디오가 아니더라도 하루필름, 포토이즘, 인생 네컷, 셀픽스, 포토시그니처 등 셀프 사진관을 찾아가 찍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90년대 유행하던 스티커 사진의 형식이지만 조금 더 깔끔하고 세련된 질감으로 인쇄된다. 달라진 건 혼자서 셀프 스튜디오 가는 일이 거리낌이 없어졌다. '혼토이즘', '혼셀픽스'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3. 서울 서초구에 사는 임기원(28)씨의 버킷리스트는 '시현하다'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는 것이다. '시현하다'는 '모두가 똑같은 사진이 왜 날 증명할 사진인가?'라는 김시현 대표의 물음 속에 시작된 사진관. 전형적인 흰색 배경 대신,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을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찍는다. 이곳에서 촬영을 하려면, 치열한 예약 경쟁을 거쳐야 한다. 특히 김 대표가 직접 찍는 사진의 경우, 30초 만에 한 달 예약이 다 차기도 한다.


4. '증명·프로필 사진 열풍'을 일으킨 일등 공신은 SNS다. 사실 증명사진의 주 사용처였던 여권이나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의 경우 살면서 남들에게 보여줄 일이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중장년층의 경우 현재 얼굴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몇십년 전 증명사진을 그대로 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가끔 공개되는 신분증 속 오래된 증명사진은 놀림 혹은 추억의 대상이 됐다.



5. SNS 시대가 되면서 달라졌다. 당장 SNS에 가입하면, 처음 요구하는 것이 '프로필 사진(프사)'이다. 대개 5~6가지 SNS를 하는 2030세대들은 여기저기서 '프사'를 게재하라는 요구를 마주한다. 직장인 이모(32)씨는 "이제는 업무용으로도 SNS를 많이 쓰면서 카카오톡 사진을 고를 때도 신중해진다"며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담은 사진을 카톡 '프사'로 하고 싶어 얼마 전 15만원을 주고 증명사진을 새로 찍었다"고 했다.


6. 19세기 범죄자를 잡기 위해 탄생한 증명사진은 20세기 초엔 국가가 부랑자 등 하층민을 관리하기 위한 프로필 사진으로 진화됐다고 한다. 규격화된 형식미는 고매한 작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그들 중엔 마르셀 뒤샹이나 앤디 워홀도 있었다. 그들은 증명사진의 형식을 차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7. ‘시현하다’의 증명사진은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증명사진의 배경은 왜 흰색인 거지?’ ‘컬러를 배경으로 하면 안 되나?’ ‘꼭 굳은 표정이어야 하나?’ ‘뽀샵(포토샵) 하면 안 되는 거야?’ 등등. 김시현 작가는 이런 의구심에서 증명사진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시작했고, 그는 나름의 성공을 거뒀다. 그것, 아시는지? 주민등록증에 붙이는 증명사진 배경이 반드시 흰색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시현하다’의 주민등록증용 증명사진은 배경이 분홍색, 주황색, 파란색 등 다양하다.



8. '시현하다'의 김시현 작가가 촬영한 증명사진에는 사람마다 배경 색을 달리한다. 정해진 규격으로 촬영되는 증명사진에서 인물을 제외하고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부분이 배경이라는 점에 착안해, 피사체인 모델이 스스로를 잘 드러낼 수 있는 배경색을 선택하게 한다. 배경 외에도 사진 촬영 전 고객과의 충분한 대화를 통해 표정이나 액세서리, 메이크업 등의 연출을 결정하는 등 촬영 대상자의 시각과 자기표현 의지가 담긴 독특한 증명사진들을 완성한다.


9. 3년째 매년 시현하다에서 기록을 남기고 있는 이용자는 "가장 젊은 날인 오늘의 얼굴을 남길 수 있다는 점과 친절하신 작가님, 스태프들 때문에 촬영 후 자신감이 생긴다. 예전 사진관에서 보정을 심하게 해서 눈, 코, 입이 달라지는 게 아닌 최대한 그 사람의 분위기를 살려준다. '시현하다'만의 촬영 분위기나 이후 보정이 좋아서 매년 기록하기로 다짐했다"라고 만족감을 표했다.


10. 아스트로 차은우, 마마무 휘인, 박명수, 프로미스나인 새롬, 빅스 켄, 제이미, 이영지 등 연예인부터 쇼트트랙 국가대표 곽윤기 선수, 정치인 심상정까지 '시현하다'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더 많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현재는 '시현하다'와 비슷한 콘셉트의 증명사진을 찍어주는 스튜디오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 공식 웹사이트

https://www.sihyunhada.com/


* 내용 출처

https://bit.ly/3WADTAM (조선일보, 2022.09)

https://bit.ly/3YPK1Hl (한겨레, 2019.06)

https://bit.ly/3FUzeTw (데일리안, 20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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