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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마케팅의 원조, 티파니앤코

천 일 동안, 오늘의 브랜드 #107.

1. 티파니는 1837년, 찰스 루이스 티파니(Charles Lewis Tiffany)가 학교 친구였던 존 버넷 영(John B.Young)과 함께 '티파니 앤 영(Tiffany & Young)'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당시 티파니는 주얼리 브랜드가 아닌 문구와 팬시제품, 은식기 등을 판매하는 팬시용품, 한국의 '문구점'에 불과했다. 


2. 티파니가 보석을 판매하기 시작한 건 설립한지 2년이 되던 해부터다. 처음에는 아시아 국가로부터 수입한 골동품을 판매하다가 유리, 도자기, 시계, 은 제품 등 다양한 제품을 내놓으면서 뉴욕 신흥 부자들을 사로잡았다. 부자들의 입소문을 타자 티파니는 프랑스에서 보석을 수입해 이들에게 판매했고 본격적인 '주얼리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때 티파니는 주문 카탈로그를 발행했는데, 이는 미국 내 최초의 카탈로그이자 지금까지도 주얼리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블루 북(Blue Book)'이다.


3.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으로 귀족의 보석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올 때 티파니는 프랑스 왕실과 귀족으로부터 많은 양의 다이아몬드를 매입해 ‘다이아몬의 왕’이라 불리며 보석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매입한 다이아몬드는 대부분 미국 스타일의 하이 주얼리라 불리는 티파니앤코의 디자인에 활용됐다. 당시 화려한 유럽 주얼리와 차별화되는 모던한 디자인으로 뉴욕 상류층에 큰 인기를 모았다.



4. 1851년에는 뉴욕 최고의 은세공사 에드워드 C. 무어를 영입, 1853년 공동 경영자였던 존 버넷 영으로부터 경영권을 사들이고 회사 이름을 지금의 상호인 '티파니 앤 코'로 변경했다. 본격적으로 주얼리 사업을 시작하면서 현재 흔히 '925 실버'라고 불리는 은 92.5%와 구리 등 다른 금속으로 7.5%가 채워진 은 합금인 '스털링 실버(Sterling silver)'를 개발해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가해 '은세공 부문 최고 메달(The Excellence In Silverware)' 등 8개 부문에서 메달을 수상했다. 당시 유럽이 아닌 미국 회사가 은세공 부문에서 최고 메달을 수상한 건 최초였다.


5. 티파니의 다이아몬드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1877년이다.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젬스톤 중 하나로 알려진 287.42캐럿의 팬시 옐로우 다이아몬드를 매입한 티파니는 원석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고자 절반 이상의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쿠션 브릴리언트 컷'을 탄생시켰다.  보석의 반짝거림을 극대화하는 해당 방식에 현재까지도 해당 다이아몬드는 가장 아름다운 옐로 다이아몬드로 기록돼 있으며, 이것이 곧 티파니의 상징이 된 '티파니 다이아몬드'다.


6. 미국 내 최초의 카탈로그인 티파니의 주문 카탈로그 '블루 북'의 커버로 사용하던 민트색은 일명 '티파니 블루'라고도 불린다. 로빈스 에그 블루로 잘 알려져 있는 해당 색상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신부들이 '나를 잊지 말아 달라'는 뜻을 담아 결혼 답례품으로 민트색의 비둘기 모양 브로치를 선물했던 것에서 영감을 받은 색이다. 1886년 '티파니 세팅' 제품을 선보이며 처음으로 민트색의 상지에 반지를 넣었을 때 블루 상자를 따로 구매하겠다는 고객이 속출했으며, 이후 티파니는 모든 제품의 상자와 종이백을 해당 색상으로 만들었다.



7. 하얀 실크 리본으로 묶인 티파니앤코의 블루 컬러 박스는 전 세계 여성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 박스의 블루 컬러는 ‘티파니블루’로 공식 등록된 컬러명이다. 브랜드 티파니앤코를 상징하는 티파니블루는 가장 오래된 컬러 마케팅 사례로 꼽힌다. 티파니는 브랜드명이 영화 제목(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에 들어간 첫 패션 브랜드이기도 하다.


8. 티파니는 ‘정찰제’를 고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정찰제는 드문 가격 정책이었기에 화제를 모았다. 1862년 링컨 대통령은 부인인 메리 토드 여사를 위해 티파니 시드 펄 네클리스(seep pearl necklace)와 이어링을 구매했는데, 이때 한 푼도 깎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영부인은 대통령 취임 축하 무도회에 선물받은 주얼리를 착용했다. 티파인앤코의 제품은 밴더빌트, JP 모건, 재클린 케네디 등 미국 상류층이 애용하며 여성들에게 로망의 대상이 됐다.


9.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으면서 티파니앤코 역시 어려운 시기를 보냈으나 1955년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었던 월터 호빙이 티파니앤코를 인수하면서 크게 도약했다. 그의 성공 요인은 감각 있는 디자인 디렉터들을 영입해 디자인 혁신을 통해 가치를 높인 데 있다. 1955년 진 무어가 티파니앤코에 합류하면서 유명 아티스트와의 창의적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뉴욕 티파니앤코 매장의 쇼윈도는 전 세계 많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1956년 전설적 디자이너 장 슐럼버제는 식물과 바다 생물을 귀중한 젬스톤으로 표현해 그의 호화롭고 기발한 디자인을 재치 있게 활용했다.



10. 티파니는 따로 세컨드 브랜드 없이 수십만 원 대의 저가부터 수천만 원대 고가의 제품까지 가격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쉬운 설명을 위해 '저가'로 표현하기는 했으나 티파니 측은 자신의 브랜드에 '저가의 제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모든 제품들은 '적절한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고급 은으로 최상의 디자인을 적용해 합리적인 가격대의 제품을 선보인다는 게 티파니 측의 설명이다.


11. 세컨드 브랜드를 따로 론칭하지 않는 이유도 있다. 비싼 보석을 살 수 없는 형편의 젊은이들이 티파니가 가지고 있는 창의력과 스타일을 블루 상자에 넣어 선물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이것이 '티파니 드림'이다. 티파니에서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하트 목걸이 '리턴 투 티파니' 등은 모두 티파니에서 가장 저렴한 주얼리 라인이다. 이런 티파니의 폭 넓은 가격대는 폭 넓은 소비자들을 불러모았고, 소비자들이 티파니를 사랑하는 이유가 됐다.




* 내용 출처

https://bit.ly/3YJzail (아시아경제, 2019.10)

https://bit.ly/3PRBShJ (데일리팝, 2020.02)

https://bit.ly/3WFTXBu (신동아, 2022.04)

https://bit.ly/3GjhnXW (매일경제, 20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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