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늘 느끼는 거지만 일본 사람들을은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도 항상 '대결' 구도를 만들어낸다. 마치 사무라이의 목숨을 건 한 판 승부를 캐릭터만 바꿔 묘사하는 기분이랄까. 나는 그 특유의 절박함이 피곤해서 결국 끝을 보지 못한 작품이 많았다. 지브리 스튜디의 작품을 좋아했던 이유는 바로 그런 전형적인 일본스러움을 벗어나 있기 때문인데, 가장 최근 작품이 2차 세계대전에서 명성을 떨쳤던 전투기 '제로센'을 만든 사람이 주인공이란 얘기를 듣고 유일하게 관람을 포기했었다.
2. 내 나이 또래의 사람이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 덩크를 못봤다면 그건 정말 거짓말이지. 하지만 나는 솔직히 '베가본드'를 더 좋아한다. 그 특유의 분위기를 '스타워즈' 만큼이나 좋아한다. 그야말로 무사들의 목숨을 건 일전이 이야기의 전부이니까. 그러니 이작품 역시 소재는 농구지만 마치 한 판 승부를 앞둔 사무라이들의 이야기라 해도 크게 과장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작가가 일본의 자위대를 찬양했다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으니 꼭 애국심이 아니라 해도 마음이 착잡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3. 하지만 작품을 작품으로 보자는 누군가의 말에 동의하더라도 이번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는 내내 나는 지루함을 견딜 수 없었다. 슬램덩크의 과거 명성은 인정하지만 그 명성에 기대어 신파와 슬로 모션을 남발하는 이 작품에서 요즘 일본인들의 심정을 빗대어 읽을 수 있었다면 그건 과장일까? 추억은 추억일 뿐이다. 만화를 3D로 옮긴, 농구 골대의 그물망 휘날리는 장면까지 구현해낸 그들의 장인정신에는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나는 하도 많이 들어 늘어난 카세트 테이프를 듣는 심정으로 거의 2시간을 견대낼 수밖에 없었다.
4. 슬램 덩크를 슬램 덩크로 소비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레전드의 재등장에 열광하는 것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부활이 아니다. 작가는 거의 10년 째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있고, 나는 그야말로 그가 추억팔이로 연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작가를 일본인들이 추앙하고 받드는 것은 이해한다. 일본의 전성시대를 추억할 수 있는 하나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니까. 하지만 굳이 나까지 그 대열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게 슬램덩크는 그저 추억일 따름이니까.
5. 최근 '아리스 인 더 보더랜드 시즌2'가 인기를 끌면서 해외에선 다시금 오징어 게임과의 비교가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게 왜 이슈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부상하는 한국 문화를 따라잡고 싶어하는 일본인들의 그 이상한 상실감과 절박함은 조금은 이해할 수가 있다. 그들에게는 아마도 이런 문화적인 트렌드 역시 사무라이의 한 판 승부처럼 비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BTS를 따라잡겠다고 나섰다가 무너진 일본 아이돌이 어디 하나 둘이었던가. 그리고 이건 한국을 향한 비틀어진 열등감의 발로가 아닌가 의심을 거둘 수 없다.
7. 만화 영화 하나에 지나친 의미 부여를 할 필요는 없다, 고 누가 주장한다면 그 의견도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현 시점에서의 문화적 지형도는 일본보다 한국이 한 발 앞서 있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쏠림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는 것이고 그게 유행이다. 그게 트렌드다. 내가 괜한 애국심을 가지고 더 퍼스트 슬랭덩크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피 끓는 심정으로 슬램덩크를 보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도 나이 들었고 슬램 덩크는 그저 과거의 영광이었다. 그걸 3D 극장판으로 만든다고 해서 과거의 영광이 재현되리라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다.
8. 일본의 그 일본스러움은 대결, 그리고 승자 독식의 문화적 배경에 기인한다고 본다. 유독 일본 사람들이 패배를 못견뎌하고 '분하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 건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닐지. 하지만 우리나라가 어떤 민족이던가. 임금이 성을 버리고 도망가도 백성들이 나라를 구해겠다고 목숨을 바치는 희한한 민족이다. 그리고 그 민족성은 어딜 가지 않아서 때로는 한 나라의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기도, 세우기도 했다. 그건 아마도 일본인들이 절대 이해 못할 정서이리라.
9. 주절 주절 여러 글을 썼지만 내 글의 요지는 하나다. 일본은 우리와 다르다. 그들의 영광은 과거다. 적어도 현재의 영광은 우리 것이다. 그러니 과거는 과거로 받아들이고 현재는 현재로써 이해를 하되 미래는 어찌 될지 모르니 또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과거의 슬램덩크를 가지고 오늘에 와서 울고 짜고 하는 동시대의 관람객들 평을 보자니 괜히 답답한 마음이 들어 이렇게 길게 길게 수다를 떨게 된다. 영화는 지루했다. 회상 씬은 지나치게 루즈했고 신파에 기댄 극의 전개는 내 마음을 움직이는게 실패했다. 이건 일본과 그 문화에 대한 나의 감정과는 또 별개의 솔직한 평가임을 감히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