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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미의식을 담다, 마루니

천 일 동안, 오늘의 브랜드 #115.

1. 고급 목재 가구의 산지로 알려진 일본 히로시마. 그곳에서 3대에 걸쳐 목공 가구 제작을 이어오고 있는 기업이 있다. 바로 마루니다. 창업자 야마나카 타케오(山中武夫, Yamanaka Takeo)는 나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소년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기계 이론을 나무라는 소재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밤낮으로 고민했다. 독학으로 독일어를 익혀 서구의 기술 서적을 탐독했다.


2. 1928년에는 마루니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쇼와 곡목 공장을 세웠다. 1933년 마루니로 회사 이름을 개명, 수공예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당시 목재 가구업계에 ‘공예의 공업화’를 모토로 기계와 사람의 분업을 통한 양산화를 추진했다. 1968년 발표한 클래식 시리즈는 일본에서 출시한 서양 가구 중 최고의 히트 상품이다.


3. 위기의 마루니가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2004년 시작한 넥스트 마루니(Next Maruni) 프로젝트다. 원점으로 돌아가 ‘디자인, 서비스, 가구란 무엇인가’에 대해 모색했다. 후카사와 나오토(深澤直人), SANAA, 알베르토 메다(Alberto Meda) 등 세계적 디자이너 12명에게 ‘일본의 미의식을 담은, 세계에 통할 의자’ 디자인을 의뢰했다.



4. "판매 면에서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지 못한다. 반면에 세계의 수많은 미디어가 마루니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홍보 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베테랑 장인에게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고집해온 기술, 합리화를 이유로 사용하지 않던 기술 등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젊은 장인은 비용 절감만을 강조하던 작업 분위기에서 벗어나 다양한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5. 마루니는 2004년 기존 마루니 가구의 클래식한 서양 스타일에서 벗어나 ‘일본의 사상을 담은 세계의 의자’라는 컨셉트의 ‘넥스트 마루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마루니의 컨셉트에 공감하는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의자·암체어·테이블 등을 만들어 냈는데 미니멀 디자인의 대명사 ‘±0(플러스마이너스 제로)’의 나오토 후사카와(무인양품의 환풍기형 CD 플레이어도 그가 디자인한 것)와 마지스의 에어 체어, 삼성의 유럽폰을 디자인해 국내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제스퍼 모리슨도 참여했다.


6. 마루니는 공예의 공업화를 추구하는 회사로, 어떻게 하면 예부터 내려온 제조의 미의식과 섬세함을 살려낼 것인가를 궁리한다. 후카사와를 초빙하여 디테일까지 섬세하고 부드럽게 만든 의자는 매우 많이 팔렸다. 손으로 장인이 만들던 것을 기계를 적절히 이용했다. 현대적인 물건이지만 공예정신이 살아있는 상징적인 제품이다.



7. 마루니 목공의 히로시마 가구는 사장인 숙부의 권유로 도쿄은행 불량채권 담당을 하던 야마나카 다케시가 2001년 경영권을 물려 받는다. 일본 경제의 거품 붕괴 후 경영난을 겪게 되고 왜 팔리지 않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회사의 제품이 자신도 갖고 싶은 제품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세계적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를 영입한다. 이후 애플 디자인 책임자인 조너던 아이브가 선택해 새로운 애플 본사인 캘리포니아의 애플파크에 수천 개의 의자를 납품하기에 이른다


8. 미국 캘리포니아주 구파치노에 있는 애플의 새로운 본사인 ‘애플 파크’에는 마루니목공의 의자 ‘히로시마HIROSHIMA’가 수천 개 놓여 있다. 일본의 지방에 있는 가구 회사가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에 의자를 대량 납품한 것이다. 마루니목공은 ‘정말 만들고 싶은 것’에 초점을 맞춘 뉴타입이 강한 적중력을 통해 결국 메이저 시장에까지 진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 내용 출처

https://bit.ly/3GShs54 (중앙선데이, 2008.09)

https://bit.ly/3CBPEQd (중앙선데이, 2011.02)

- 뉴타입의 시대 | 야마구치 슈, 김윤경 저

https://bit.ly/3CCbtij (디자인, 20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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