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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칼을 사랑하는 청년이 있다, 연마장인

'연마장인'은 칼을 갈아주는 브랜드다. 더 정확하게는 칼 가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좋은 칼을 판매하는 일을 한다. 이 브랜드를 만든 정회승 대표는 원래 일본 요리학교를 졸업한 요리사였다. 학교를 다니면서 우연히 칼을 연마하는 장인의 솜씨에 빠져들었다. 졸업 후 호텔에서 일하면서도 칼 연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3,4년 간 주말마다 스승님을 좇아다녔다. 그렇게 10년 간 요리사로 일하던 그는 이제 칼을 연마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사실 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일본 아니던가. 흔히 카타나로 불리는 일본 칼은 외국에서도 엄청나게 사랑받는다. 일본인 특유의 섬세함이 녹아든 일본도가 그럴진데 요리사용 칼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런 일본칼을 수입해서 파는 일도 한다. 칼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정 대표의 눈빛이 달라지는 걸 금방 느낄 수 있다. 그는 칼을 만들고 연마하고 다루는 일이 즐겁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나라엔 골목마다 칼을 갈아주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건 그때 쓰던 칼이 무쇠로 만들어 녹이 슬고 금새 무뎌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스테인리스 칼이 등장하면서 칼 가는 문화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스테인리스 칼은 무쇠 칼 보다 강도가 높을 뿐더러 녹이 슬지도 않는다. 그러나 칼은 칼이다.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요리사나 주부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오고 있었을까? 요리사들은 정 대표 같은 사람들에 칼 연마를 의뢰한다. 그러나 주부들은 그렇지 않다. 참고 쓰거나, 새 칼을 사거나, 인터넷에서 팔리는 연마기를 활용하곤 한다. 그러나 그렇게 다루면 칼은 망가진다. 문득 유난히 손목이 약한 와이프가 칼 때문에 투덜거리던 기억이 났다. 아마 이런 사람들이 한 둘은 아닐 것이다. 칼 가는 문화는 사라졌지만, 녹 슬지 않는 단단한 칼이 등장했지만, 주부들의 문제가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닌 셈이다.



나는 정 대표와 두어 번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 필요한 것이 다름아닌 '스토리'임을 강조했다. 그는 좋은 칼을 구분하는 '안목'이 있다. 10년 간 요리사로 일하면서 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는 칼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연마 장인으로부터 수 년간 직접 사사를 받았을 정도로 전문가이다. 하지만 그를 아는 소비자들은 극히 소수이다. 아는 사람들만 알음알음 그를 찾는다. 그러나 가정에서 칼로 씨름하는 수많은 고객들은 아직 그를 모른다. 심지어 그를 아는 요리사도 아직 소수에 그친다. 그런 그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미처 몰랐던' 필요를 깨우는 일이다. 스테인리스 칼도 연마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칼을 연마하는 방법, 도구가 있음을 소비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런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다름 아닌 '스토리'임을 강변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개발한 것이 아님은 우리 모두가 안다. 그가 만든 애플이 시장 조사보다 우선하는 것은 인간의 욕구다. 복잡한 IT 도구인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철저히 '개인화'해서 사람들에게 내어 놓는다. 사람들은 아이패드가 필요해서 사지 않는다. 갖고 싶어서 구매한 후 쓸모를 고민한다. 나 역시 그렇게 세 번을 샀다가 결국 다시 되팔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나는 아이패드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애플의 제품이 주는 심미적이고 개인화된 스마트 기기가 주는 매력 때문에 구입한 거였다. 이것이 애플이란 브랜드가 가진 힘이다. 그렇다면 칼은 어떨까? 주부들이 주방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도구가 칼이 아니던가. 연마된 칼은 놀랍도록 주부들의 손목을 가볍게 만들어준다. 나는 이 '연마장인'이란 브랜드가 종국엔 주부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위로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정 대표에게 '칼'을 팔아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 칼이 주는 문제 해결의 힘, 그리고 싹둑싹둑 경쾌하게 썰리는 칼이 주는 즐거움과 위로를 팔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지금까지 수십 개의 키보드를 구매한 경험이 있다. 키보드 매니아들은 안다. 각각의 키보드가 얼마나 다른 키감과 타건감을 주는지를 말이다. 그렇게 내 손에 맞는 키보드를 두드리다보면 글이 훨씬 더 잘 써지는 듯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수십만 원 하는 키보드를 사는 일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연마장인'은 그런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잘 연마된 칼이 주는 만족과 기쁨, 좋은 칼을 알아보는 전문가의 안목을 팔아야 한다. 그리고 그에 걸맞는 스토리와 패키지 디자인과 적합한 판매 채널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스테인리스 칼 역시 '연마'가 필요하다는 새로운 '칼의 문화'를 팔아야 한다. 더 나아가 아내를 위해 잘 연마된 칼을 남편이 선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야기가 여기에까지 다다른다면 더 이상 판매를 고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가능성을 가진 존재가 바로 정 대표가 사랑해마지 않는 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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