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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떡의 글로벌화를 꿈꾸다, 삼청동 호떡

천 일 동안, 오늘의 브랜드 #149.

1)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에서 호떡 장사를 하는 조영준 씨. 한 때 직원 80여 명을 둔, 잘나가는 벤처기업의 사장이었던 그는 15년 전 친구의 배신으로 부도를 맞고 70억 원의 빚을 진 채 거리로 내몰렸다. 이후 공사장, 쓰레기매립장 등을 전전하며 닥치는 대로 일을 하던 그는 8년 전 1.5평짜리 호떡 가게를 차렸다. 절망의 끝에서 장사를 시작한 조 씨는 “호떡을 최고의 요리로 만들겠다”며 맛에 승부를 걸었다. 그리고 겉은 바삭 하고 속은 쫄깃한 꿀 호떡, 팥 호떡, 야채 호떡, 고기 호떡 등 4종류의 메뉴를 완성했다. ‘호떡은 간식’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하는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서울경제, 2018.01)


2) 사업에 실패한 후 조 씨는 안해본 일이 없었다. 차량정비업, 화장실 청소용역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나갔다. 그런데 다양한 분야 많은 업종을 경험해도 ‘이게 내 업이다’ 하는 일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되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40대가 돼서야 만난 아이템이 바로 호떡이다. (미래한국, 2021.04)


3) 호(胡)떡은 원래 중국 떡 종류의 하나로 ‘오랑캐떡’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중국식 호떡은 우리나라 호떡과는 많이 다르다. 지역에 따라 부추나 돼지고기 등이 들어 있는 것도 있고 속에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은 호떡, 또 공갈빵처럼 속이 빈 딱딱한 호떡도 있다. 우리나라의 호떡은 화교가 처음 조선에 들어와 만들어 먹은 이후 도입됐다. 청나라 군인들이 먹는 떡을 보고 사람들이 오랑캐가 먹는 떡이라고 해서 오랑캐 ‘胡(호)’자를 따서 호떡이라고 했다. (미래한국, 2021.04)



4) 조 씨가 만드는 호떡은 손님들이 '호떡계의 강호동'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두툼한 크기를 자랑했다. 크기만큼 뛰어난 맛은 손님들의 발걸음을 끄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수많은 손님들은 공통적으로 "겉은 바삭하고 안은 쫄깃쫄깃하다"며 호떡의 식감과 맛을 칭찬했다. 또한 꿀, 단팥, 고기, 채소 등 다양한 호떡의 종류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인기 메뉴인 꿀, 채소 호떡은 독특한 풍미로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티브이데일리, 2018.01)


5) “한 달에 어마어마하게 팔았어요. 처음 시작하고 두 달 정도 지나면서 대략 한 달에 4500만 원 어치 팔았어요. 연간 4억~5억 원 정도 벌었죠. 엄청났어요. 가게 오픈이 10시인데 사람들이 9시 30분부터 와서 줄을 서요. 100여 명이 미리 줄을 섰죠. 한 사람이 한 번에 5만 원, 10만 원 어치씩 대량으로 사 가는 바람에 뒷사람이 못 사는 일도 벌어져 한 사람당 만 원까지만 살 수 있도록 끊어 팔기도 했죠. 사랑을 받게끔 노력했던 결과라고 생각해요.” (미래한국, 2021.04)


5) “이런 경험도 있어요. 한 미국인이 가게에 와서 그 자리에서 8개의 호떡을 먹었어요. 자기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 와서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고 그러더군요. 이 양반이 다음날 또 오더니 아주 많은 양의 호떡을 사갔어요. 또 한 일본인 커플은 락앤락 통을 갖고 왔더라고요. 5시간 뒤에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일본에 있는 식구들에게 맛보여주고 싶어서 갖고 왔다고 그래요. 8만 원 어치 사갔어요. 그 친구가 3년 뒤에 가게를 찾아왔어요. 그러면서 그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때 가져간 호떡을 가족들에 나눠줬는데 다들 만족해했다 그러더라고요. 감동이었죠. 그 일본인 커플이 작은 선물을 주더라고요. 저도 그냥 보낼 수 없어 가게 근처 파리바게뜨에 얼른 가서 케이크를 사서 들려 보냈어요. 하하.” (미래한국, 2021.04)



6)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 팬데믹 불황은 손님이 끊이지 않던 ‘삼청동 호떡’도 피해갈 수 없었다. 2020년 2월 이후 매출액은 10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호떡의 글로벌화를 꿈꾸며 미국, 베트남 등 해외에 열었던 지점도 현지인 입맛에 맞는 호떡 연구에 박차를 가하던 중 코로나로 인해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그래도 조 씨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자신이 개발한 호떡에 대한 프라이드가 그의 버팀목이다. “코로나로 지금 많이 어려워졌지만 제게 중요한 것은 단지 매출이 아니라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 한분 한분이에요. 그분들이 정말 소중하기 때문에 몇 명이 오더라도 가게 문을 항상 엽니다.” (미래한국, 2021.04)


7) “호떡 글로벌화예요. 어떤 환경에서도 그 길은 꼭 가보고 싶습니다. 저희 부부는 지금 하는 곳은 후배들에게 주고 순례자 정신으로 다른 곳을 개척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평창이나 장수 이런 곳으로 내려가 노후를 설계해보려고 해요. 올해부터 준비하려고 합니다.” (미래한국, 2021.04)




* 내용 출처

https://bit.ly/40dmoc6 (미래한국, 2021.04)

https://bit.ly/42KX3YW (서울경제, 2018.01)

https://bit.ly/40Gkvol (티브이데일리, 2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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