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선 사람도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여러 번 강조해서 말했다. 하지만 지금부터 써내려갈 글은 정 반대의 글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브랜드가 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쉽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핵심적인 이유 한 가지가 있다. 그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모른다. 나는 내가 글을 '좀 쓴다'는 사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글만 쓰면 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는 '학생이 쓸 수 없는 시를 썼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재능을 가진 친구들은 넘쳐난다. 그 재능을 일로 연결하고, 그 일로 나 자신이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확히는 나이 50이 되어서야 누군가에게 나도 브랜드라고 조그만 목소리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브랜드를 업으로 삼은지 15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내가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주변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둘째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일찌감치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한 첫째는 그나마 행운아인 셈이다. 특별하게 좋아하는 것이 없는 첫째는 한때 성우를 꿈꾸었다. 그런데 요즘은 더 이상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저것 시켜보는 거였다. 그래서 지금 우리 딸은 그림을 공부하고 보컬을 배운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와 함께 찾은 피트니스 센터에선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어머니, 희원이 골격이 딱 체대 스타일인데요?" 엄마를 닮아 허벅지가 튼튼한 우리 딸이 들을 법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딸이 고1인 지금 체대를 준비해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딸은 생각 외로 섬세한 친구였다. 잘 참는 친구였다. 생각의 속도가 빠르거나 암기력이 뛰어난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무엇이든 꾸준히, 성실하게 하는 친구다. 그러나 여전히 딸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건 부모인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브랜딩은 어렵다. 특히 자기 자신을 브랜딩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사업을 한다면 아이템이라도 정할 수 있다. 장사를 한다면 몫 좋은 곳을 찾아다닐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브랜드가 되려면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지 막막한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경험만 쌓는 것이 옳은 일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얼마 전 공공기관의 심사를 하기 위해 며칠 간 해당 공무원과 함께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꽤 높은 직위의 그 분과 마지막 날 회식 자리에서 민증을 까고 말을 텄다. 그러자 그렇게 깐깐했던 공무원이 형님, 형님 하며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공무원이 싫다는 거였다. 하고 싶은게 너무 많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 분은 아마 공무원을 오랫동안 계속 할 가능성이 높다. 그 직위와 안정된 직장을 쉽게 포기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제품과 서비스를 브랜딩하는 데는 나름대로 전환점이 있다. 아이템과 입지, 비즈니스 모델 같은 프로세스가 있다. 하지만 나를 브랜딩한다는 것은 딱히 어느 지점이라고 설명하기 힘든 모호함이 있다. 그런 고민의 시작점은 대개 다음과 같은 질문과 의문, 고민에서 시작된다. 과연 내가 하는 이 일을 평생 계속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신나게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지 않을까? 내가 정말 이 일을 좋아하고 잘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 들어올 때다. 어느 누구도 특정일에 오늘부터 내가 브랜드가 되어야지, 하고 결심하진 않는다. 그러나 앞서 말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다. 이 고민을 한 마디로 줄여서 설명하면 '나답게 살고 싶다'는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나답게 산다는 게 뭔지 너무 모호하다는 거다. 사람마다 다 다르니 정답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다. 서울대나 삼성은 목표라도 있지, 이 질문은 구체적이지 않으니 해법도 모호하다. 그래서 나는 '브랜드'가 뭔지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나를 브랜딩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브랜딩은 한 마디로 제품과 서비스에 '가치'를 더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가치란 고객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쓸모 이상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시계의 쓸모는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이런 쓸모 때문에 시계를 사지 않는다. 중요한 계약을 체결한 후 스스로를 격려하기 위해 롤렉스를 사서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이때의 고객은 나 자신이다. 스스로를 격려하고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우리는 명품 시계를 산다. 럭셔리 브랜드의 가방을 구매한다. 사람이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행해야 할 과정은 '나를 아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나의 숨은 욕구를 발견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공무원은 정말로 하고 싶은게 많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런 분이 정해진 일만 해야 하는 공무원의 삶이 힘든 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공무원을 그만 두고 예술가의 삶을 새로 시작해야 할까? 그건 아닐 것이다. 공무원을 하면서 몰래 저녁마다 춤을 배우러 다니면 된다. 일본 영화 '쉘 위 댄스'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나를 안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나의 진짜 욕구를 안다'는 것이다. 즉 내가 무엇을 할 때 만족스럽고 행복한지를 아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학교에서 그런 것을 배우지 못했다. 정답이 있는 문제만을 풀어야 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즉 내가 어떤 것을 통해 욕구가 충족되는 사람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지금부터라도 나라는 고객을 위한 시장 조사를 시작해야 한다. 짬을 내어 음악회도 가보고 운동도 해야 한다. 요즘 핫하다는 카페도 방문해보고 트렌디한 옷을 사서 입어 보아야 한다. 이상하게 끌리는 분야의 책을 찾아보고 관련된 전문가의 강연을 들어보아야 한다. 이 조차도 하지 않으면서 나를 이해하고 안다는 것은 그저 헛된 욕심일 뿐이다. 애니어그램이나 MBTI를 공부하는 것도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수다를 떨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지만, 또 다른 어떤 이는 금요일 밤에 맥주를 마시며 홀로 넷플릭스를 보면서 행복해진다. 각각의 욕구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아무린 안전 장치 없이 바다 수영을 즐긴다. 시속 300km로 부산과 울산을 질주한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밤 하늘의 달을 보며 밤을 새기도 한다. 물론 이 사실이 그 친구를 브랜드로 만들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가장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첫 단추를 채우는 과정임은 분명하다. 이 친구는 대기업에서 인정받는 친구지만 언젠가 해변에 있는 마을에서 낚시를 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낚시마을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적이 있다. 실제로 전국 곳곳에는 이렇듯 다양한 삶이 가능한 청년마을들이 곳곳에 세워지고 있다. 중년 마을 사업도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부터 그 친구의 브랜딩이 시작되는 것이다. 노후에 만들고 싶은 마을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 친구에게 필요한 브랜딩의 시작일지 모른다.
나를 브랜딩한다는 것은 '나'라는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켜가는 과정이다. 그것이 돈이 될지, 사람이 모일지는 그 다음에 고민할 일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철저하게 자신을 객관화시키고 이해하는 과정이다. 다행히도 이런 툴과 프로그램은 넘쳐난다. 문제는 실천이다. 직장이 나의 욕구와 관련이 없어도 상관이 없다. 아침 저녁으로 틈 날 때마다 하는 취미 활동으로도 이런 욕구들은 충분히 채울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나라는 고객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욕구를 채울 수 있다. 내게는 그게 글쓰기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정도 받았다. 그러나 내가 글쓰는 재능으로 브랜딩을 시작한 지점은 내가 아닌 타인을 글로 만족시킬 때부터였다. 블로그를 쓰고, 책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타인의 필요와 욕구를 채우게 되면서 나는 비로소 하나의 작은 브랜드로 성장해갈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나'라는 고객을 공부하자. 나라는 사람이 언제 가장 큰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지 연구해보자. 기록해보자. 그리고 그런 활동들을 조금씩 내 일상에서 늘려가보자. 그 다음에는 그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팔아보자. 그게 그림일 수도 있고, 상담일 수도 있고, 육체적인 트레이닝일 수도 있다. 내게 기꺼이 돈을 내고도 배우려 든다면,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 지점이 바로 내가 브랜드가 되어가는 첫 시작점이다. 그러니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와중에라도 열심히 나의 관심사와 취향을 공부해보자. 사람은 누구나 타인보다 나은 점 한 가지 이상씩은 가지고 있다. 그게 돈이 되는 재능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 아들에겐 그게 기타를 치고 음악을 듣는 일이었다. 나는 첫째가 기타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걸로 먹고 살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기타가 아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아들은 자기 자신이라는 첫 번째의 고객을 만족시키는데 성공한 셈이다. 그 다음에 무엇을 할 지는 얼마든지 활짝 열려 있다. 그 자신감과 행복감으로 타인을 만족시키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바로 그 지점이 우리 아들이 브랜드가 되어가는 첫 시작점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