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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브랜드를 보여줄 수 있습니까?

'만달로리안' 시리즈를 정말 좋아합니다. 스타워즈의 외전 격인 이 작품은 매 회가 끝날 때마다 드라마의 장면 하나하나를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오프닝 때 나오는 주제곡은 '반지의 제왕' 이후로 가장 좋아하는 연주곡이 되었습니다. 이 고독한 캐릭터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마치 저 자신을 보는 듯 해서입니다. 나이키 보다는 아디다스를 좋아합니다. 천성이 경쟁을 싫어해서인지 승리에 집착하는 나이키는 조금 꺼리게 됩니다. 애플 제품을 좋아해요. 500페이지 짜리 스티브 잡스 자서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유니클로를 좋아하는 이유도 명확합니다. 옷에 별로 신경을 안쓰는 편이거든요. 굳이 고르자면 폴로 랄프로렌을 좋아합니다. 격식보다는 편안함을 더 추구하는 성격이라서요.



언젠가 한 편의 다큐를 보았습니다. 동서양의 교육 방식을 비교한 다큐인데 학생들이 자기 소개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경우 서양인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좋아하는 사람, 장소, 친구 등을 이야기하죠. 그런데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사람들은 '우리'를 이야기합니다. 어느 가족, 어느 학교, 어느 공동체에 속해있는지를 먼저 이야기하죠. 물론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로 설명할 내용은 아닙니다. 둘 다 장단점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길 어려워한다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취향이나 스타일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의 리스트를 만들어내기가 어렵죠. 설사 고른다고 해도 그게 정잘 내가 좋아하는 것인지, 유행이나 트렌드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브랜드와 관련된 일을 15년째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좋아하는 것들의 리스트를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건 더 어렵죠. 하지만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면, 나아가 그 자신을 브랜딩하고 싶다면 이런 작업은 꼭 한 번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카페 하나를 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요즘의 카페는 나름의 컨셉이 명확치 않으면 성공은 커녕 생존도 어렵습니다. 이때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다는 것은 엄청나게 큰 무기가 됩니다. 블루 보틀은 일본의 커피 문화에 매료된 미국의 어느 플룻 연주가가 만든 브랜드입니다. 속초에 있는 카페 루루흐는 '사색'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2인 이상의 손님을 아예 받지 않는 카페죠. 아프리카 거북이를 키우는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는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카페를 하려면 나다운 취미, 취향이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면 방이나 거실의 한 쪽 벽에 브랜드 월(Brand wall)을 한 번 만들어 보세요. 좋아하는 것들의 이미지를 무조건 한 번 붙여 보는 겁니다.



데이터 전문가인 송길영씨는 항상 장발을 하고 다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카페 조치원 정수장의 대표님은 레게 머리를 하고 다니시죠. 굳이 폴로 티와 청바지, 뉴발란스를 신고 다닌 스티브 잡스를 떠올릴 필요는 없습니다. 타인들에게 나다움을 드러낼 방법은 얼마든지 많으니까요. 최인아 책방의 경쟁력은 다름아닌 편집력에 있습니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을 좋아하는 이유도 책과 영화를 바라보는 그만의 독특한 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동진은 언제나 빨간테 안경을 쓰고 다닙니다. 그저 튀고 싶어서 그런 스타일을 고수하는 건 아닐 겁니다. 하나의 브랜드를 고객들에게 각인시키는 방법은 말과 글, 그리고 비주얼입니다. 디자인이 중요한건 내가 전하고픈 메시지를 한 번에 전할 수 있는 효율성과 강력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세요. 글과 말이 어렵다면 이미지와 사진으로 보여주세요. 당신이 입고 쓰고 타고 다니는 것들을 말해주세요. 물론 그것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선명해야 합니다.



저는 올버즈란 신발이 가진 메시지와 그 가벼움을 사랑합니다. 스티븐 킹이 쓴 소설의 분위기를 알기 때문에 스타워즈를 더욱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벤츠, 브라운, 보쉬 같은 독일 제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우하우스라는 디자인 사조에 영향받은 브랜드들이기 때문입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그 명쾌한 철학이 도도히 흐르는 애플은 발뮤다와 블루 보틀이라는 카페의 인테리어에도 그대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컵 하나도 화려한 꽃무늬의 로얄 코펜하겐보다 모던한 디자인의 컵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얼마 전 만난 '한강주조'의 고성용 대표가 생각납니다. 브루클린을 유독 좋아했던 이 분이 만든 카페 이름은 '러스티드 아이언(녹슨 철)'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브루클린에서 철제 문을 공수해서 카페 인테리어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나를 안다는 것이 추상적인 영역에 머물러선 안됩니다. 이름으로, 카피로, 스토리로, 로고로, 스타일로, 인테리어로 표현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좋아하는 이미지의 브랜드 월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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