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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 3색, 스몰 스텝을 말하다 (2)

다시, 스몰 스텝 - 우리들의 이야기 (2)

스몰 스텝을 실천하는 세 사람이 '다시, 스몰 스텝'이란 제목으로 함께 책을 쓰고 있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이들의 진솔한 대화를 기록한 것입니다. 스몰 스텝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며, 나아가 삶의 작은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김세엽


저는 공무원이에요. 월급을 타서 생활을 하는 것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휴직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뭔가를 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래서 스몰 스텝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아침에 일기를 쓰고 주방을 정리하면서 스스로 창조자가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죠. 나도 내가 살고 싶어하던 삶이 있구나, 내 삶에 질서를 부여하고 싶어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가고 싶어하는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었던거죠.


그런데 어떻게 해야 그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직업이란 단어의 ‘업’은 그 사람이 그 일 자체로 즐기면서 창조자가 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아직 집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고, 두 분은 업으로 지금의 일을 삼고 있는 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다면 집에서 업으로 갈 때 어떤 단계를 밟아야 할까 생각하다가 ‘몰입’이라는 책이 생각났어요. 그리고 몇 년 만에 다시 한 번 푹 빠져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어요. 8,9년 전에 읽었던 책인데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읽게 되더라고요.


또 한 가지는 제가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는 거에요. 그 중에서도 마지막 단계인 5단계는 자아실현 욕구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그런데 4단계까지는 결핍의 단계여서 일단 한 번 충족이 되면 끝없이 추구하지는 않아요. 만족하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자아실현 욕구는 결핍이 아닌 성장 욕구에요. 여기에는 결핍과 같은 끝이 따로 없는 거죠. 그래서 최대한도로 끌어올려 발휘하고 싶어하고, 남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나는 집에서 업으로 나아가기 위해 남한테 영향을 끼칠만한 뭔가가 있을까, 아직 없다면 그 가능성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즉 잠재력에 대해 주목을 하게 되더군요. 누구에게가처럼 저에게도 좋은 면들이 있고 완전히 몰입만 한다면 평소의 수준을 뛰어넘는 그런 성과를 발휘하게 되고, 그 경험을 즐기는 때가 있잖아요. 그게 아마 잠재력이 발휘되는 순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 거죠. 내 안에도 스스로 놀랄만한 힘이 있음을 깨닫게 되고, 그걸 많이 늘려가면 나도 주변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 그런 느낌을 종종 받거든요. 제가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에 나온 자아 실현 욕구에 주목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어요.


이 책을 쓰신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라는 분은 시카고대 심리학과 교수셨어요. 굉장한 석학이었고 주변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친 분이셨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2021년도에 돌아가셨더라고요. 이 분이 말하는 몰입은 영어로 'Flow'라고 표현이 되요. 일종의 흐름인 셈이죠. 저는 몰입하면 초점을 맞춰서 완전히 집중해서 타들어가는 걸 상상했었어요. 그래서 굉장히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죠. 이때의 Flow는 어느 정도 집중이 되었을 때 창조주처럼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그런 순간을 의미해요. 스키를 탄다거나 혹은 악기를 연주할 때의 무아지경을 의미하죠.


이렇게 자신의 존재조차 잊을 수 있을 때의 경험을 우리는 삼매경이라고 불러요. 모든 것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를 미하이 교수는 Flow라고 표현을 했었던 거에요. 저는 다음의 문장만 봐도 되게 황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나봐라, 다른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을 정도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푹 빠진 상태를 느껴봐라, 물론 이런 경험들을 항상 할 수 있는 건 아닐 거에요. 그러나 한 번이라도 경험할 수 있면 그 황홀경을 잊지 못한다는 거죠. 남들보다 더 행복하다거나, 더 뛰어난 사람이 되지 못해서 아쉬운 건 아니었어요. 주변에 좀 더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죠.


제가 최근에 휴직을 하면서 하루 동안의 완벽한 자유가 주어졌어요. 그래서 내 안의 숨은 욕구를 꺼내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었어요. 그 작은 일들은 모두 제가 좋아하는 일들이고요. 하루 동안 반복하는 일들도 있고,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반복하는 것들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 스몰 스텝이 가장 나다운 정체성을 찾는데 도움을 주더라고요. 이렇게 작은 일상에서 주인이 되니까 어느 순간 그런 경험을 즐길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렇다면 이런 스몰 스텝과 몰입은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걸까요? 몰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자율성이에요. 스스로 경험을 결정한다는 말이죠. 내가 이걸 하기로 했어, 라고 결정을 한 후의 경험들은 일종의 내적 보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자체로 재미있죠. 예를 들어 ‘너 이거 안 하면 큰일 난다’ ‘너 이거 안하면 하나 줄게’ 그런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충만한 내적인 보상을 받는다는 거죠. 이때 사람은 심리적인 에너지를 의도적으로 투입해서 주의를 좀 줘야 해요. 그러면 내적으로 자기가 추구한 질서 상태가 만들어지면서 몰입으로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완성되는 거죠.


이런 경험을 통해 인간은 자기 자신 안의 숨어 있던 욕구를 스스로 표현할 수 있게 되요. 이런 일들은 자발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고요. 이렇게 의식의 질서 상태인 루틴과 피드백이 일어나면서 주인의식이 만들어져요. 책을 읽다보니 왜 스몰 스텝이 나한테 맞았는지 알 수 있겠더라고요. 그렇게 300페이지가 넘는 책을 거의 3일에 다 읽을 수 있었어요. 완전히 몰입하면서 읽다보니 세상이 달라보이더라고요.
 

미하이 교수가 말하는 몰입의 경험이 많아지면 의식이 통합된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는 지난 12년 동안 어떤 교육을 받았나요? 완전히 도그마에 빠져서 타인이 만들어놓은 지식과 경험을 습득하는데 급급한 삶을 살았어요. 그 결과 각자의 의식은 분열될 수 밖에 없었어요. 스스로 창조주가 되어 자신의 삶을 만들어볼 기회가 없었던 거죠. 하지만 몰입의 경험이 많아질수록 자신의 삶 전체가 통합되는 그런 경험을 한다고 해요. 이렇게 자율성과 자발성이 있는 삶을 통해 내적 질서가 부여되고, 그런 삶은 그 자체로 이미 즐겁고 행복한 인생이 되는 거고요.


엔트로피라는 말이 있어요. 사물 자체는 언젠가 해체되고 사라지게 돼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사람 역시 태어나서 죽는 것처럼 정신적인 질서도 이와 똑같은 분열을 겪는다고 해요. 가만히 내버려 두면 정신적인 질서도 이와 똑같은 분열을 겪는다는 거죠. 그런데 스몰 스텝과 몰입의 경험을 여기에 투입하면 그 자체로 내적 질서가 부여되고 몰입의 경험이 강화된다고 합니다. 이걸 네겐트로피라고 해요.


저는 아침에 출근만 안한다면 행복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휴직을 해보니 아무것도 한게 없다는 생각에 멘붕이 오더라고요. 그런데 스몰 스텝을 통해서 조금씩 내적으로 충만해질 수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휴직 뿐 아니라 복직을 하더라도, 아니 내 일생 동안 이런 충만함을 실천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통만 해도 그래요.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할지 알고, 그 사람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런 경험을 많이 하잖아요. 만일 제대로 된 소통을 한다면 타인과의 관계도 달라지고, 삶도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저는 일단 미라클 모닝과 미모틴이라는 스몰 스텝을 하고 있어요. 아침 일찍 특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활동들이에요. 그리고 아침 20분 정도 시간을 내서 아침 일기를 써요. 오늘 이런 이런 일정들이 있는데 이때는 어떨 거야, 하고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거죠. 독서와 글쓰기 할 때도 이런 식으로 몰입을 경험하곤 해요. 일종의 내적 질서를 부여하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행주를 깨끗이 빨아서 널어놓곤 해요. 저는 이런 경험을 무척 좋아요. 내 인생의 창조주가 된 듯한 기분이 들거든요.
 
스몰 스텝이라는 다리를 통해 이런 자아 실현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매슬로우는 욕구 5단계를 주장했는데 나중에 제자들이 8단계로 들렸다고 해요. 5번은 인지적 욕구, 6번은 심리적 욕구, 너미저 7,8번은 자아 실현과 자아 초월 욕구라고 해요. 그런데 이 자아 초월 효구가 사실상 이타적 욕구라고 해요. 이게 바로 문 대표님이 얘기하신 선한 역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몰입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정리하다보니 잠재력을 발휘하기 위한 방법으로 스몰 스텝을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문수정


저는 일종의 과잉 성취자의 삶을 살고 있었어요. 나의 업은 뭘까, 내가 어떤 영향력으로 살아갈까, 이런 대의가 아닌 진짜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하면서 살았거든요. 저희 어머니는 원래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셨어요. 그런데 정년을 얼마 앞두시고 교회 생활에 깊이 빠지셨어요. 그래서 학창 시절에는 교회 일에 전념하시느라 항상 어머니가 집에 안계셨어요. 그러다가 동생이 고등학생 때 안 좋은 일을 겪으면서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된 거에요. 그때도 엄마는 집에 안계셨죠. 그래서 저는 생각했어요. 나는 저렇게 무책임하게 살지 않을 거야, 그래서 뭔가  대충 살거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에 대한 굉장한 강박이 생기더군요.
 

한 번은 집에서 프리랜서로 일할 때였어요. 그런데 일이 없어도 정장을 입고 앉아 있곤 했어요. 심지어 부동산이 어그러지면서 굉장한 빚을 떠안게 됐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살았죠. 물론 지금은 빚이 없지만 15년 이상 무조건 일에 몰입해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야말로 앞만 보고 달리다가 과몰입 때문에 일종의 부작용을 겪게 된 거에요. 일종의 번아웃을 결험한 거죠. 그러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지? 뭘 위해서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마흔을 넘기면서 느지막이 이런 질문이 떠오르더라구요.


물론 빚 때문에,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죽자살자 열심히 산 거였어요. 하지만 이런 삶이 궁극적으로 나를 위한 삶은 아니더라구요. 일의 경력이 쌓이고 여러 가지 유익을 주었지만 삶의 균형은 깨진 거죠. 그런데 스몰 스텝은 제 삶의 속도를 늦춰줬어요. 제 좌우명이 남이 100을 요구하면 120을 주자, 였어요. 오늘 하루 내가 100을 할 수 있으면 130을 하자, 였죠.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70만 하지? 80만 힘을 쏟을 수 있지를 고민해요. 그리고 매 순간 삶을 조금씩 더 음미하게 되었어요. 
 

저는 회사 대표가 된 후에 가장 싫었던게 무슨 무슨 조찬 모임 같은 거였어요. 사실 영업을 하려면 이런 모임에 나가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제겐 그렇게 고역일 수 없었어요. 흰 장갑을 끼고, 명함을 돌리고, 내가 누구인지를 소개하고, 파이팅을 외치는 모임이었는데 정말로 억지로 했어요. 그런데 나답게 사는 삶을 추구하면서 그런 모임이나 사람들을 과감하게 거절할 수 있게 됐어요. 두세 시간씩 충분히 걷고 정말 먹고 싶은 것들을 먹는데 시간을 쓰기 시작했어요. 일종의 몰입의 방향을 바꿀 수 있게 된 거죠. 스몰 스텝이 제게 준 가장 유익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저를 움직이는 가장 큰 욕구가 인정이나 성취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우면산에 잠깐 올라갔다가 불현 듯 알게 된게 있어요. 일로써도, 리더로써도 인정을 받았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제가 깨닫게 된 건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그토록 인정과 성취에 매달리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한 번은 직원 중 하나게 저한테 이런 질문을 하는 거에요. ‘대표님, 선물하는거 좋아하세요?’ 그래서 ‘아니요’라고 대답했는데 저도 모르게 초콜릿이 됐건 립스틱이 됐던 생각날 때마다 직원들에게 선물을 하고 있었더라고요. 사실 저만 모르고 있었던 거에요. 저는 타인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직원들이 뭘 이렇게 갖다 주고 그러니까 선물하는거 좋아하냐고 물어봤었던 거죠. 
 
김세엽


독일 어딘가를 방문했을 때였어요. 그때 함께 갔던 기자분이 그러시는 거에요. 이곳은 사람들을 중간 중간 쉴 수 있게 만드는 시스템을 국가가 구축해놓았다고요. 그런 면에서 유럽과 우리나라가 비교가 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뭐든지 끝까지 몰아치는 경우가 많잖아요. 운전기사들은 잠을 잘 수 없어서 사고를 내고, 심지어 빵 공장에서도 과도하게 일을 하다가 사고나 났었잖아요. 국가가 국민들을 쉴 수 있도록,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는데 유럽은 그 목표와 과정이 굉장히 자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조건 열심히 사는 삶이 아닌 자발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삶이 그래서 중요한 거죠.


저는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됐어요. 더 이상 저녁에는 나만의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게 불가능하겠구나, 라는 사실을요.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혼자 시간을 갖는게 너무 좋더라구요. 그래서 스몰 스텝 단톡방 중 하나인 ‘미모틴’에 참여하게 됐어요. 사실 이전에는 일찍 일어나는게 일종의 자기만족 비슷한 거였어요. 그저 늦잠이라는 심리적 저항을 이겼다는 것만으로 뭔가를 했다는 착각에 빠지는 거죠. 그래서 막상 일찍 일어나서 뭔가를 알차게 했나 생각해보면 이룬게 없더라고요.


그런데 미모틴 때문에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모임을 같이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어요. 8명이 함께 했는데 어쩌면 그렇게 다들 초롱초롱한지, 그 의욕적인 모습이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물론 가끔씩 화면을 꺼두는 분도 계시지만 가끔은 그분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뭔가를 하곤 했어요. 그랬더니 정말 시간이 빨리 지나가더라고요. 


박요철


뭔가를 같이 한다는 것 일종의 선언 효과도 있는 것 같아요. 제게 페이스북에 글을 쓰는 이유도 비슷해요. 내 생각을 여러 사람 앞에 공표를 하면 그 내용을 일상에서 의식하지 않을 수 없거든요. 그러다 보면 스티븐 코비의 책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 나오는 선순환의 나선 구조로 들어가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우리가 스몰 스텝을 하는 이유는 뭔가를 ‘꾸준히’ 하기 위함 아닌가요? 그런데 뭔가를 지속하려면 가장 중요한 게 그 자체를 좋아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거에요. 만약 그 단계에 다다른다면 굳이 뭔가를 함께 하지 않더라도 평생 지속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문수정


스몰 스텝은 결국 나답게, 행복하게 살기 위한 거잖아요. 결국 나를 발견하는 습관이 스몰 스텝인 셈인데, 저는 그게 하기 싫은 걸 빼고 하고 싶은 걸 더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건강을 생각하면 피해야 하지만 저는 금요일이 되면 항상 치맥을 해요. 초콜릿이나 과자도 좋아하고요. 그런데 저는 그게 그냥 저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먹은 안돼,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까 일종의 강박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좋아하는 과자를 먹되 야채를 더 많이 먹는 식으로 정도를 조율할 수 있게 됐죠.


중요한 건 내가 왜 이걸 원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거에요. 어떤 분야든 실력이 쌓이면 일종의 메시지가 되고, 그 메시지가 결국은 브랜드가 된다고 생각해요. 나만의 스몰 스텝을 정하고 거기에 몰입하면 사람도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스몰 스텝이란 결국 ‘나답게 사는 방법’이란 사실을 알게 됐어요.
 

박요철


말씀하신대로 스몰 스텝은 절대로 억지로 해서는 안되는 거라 생각해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게 어떤 힘을 주는 일종의 ‘드라이빙 포스Drivig Force’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 원칙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금요일에 치맥을 하는 것도 그래요. 건강에 치명적이지만 않다면 그것도 괜찮은 삶이고 좋은 삶 아닌가요? 그런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도 일종의 드라이빙 포스인 거죠. 치맥은 건강에 좋지 않으니 절대로 피해야 한다는 건 일종의 의무적인 리추얼인 셈이죠.


문수정


무엇보다 나의 행복과 남의 행복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는 건 너무 너무 좋은 습관임에 분명해요. 하지만 저한테는 그게 절대 안 맞더라고요. 저는 잠을 줄이면 오히려 하루의 집중도가 떨어지고 좋은 의사결정에 방해가 되었어요. 그래서 8시간을 충분히 자려고 애를 쓰죠. 저는 금요일 밤의 치맥, 하루에 8시간을 푹 자야 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타인의 성공에 이르는 방법을 배척할 필요도,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는 거죠. 그저 나다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해석해서 나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진짜 나만의 스몰 스텝이라고 생각해요.
 

박요철


우리가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네이버에서 검색해서 찾아가는 맛집은 나의 맛집이 아니잖아요. 냉정하게 얘기해서 나만의 맛집을 이야기하려면 적어도 50번, 100번 좋아하는 메뉴를 찾아간 후에야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우리는 많은 경우 그렇게 살아가요. 나다운 것을 찾기보다 유행과 트렌드를 쫓아가죠. 나답다는 건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숱한 실패를 거쳐 나만의 맛집을 찾아낸 사람이야말로 나다운 삶을 살고 있는 거죠.


김세엽


저만 해도 정규 교육을 12년 동안 받았잖아요. 물론 어렸을 때는 엄마 아빠의 관심이나 남의 시선을 끌고 싶어서 하는 행동들도 있었을 테고요. 그래서 더더욱 내가 좋아하는게 무엇인가, 내가 힘을 얻는 활동들에는 무엇이 있는지 아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무엇을 할 때 가장 신이 나는지를 아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게는 그게 타인과의 소통이었고요. 제가 가장 많이 좌절을 느끼는 부분도 타인이 내 얘기에 관심이 없다고 느낄 때엿어요. 뭔가 꽉 막힌 듯한 느낌을 받으면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반대로 무심코 던진 말에 상대방이 공감해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진자 친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날엔가 딸과 소통 일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나라면 무슨 말을 듣고 싶을까, 하고 생각하다보니 상처가 될만한 말들을 걸러서 하게 되더라고요. 딸에게 ‘나는 네가 제일 이쁘더라’라고 말해준다던가, 오늘 두 분이랑 미팅을 했는데 너무 좋았어, 라고 말하는 식인 거죠. 그런데 그런 소통이 제게는 너무나 큰 위로와 힐링이 되더라고요.
 

박요철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타인과 소통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의미없는 회식자리에선 오히려 에너지를 빼앗기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런데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글을 쓰고, 그에 대한 댓글이나 피드백을 어느 정도 즐기는 것 같아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당위성과 재미를 찾아가는 저만의 방식인 거죠.


문수정


저한테는 금요일의 치맥이 일주일 동안 열심히 살아낸 저 자신에게 주는 일종의 선물이에요. 아마도 제가 워낙 성취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는 세레모니 같은 것일 수도 있어요. 저는 부루마블 같은 게임을 해도 지는 걸 싫어하거든요. 사실 저는 평일에는 술을 안 마셔요. 하지만 금요일 만큼은 저 자신에게 소박하지만 일종의 보상을 해주는 거죠. 맥주도 매주 종류를 바꿔가면서 마시는 식으로요.


김세엽


수정님이 치맥을 먹는 모습을 상상하니 일종의 정복자 같이 느껴져요.


박요철


저는 회식을 하고 나면 꼭 한 두시간씩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편이에요. 분주함에서 빠져나와야 본능적으로 안심이 된달까요. 제 친구는 운동을 정말 좋아해요. 그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거죠. 그런데 그 친구에게 일주일 내내 매일 글을 쓰라고 하면 절대 못할 걸요. 자기다운 걸 아는 사람은 훨씬 적은 노력으로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어요. 제게는 운동이, 친구에겐 글쓰기가 자기다운데 아니니 힘은 몇 배로 들면서도 성취감은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렇게 자신을 성찰하고 스스로를 발견하는 교육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김세엽


채사장이라는 작가가 쓴 ‘시민의 교양’이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을 읽다가 놀란 건 우리가 받은 12년 동안의 교육의 핵심은 콘텐츠가 아니라 형식이라는 것에요. 그 형식에도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절대 진리는 있다’는 거에요. 그 절대 진리가 교과서에 담겨 있고 우리는 그걸 공부하는 거죠. 그 다음엔 그 진리를 교육하는 과정을 통해 경쟁을 시키고 그 맨 꼭대기에 있는 사람에게 특권을 부여한다는 거에요. 그 두 번째 형식이 바로 ‘경쟁’이라는 거죠. 이 경쟁이라는 시스템이 우리 사회의 아주 기본적인 시스템이라는 거에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이 두 가지 형식지를 철저하게 학습해왔던 거죠.


그런데 이런 형식지는 우리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줘요. 남들과의 경쟁에서 무조건 이기려고 노력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점점 나다운 모습을 잃어가게 되요. 저는 공무원이지만 열심히 일해서 국장이 될 생각이 전혀 없어요. 그저 퇴직할 때까지 월급만 꾸준히 받을 수 있어도 만족해요. 제게 중요한 건 제가 좋아하는 그 무언가를 찾아가는 거에요.


문수정


저는 신이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서 이 땅에 보냇을 때는 뭔가 그 쓸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스몰 스텝이라는 건 뭔가 나의 쓸모를 발견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거든요. 나답다는 건 그 쓸모 있음을 통해 뭔가를 이뤄가는 과정인 셈이고요. 그걸 메시지나 브랜드라고도 표현할 수 있고요.
 
박요철


브랜드만 해도 그래요. 좋은 브랜드란 결국 차별화된 특장점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 장점들이 제품이나 서비스로 표현이 되는 거고요. 만일 내가 도끼를 만든다면 최고의 도끼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브랜드가 될 수 없어요. 세상이 필요로 하는 도끼를 만드는게 중요하죠.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세상이 필요로 하는 영역의 교집합에서 비로소 나다운 무언가, 즉 브랜드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나다움, 자기다움 같은 걸 얘기하면 뭔가 골방에 들어가서 연구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내가 추구하는 어떤 가치게 남들에게 전해지고, 그 과정에서 피드백을 받아 변화되었을 때 비로소 나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나 자신을 모르면서 어떻게 세상의 필요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남들이 좋아해서 부와 명예를 쫓아가다가 결국 자기 자신조차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문수정


언젠가 직원들하고 이 회사를 왜 다니는지를 두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누군가가 ‘저 사람 옆에 있으면 그래도 계속 발전할 것 같다’라는 얘기를 했다는 거에요. 사실 다른 누군가는 무슨 소처럼 일한다는 얘기를 할 수도 있었을 거에요. 하지만 어쨌든 그게 나다운 모습이거든요. 누가 뭐라고 하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또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박요철


한 가지 조심할 점은 나의 존재가 외부에 영향을 끼친다, 라고 하는게 반드시 크고 대단한 것은 아니어도 된다는 거에요. 어떤 사람은 회사를 키우고 수많은 직원들을 고용하는데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삶이 좀 피곤할 것 같거든요. 나 혼자 일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수십 수백 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삶은 얼마나 힘이 들까요. 
 

문수정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박요철


뭔가 치열하게 살고 커다란 성취를 추구하는 그런 사람은 따로 있더라고요. 그런데 모두가 그런 삶을 살아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그런 사람 따로 있더라고요 치열하게 뭔가 어떤 성취해야 되고 진짜 회사 몇 개 차려야 되고, 하여튼 항상 그런 근데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지 않나요. 금요일에 맥주 한 캔 마시고 행복할 수 있는 것도 나름 괜찮은 삶, 나쁘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문수정


집에서 제 별명이 705호 손님이에요. 저희 집이 아파트 705호거든요. 주말이면 남편이 제게 ‘밥은 안 드세요?’ ‘청소해도 될까요?’ 이렇게 묻곤 해요. 그럴 정도로 저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해요. 주말이라고 해서 꼭 외출을 하고, 산을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진짜 저는 싫어하는 걸 못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 저에게 스몰 스텝이 정말 맞는 이유는 하고 싶은 것들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기 때문이에요. 그 과정을 통해서 나를 새롭게 발견하고, 솔직해질 수 있고, 또 나다움을 찾아 행복해질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가 싶거든요.


박요철


제가 행안부와 함께 일하다가 우연히 공주에 있는 청년 마을을 찾아가게 됐어요. 그런데 이 동네가 자기만의 삶의 속도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커뮤니티가 갖춰진 곳이더라고요. 공주는 그 중에서도 약간 느린 속도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에요. 이곳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교수로 생활하다가 귀농 겸 내려오신 분들이 적지 않았어요. 그래서 무슨 무슨 모임에 참여해보면 다 박사이고 판검사 출신인 거죠. 더 놀라운 사실은 이제 청년들이 기꺼이 이런 지방으로 내려간다는 거에요. 그 곳에서 나름의 삶의 대안을 찾는 거죠. 이 친구들은 이렇게 얘기해요. 나는 쟤네들이랑 경쟁하지 않겠어, 그냥 내 삶의 가치를 찾아보겠어, 이렇게 생각하는 젊은 친구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경쟁이 나쁘다는게 결코 아니에요. 그런데 노래를 불러도 경쟁하고, 심지어 연애를 하면서도 경쟁하는 건 좀 심하다 싶을 때는 있어요. 물론 그런 경쟁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을 거에요.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는 좀 피곤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은연 중에 최고가 되는 것, 단 하나의 길 밖에 없다는 생각에 지배당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흔히 말하듯 서울대를 가거나 삼성을 가야 완전히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거죠. 그러나 그건 대단한 착각이거든요. 그런데 요즘 세대들은 다른 것 같아요. 이들은 최고가 꼭 하나일 필요는 없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유튜브만 봐도 자기만의 스타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는 그런 사람도 존중받는 세상이 흔히 말하는 선진국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수정


경쟁에서 벗어나 소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 나를 알려면 결국 타인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말씀이시군요.


김세엽


그 과정을 통해 타인에게 가치가 전달될 수 있다는 말이고요.


박요철


그게 브랜딩의 핵심이 아닐까 싶어요. 진짜 성공한 브랜드들은 사실 소비자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회사들이거든요. 그 과정에서 신뢰를 얻고 또 진정성을 얻는 거죠. 세상과 제대로 관계를 맺고 소통할 수 있는 브랜드가 자기다움을 가진 브랜드이고요.

김세엽


저도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네요. 그리고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한 조각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그런 삶이 제 정체성이기도 하고요.
 

문수정


나답게 사는 사람들은 세상을 향한 불평도 상대적으로 적지 않나 싶어요. 월급이 적어서, 일이 많아서 불평 불만하는 사람들은 뭐랄까, 굉장히 수동적인 삶을 사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스몰 스텝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도성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김세엽


나다움과 세상의 필요와 만나는 것이 정말 궁극적인 기쁨일 수 있겠네요.


문수정


나의 시간과 나의 능력을 맞바꾸는 것으로 일을 생각하면 그 삶은 얼마나 피곤할까요. 모든 것을 일종의 거래로 생각하는 그런 삶 말이에요. 그건 스스로 불쌍한 삶이고 불행한 삶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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