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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스몰 스텝

다시, 스몰 스텝 - 문수정의 이야기 (4)

그런 내게 스몰 스텝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친절하게 대하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누가 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할 만한 리스트들을로 내 삶을 하나 둘씩 채워가기 시작했다. 너무도 이상한 나만의 스몰 스텝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 의사결정 미루기

- 목표 세우지 않기

- 드라마 보기(사실 난 드라마가 재미없었다. 오죽하면 지인들이 사람공부하게 드라마 좀 보라고 했을 정도였다.)

- 늦잠 자고 지각하기

- 주말에 나만을 위한 시간 갖기

- 그냥 빈둥거리기

- 집안 청소 하지 않고 소파에 눕기

- 다른 사람 실망시키기

- 잘 안되라고 타인의 부탁 거절하기

- 한없이 게을러지기, 게으르다는 착각 벗어나기 (나는 전혀 달라질 필요가 없다. 항상 아름답거나 완벽하지 않아도 되고, 실수를 할 수도 있으며, 나쁜 감정이나 단점이 있을 수도 있다. 지금 이대로의 상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 가끔 낮술 즐기기

- 체력을 위해 이사하기

- 거금을 들여 1:1 운동 시작하기

- 명상과 마인드콘트롤

- 수용, 용서 연습하기

- 감사일기 쓰기

- 글쓰기 (결국 미루어왔던 글쓰기가 마무리되면서 책을 출간했다)

- 리더급 네트워킹 안하기

- 직원 눈치 말고 내 갈길 가기(가치관 명확히 하기)

- 오늘 내가 행복하려면 무엇을 하지? 질문하기

- 나의 사소한 욕구 채워주기, 커피에 사치 부리기

- 약 줄이기

- 화 안내기

- 회사 직원 정리하기


그렇다. 나는 행복이란 번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번성한다는 것은 물질적 욕구가 충족되는 과정이다. 한편 선한 목적으로 인간이 가진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막상 기존의 나답지 않은 것들을 모조리 버리니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정말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또한 나는 스스로에게 친절해지기로 결심했다.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은 양날의 검이 되어 타인에게도 가혹해지기 쉽다. 다른 사람의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죄하기 쉽다. 내 눈에 맞지 않,는 남한테 하지 못한 말들이 그렇게 나를 한없이 옭아맨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밤마다 그렇게 침대 위에서 욕을 했는지 모른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또박또박 업무지시를 하는 나의 잠꼬대를 보면서 남편은 밤마다 서늘함을 느꼈다고 한다. 작다가 갑자기 엉엉 울기도 하고, 때로는 나로부터 조폭들이나 할 만한 찰진 욕도 참 많이 들었다고 한다.


1911년 11월, 남극 탐험을 위해 두 명의 탐험가가 도전을 시작했다. 한 사람은 영국 해군 출신의 로버트 팔콘 스콧 대령이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최후의 바이킹으로 알려진 로알 아문센이었다. 그 중 아문센은 남극에 첫 발을 내디딜 때부터 다음과 같은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고 한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매일 정확히 24km만 걷겠다는 원칙이었다.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24km만 이동했다고 한다. 그러나 스콧은 얼어붙듯 추운 날에는 휴식을 취하는 대신 날이 좋을 때면 혹독하리만치 다른 대원들을 몰아붙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문센의 남극점 도달, 스콧팀의 전원 사망이었다.


나는 그동안 누가 뭐래도 스콧의 삶을 살고 있었다. 무조건 의지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달릴 수 있을 때 전력 질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죽했으면 밤을 하얗게 불태운 후 생기는 다크 서클을 훈장으로 생각했을까? 그러나 아문센처럼 스몰 스텝으로 걷는 삶은 일견 비효율적으로 보였으나 가장 지혜롭고 탁월한 선택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동을 먼저 변화시키려 든다. 하지만 지혜로운 이는 그 전에 자신의 정체성을 먼저 바꾼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에서 스티븐 코비는 이를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불렀다. 나는 이 말을 따라 스스로를 여유 있고, 마음이 풍요로우며, 내가 가진 탁월함으로 세상의 변화에 기여하겠다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도록 돕는 사람이 되겠다고 스스로를 다시 한 번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유명한 음악 프로듀셔 릭 루빈은 할 수 있는 한 최소한으로 눈 앞의 일을 쪼개라고 조언한 바 있다. 예를 들어 다섯 줄의 가사가 필요하다면 오늘은 딱 하나의 단어를 찾는데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 한 단어는 누구나 쓸 수 있다. 이런 지혜는 무언가 나를 압도하는 상황이 올 때마다 스스로를 지키주는 강력한 지혜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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