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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혈액형을 몰랐던 이유

다시, 스몰 스텝 - 문수정의 이야기 (3)

나는 매주 금요일 밤 10시면 배가 터질만큼 치킨과 맥주를 먹고 마신다. 이런 얘기를 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나의 혈관이나 건강을 걱정할 것이다. 하지만 내게 이 금요일 밤의 스몰 스텝은 내게 주는 작은 보상이자 나만의 축제이고 세러모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약속했던 일들을 무사히 잘 해냈다는 사실에 대한 나름의 특급 칭찬이다.


이 별거 아닌 보상 때문에 나는 금요일 아침부터 행복해진다. 집을 나서며 오늘은 어떤 수제 맥주를 골라 마실지를 미리 고민한다. 어떤 컵에 담을지, 무슨 콘텐츠를 보며 먹고 마실지를 선택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요즘은 치킨 종류조차 많기 때문에 그 기대와 설렘은 배로 커졌다.


사실 밀가루를 끊고 소식할 것을 권하는, 탄수화물을 끊을 것과 1일 1식을 강요하는 리추얼은 오히려 나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나는 나름의 되고 싶어하는 브랜드의 상이 있었다. 그것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기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나는 그 안에서 세상 다 가진 부자가 된 것 같은 만족과 충만함을 느낀다. 이런 감정을 느끼기에 금요일 밤의 치맥만큼 가성비 좋은 스몰 스텝이 또 있을까?


요즘 들어 월천만원 벌기, 일하지 않고 패시브인컴으로 부자 되기, 성공한 사람의 습관을 부자 되기... 이런 광고의 유혹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나도 한때 돈이 전부인 시기가 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돈이 중요했다. 그러다보니 휴지 한 장 쓰는 것조차 인색해지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야마구치 슈는 우리 삶의 목적이란 ‘나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근원이라고 말한 바 있었다. 그러므로 어떤 지식이나 기술을 몸에 익히는 일도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해서 즐겁게 살 수 있는가’의 관점으로 판단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면 나도 나답게 사는 것으로 내 삶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남들이 따라하는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들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나는 이런 질문을 내 삶에 던져보고 그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나눈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싫으면 절대 못하는 성격이다. 남들 다 아는 혈액형 검사조차 무섭다는 이유로 하지 않았다. 간호학과에 입학해 나처럼 실습 한 번 안해보고 졸업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렸을 때는 약간 아파도 학교를 빠지곤 했다. 한 마디로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디폴트 값이 매우 작은 사람이다. 뭔가를 진득하고 깊이 있게 하는 일에 내게는 한없이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이란게 어디 피한다고 피해지는 일이던가. 그렇게 병원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용을 썼겄만 결국 강남역 사거리에서 무작정 번화를 걸어 들어간 회사가 병원이었다. 우연찮게 죽어도 대표는 안한다고 아우성 치다가 적자 투성이인 회사를 넘겨받기도 했다. 이후 나는 내 멋대로의 성격을 죽이고 10년을 넘게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도대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도무지 모르겠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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