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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갈망하는 독재자

다시, 스몰 스텝 - 문수정의 이야기 (2)

아침 7시면 호텔에 모여 흰 목장갑을 끼고 명함을 나눠주는 모임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모임에 참석하는 게 나는 죽기보다도 더 싫었다. 가식적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 체질에 맞질 않았다. 그러나 작은 회사의 대표는 영업도, 생산도, 판매도 모두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직원들 월급부터 줄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찾아간 호텔에서 먹는 밥은 정말 모래알 같았다.


괴롭다 못해 급기야 시름시름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1년 회비로 내놓은 130만원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막상 그렇게 안하기로 마음 먹으니 날아갈 만큼 기분이 좋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목숨줄 같았던 그 모임을 나오자 마자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플랫폼에서의 소개와 계약이 줄을 이었다. 그즈음부터 조금씩 자발적인 일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안갯속 같았던 의식이 명징해지고 내적인 조화로움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나는 자신과의 관계가 어떤 다른 관계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생존이라는, 성장이라는, 성공이라는 이유로 막상 내가 싫어하는 일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그러나 변화는 누군가가 정해놓지 않은, 내 방식대로 일을 진행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감춰두었던 나만의 색깔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부터 과감하게 하기 싫은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에센셀리스트가 되겠다고 스스로 선언했다.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 하고 싶은 일들로 나의 하루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태생적으로 성취지향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이었다. 게다가 성실중독자이기도 했다. 나는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막연한 목표를 가지고 남들이 만들어놓은 루틴을 맹목적으로 좇아오고 있었다.


나는 내 나름의 빠른 의사결정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스스로 결단력 있는 리더라고 나름 착각하고 있었다. 이런 빠른 의사 결정은 당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조금은 편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 결정으로 이어질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더 잘해야 한다’ ‘더 나아져야 한다’는 몰입과 집착은 나 스스로에게 너무도 불친절한 삶의 자세이자 메시지였다.


같은 이유로 나는 쉽게 화를 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맡은 일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고 다짐했다. ‘내일 아침에 조깅을 다시 시작해야 해’ ‘부모님을 더 찾아뵈어야해’ 라는 내면의 메시지를 맹목적으로 쫓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듯 변화를 갈망하는 독재자의 목소리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조금씩 무가치한 사람으로 느끼게 했다.


사실 매일 자신의 능력을 증진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상태를 계속해서 견여낼 사람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게 맞는 것, 나다운 것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스몰 스텝’의 실천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고통과 불행과 불면이 시작은 진정한 나 자신의 욕구를 무시해서 찾아온 결과였다. 스스로를 억압하고,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고, 길게는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면서 찾아온 당연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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