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노트

나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아파트 앞 비탈진 공터에 꽃씨를 뿌리셨다.

그 다음 해, 삭막했던 공터는 꽃밭이 되었다.

그때 나는 아파트를 나서면서 행복했을까,

아니면 아버지 생각에 우울했을까.

솔직히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벌써 20년이 넘은 일이 되었다.


남길 유산도 그닥 많지 안았던

지극히 평범하게,

그러나 열심히 살았던 일본의 한 샐러리맨이

암 말기 선고를 받는다.

이제 겨우 친해졌다 싶은 아내,

이제 겨우 누리고 싶었던 여유로운 노년은 사라지고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그는 성격대로 '엔딩노트'를 쓰고

그녀의 딸은 그 장면을 화면에 담는다.

그리고 그 다음 해 세상을 떠난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 오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름을 보고

이 다큐가 왜 그토록 담담한 일상을 담아냈는지 알 수 있었다.

죽음도 삶의 일부다.

함께 장례식장을 고민하고

답사까지 하는 주인공의 시선을 묵묵히 따라가다보면

지극히 당연하지만 외면하고 있던

평범한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다.

나도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

그러니 오늘을 잘 살아야 한다고.


주인공은 암 선고를 받은 뒤

성당을 찾아가 세례를 자청한다.

아마도 그것은

성당을 다니는 막내 딸을 위한 작은 선물이었을지도.

결국 막내 딸에게서 세례를 받았으니까.

불교도인 그의 어머니는 이런 아들의 마음을 읽고 답한다.

나도 불교는 잘 모르노라고.

그토록 슬프고 아름다운 모자의 웃음 앞에서

꼭 쥐고 있던 마음이 무너져버린다.


주인공의 담담함은

그러니까 죽음을 내일의 약속처럼 받아들이는 그의 평안함은

아마도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마지막 용기였을 것이다.

나는 그 용기를 짐작도 하기 힘들다.

다만 흉내라도 낼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

그렇게 받아들인 죽음이

남아있는 '삶'을 얼마나 찬란하고 소중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아버렸기 때문에.


열심히 살고 싶다.

치열하게 살아내고 싶다.

후회없이 죽음 앞에 서보고 싶다.

하지만 그 삶을 가장 찬란하게 빛나게 하는 것은

내가 이뤄낸 일의 결과는 아님이 확실하다.

생계의 노예가 되어 소비해버리기엔 너무 소중한 일상들이다.

부족한 나와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순간,

주인공은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내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좋은 사람인지 몰랐다고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한다.

아쉽게도 나는 결국 그 말을 하지 못했다.

함께 맞이했던 그 새벽의 병원 예배당 앞에서

싸늘히 찾아오던 몇 번의 아침 앞에서

왜 나는 그 말을 하지 못했을까.

왜 무의식적으로 주변 사람의 담배에 손을 내밀던

아버지의 휠체어를 매몰차게 돌려버렸던 것일까.


주인공의 '엔딩노트'는

아주 사소한 몇 가지 것들이다.

자동이체의 이전을 부탁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것들.

그러나 그 사소함이 만들어낸 울림은 작지 않다.

그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만들어낸

그의 인생은, 가족은

아름다웠으니까.


부디 편히 쉬시기를.

그리고 혹 가능하다면

나의 아버지께도 안부를 전해주기를.

좀 더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아들의 다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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