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용 접이식 키보드, 내가 직접 만들어볼까?

키보드를 사랑한다. 그 어떤 느낌보다 타이핑할 때의 쫀득하면서도 선명하고도 경쾌한 타건감을 좋아한다. 그래서 툭 하면 키보드를 산다. 온갖 종류의 키보드를 다 써보았다. 걔중에는 애플이나 로지텍 같은 아주 노멀한 키보드도 있고, 기계식 키보드도 있고, 컴팩트한 키보드도 있다. 키를 누르는 방식에 따라 펜타그래프, 멤브레인 등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뭐 그건 그닥 중요하지 않다. 가격이 비싸다고, 예쁘다고, 크다고 안 써지던 글이 잘 써지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사실 나의 키보드에 대한 편력은 오래 되었다. 한때는 기계식 키보드에 빠져 수십 만원 짜리 키보드를 구하기 위해 당근과 중고나라를 전전하던 때(왜냐하면 정품은 너무 비싸니까)도 있었다. 그렇게 샀다가 되판 키보드만 최소 10여 종 이상이다. 다행인건 커스텀의 단계까진 넘어가진 않았다는 거다. 키 하나하나를 마음에 맞는 재질과 컬러로 구성하기 시작하면 그건 이미 덕후의 고개를 넘어간 것이다. 오랜 방황 끝에 현재의 나는 애플의 정품 키보드와 트랙패드에 정착한 상태이다. 하지만 키보드에 대한 욕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며칠 전부터 접이식 휴대용 키보드에 꽂히기 시작했다. 사실 키보드가 달린 아이패드 케이스를 쓰는 나로써는 휴대용 키보드를 쓸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 여전히 서툰 스마트폰의 키보드가 불편하긴 하지만 어차피 간단한 문자나 검색을 하는 용도로 별도의 키보드를 사는 일은 바보같은 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 바보같은 짓을 요 며칠 째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때로는 특별한 필요 없이 그저 순수한? 욕망으로 물건을 살 때도 있지 않은가. 내겐 그게 바로 접이식 휴대용 키보드였다. 그리고 이 작은 세계에도 장단점이 명확하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오늘의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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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츠 접이식 블루투스 키보드 BA-BK9 Plus


많은 제품들이 그렇지만 정작 배달되어 내 손 안에 들어오기 전까진 그 상품의 진가를 알기가 어렵다. 이 키보드는 비교적 높은 가격대 (쿠팡가 62,900원)에도 불구하고 유려한 디자인 때문에 샀다. 실제로 써보니 마감도 매우 훌륭했다. 그런데 가장 작은 크기가 또 다른 제품의 구매로 이어지게끔 만들었다. 작아도 너무 작다. 평소대로 마침표를 치면 '/'가 타이핑된다. 계속 쓰다보면 적응이 될까? 그러나 정작 내가 이 키보드에 만족하지 못한 이유는 다른데 있다. 너무 작은 나머지 주변을 의식하게 된다. 자동차로 치면 하차감이 제로다. 누가 봐도 평범치 않은 덕후로 보이게 한다. 손바닥한 스마트폰과 조금 더 큰 키보드로 뭔가를 타이핑하는 모습이 그닥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비싼 제품은 그 값을 한다. 작지만 탄탄하다. 어떤 방향으로도 거치할 수 있고 웬만한 크기의 태블릿도 안정적으로 쓸 수 있다.



브리츠 접이식 블루투스 키보드 BA-BK9 Plus


스마텍 4단 접이식 휴대용 블루투스 키보드 STBK-F1000


이번엔 제품의 크기를 면밀히 비교한 후 적당한 크기의 키보드를 구매했다. 투톤의 컬러도 마음에 들었다. 타건감 만큼은 다른 어떤 접이식 키보드보다 뛰어나다. 문제는 마감에 있었다. 얇은 알루미늄으로 이뤄진 바디는 쓰기 전부터 몇몇 부분이 휘어져 보였다. 타이핑을 하다보면 키보드 뿐 아니라 상판 전체가 울렁거린다. 크기에 비해 가볍지만 그만큼 싼 티?가 난다. 어차피 휴대용이니 사용량이 많지 않아 큰 문제가 될까 싶긴 하다. 그러나 잡아보면 안다. 자주 들고 다닐 제품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케이스를 씌운 스마트폰은 세로로 거치가 힘들다는 것도 문제다. 조금만 마감이 좋았다면 원픽으로 골랐을, 아쉬움이 남는 키보드다.


스마텍 4단 접이식 휴대용 블루투스 키보드 STBK-F1000



오아 접이식 블루투스 키보드, OA-BTKBDA


비슷한 방식의 키보드 중에서는 가장 나중에 구매했다. 사실 이 키보드는 3,4년 전 처음 보았었다. 3단으로 접을 수 있는 구조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플라스틱으로 된, 특히 흰색으로 마감된 이 키보드는 마치 문방구 구석에 놓여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구관이 명관이라고, 몇 년 만에 직접 구매한 이 제품은 묵직한 무게 만큼이나 가장 좋은 마감을 한 제품으로 변모해 있었다. 튼튼한 만큼 어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도 안정적인 거치가 가능하다. 플라스틱과 메탈로 된 제품은 그 옛날의 그 제품이 아니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타건감이었다. 단단하지만 살짝씩 흔들리는 맨질맨질한 느낌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튼튼한데 돌쇠다. 키보드에서 가장 중요한게 손맛인데... 접어놓고 볼 때는 최고인데 펼쳐놓고 써보면 자꾸만 아쉬움이 앞선다. 정말 아쉽다.


오아 접이식 블루투스 키보드, OA-BTKB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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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쯤해서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를 커밍아웃 해보자. 만일 내가 단 하나의 제품을 직접 만들 기회가 생긴다면 휴대용 키보드를 만들어보고 싶다. 키보드는 나름 마니아층이 탄탄하다. 기계식 키보드는 이미 특정 브랜드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휴대용 키보드 시장은 독보적인 브랜드가 없다. 써본 모든 제품이 한 두가지 아쉬운 점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이런 키보드를 만든다면 어떤 점을 보완할 수 있을까? 브랜드 네이밍은? 홍보는 어떤 식으로 할 수 있을까?


일단 무게가 중요하다. 너무 가벼우면 안정성이 떨어지고 너무 무거우면 가장 큰 장점인 휴대성을 포기해야 한다. 제품 하나의 무게가 중요한게 아니다. 이런 키보드는 항상 태블릿이나 노트북 같은 다른 제품과 동행하기 마련이다. 이 모든 제품을 함께 가지고 다닐 때는 고작 100g의 무게도 중요한 차이를 만든다. 행군의 말미에는 총 한 자루의 무게가 지구의 질량과 맞먹게 된다는 사실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가장 무거운 OA 제품이 290g이다. 무겁다. 가장 작은 브리츠 제품은 164g이다. 그 중간쯤인 200g 정도면 딱 좋겠다.


그 다음은 크기이다. 요런 휴대용 제품들은 가로 크기가 대략 200mm 정도다. 중간 크기의 스마텍 제품이 222mm다. 타이핑할 때의 양손 크기를 생각하면 이 크기가 하한선이다. 그보다 더 작으면 오타율이 엄청 높아진다. 그 다음이 타건감이다. 어차피 휴대용 제품들은 펜타그래프 방식으로 시장이 통일되어 있다. 중요한 건 재질이다. 바디가 너무 단단해도, 너무 가벼워도 키감에 영향을 미친다. OA 제품과 스마텍 제품의 중간 정도가 딱 좋다. 적당히 쫀득하면서도 너무 무르지 않은 플라스틱 바디가 가장 안정적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건 마감이다. 이 점은 오아 제품의 키보드가 가장 마음에 든다. 유광처리된 플라스틱만 아니라면 더 바랄게 없겠다. 특히 검은색은 메탈과 플라스틱 사이의 이질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 좋다. 이상하게 도색이 안된 알루미늄은 2배로 약해 보인다. 접었을 때의 유격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OA제품의 특장점이다. 다른 제품들은 접었을 때 특히 흔들거림이 심하다. 이런 단점은 제품의 내구성에도 문제가 되겠지만 사용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한 손에 쥐었을 때 단단하게 느껴지는 그 느낌은 어째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선택의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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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접이식 키보를 만든다면 이름을 '키진'으로 불러 보려 한다. '키보드에 진심'인 사람들이 쓸만한 제품으로 만들고 싶어서다. 무게 200g, 가로 길이 222m의 크기를 가진 이 제품은 케이스를 씌운 스마트폰도 가로 세로 방향으로 거치가 가능하다. 접이식의 단점인 연결선의 마감도 튼튼하다. 키 부분은 플라스틱이지만 나머지는 알루미늄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펜타그래프 방식이지만 쫀쫀한 키감도 맛볼 수 있다. 제품을 펼치면 자동으로 페어링된다. 한 번 충전으로 200시간 정도는 사용이 가능하다. 마감이 단단해서 접었을 때나 펼쳤을 때 덜렁거림을 최소화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스펙의 문제이다. 중요한 건 이 제품을 누가 어디서 왜 쓰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이 키보드를 사는 사람들은 '필요' 이상의 무엇 때문에 제품을 구매한 사람들이다. 듣보잡의 브랜드 로고가 돋보이는 걸 좋아할리 만무하다. 내가 만든 제품의 브랜드가 자리 잡기 전까진 로고의 크기를 최소화할 생각이다. 카페 테이블에 펼쳐 놓았을 때 애플 제품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마감이 유려해야 한다. 이 제품은 누군가의 시선을 받는 외부에서의 사용량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니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나만의 제품'이라는 인식을 준다면 분명 키보드 덕후들의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판매하는 채널도 온라인보다는 프리스비 같은 곳에 입점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나같은 소비자들은 직접 보고 타건해보는 경험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처럼 직접 제품을 생산하거나 팔지 않는 입장에서 브랜딩을 논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제품을 만들면 더 많은 제품을 경험하고, 평가하고, 나아가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다. 게다가 나는 제품을 만드는 쪽보다는 글을 쓰는 쪽에 특화된 사람이다. 그러나 언젠가 한 번은 나만의 휴대용 키보드를 꼭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 시중에 그런 제품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욕구를 채운 제품이라면 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반응이 있지 않을까? 아마도 키보드를 향한 나의 편력은 쉽사리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혹 아는가? '키진'이라는 이름의 키보드가 정말로 세상에 선보일 날이 올지도. 즐거운 상상을 하니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이런 키보드가 나온다면 사줄 분이 있을지도 궁금하다. 어쩌면 그게 가장 중요한 제품 개발의 이유가 되어야 할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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