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초보 사장님을 위한 브랜드 수업 - #02.
브랜드를 말하는 책들은 많다. 전문가들은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평범한 유튜버조차 당신도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서슴없이 할 때면 조금 당혹스럽기도 하다. 15년을 공부하고 컨설팅하면서도 여전히 어렵고 모호하고 그래서 헤맬 때도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브랜딩이라는 과정의 큰 그림이 궁금했다. 골목길을 헤맬 때 중요한 것은 그 동네의 큰 그림을 확대에서 보는 것이다. 내가 있는 곳과 가야할 곳이 선명할 때 우리는 비로소 확신을 가지고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김정호 선생님이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완성한 '대동여지도'를 연상케 한다. 브랜딩이란 먼 길을 걷기 위해 일단 필요한 것은 이 브랜드여지도를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일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브랜드를 완성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일까?
시장 조사를 벤치 마킹 정도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아이템과 업종을 정해두고 유명한 가게를 투어하는 벤치마킹 정도로는 부족하다. 시험으로 치면 일종의 객관식 문제 풀이 같은 것인데, 정말로 필요한 것은 주관식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 사람들이 가진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다.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만든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일상의 관찰이다. 월요병에 걸린 어느 회사 직원은 어느 날 '다른 사람들도 월요일 출근을 힘들어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으로 재미있는 양말 브랜드를 기획했다. '아이헤이트먼데이'의 탄생이다. 월요일 만큼은 '양말'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걸 신어보자는 취지였다. 그냥 좋은 양말을 만들기로 했다면 아마도 수없이 많은 기존 제품들과 경쟁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울한 월요일의 해법을 제시하자 이들의 만든 시장은 시작부터 차별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 제기의 시작인 바로 당신이다. 브랜딩이란 결국 당신이 불편한 것, 부족한 것, 고민되는 것에서부터 시장과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들로 확장되어야 한다.
'꿀빠는시간'의 이혜미 대표는 자신이 만든 꿀이 둔탁한 단지에 담기지 않길 바랬다. 젊은 층들이 쉽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기를 바랬다. 그래서 그녀는 가로 세로로 선을 그어 사분면을 만들었다. 가로선의 양쪽은 기능과 경험, 세로선의 위아래는 저가와 고가로 구분했다. 그리고 고가와 경험에 치우친 곳에 자신의 브랜드를 위치시켰다. 이것이 바로 포지셔닝이다. 단지형 꿀보다는 고가의, 기존의 소포장 스틱꿀보다는 경험을 중시하는 '꿀빠는시간'은 이렇게 탄생했다. 기존의 꿀들은 건강과 관련한 효능과 생산지 정보와 같은 기능적 부분만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녀는 꿀을 하나의 즐거운 경험으로 소비자들에게 인지시키고자 했다. 시장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던 '푸마'는 거리에서 힙합을 추는 사람들의 니즈에 부합하는 패션성이 강조된 신발을 만들며 재기의 길을 걸었다. 룰루레몬은 운동을 넘어 레저 생활도 즐길 수 있는 '애슬레저' 시장을 새로 만들었다. 가능하다면 새로운 제품이 아닌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일종의 블루오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존재 자체가 차별화된 브랜드만큼 강력한 것도 없다. '블루보틀'이 사랑받는 이유는 기존의 스타벅스와는 전혀 다는 커피 시장을 새로이 열었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말이 이런 용어들이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의사들은 스스로를 차별화하기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콧물과 재채기 같은 용어들을 라틴어로 부른다. 이것이 나쁜 것만은 아닌게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를 주기도 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란 결국 당신이 만든 제품과 서비스의 정체성, 즉 자기다움에 관한 정의를 말한다. 더 쉽게 말하자면 당신이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서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꿀빠는시간'은 번아웃에 빠진 사람들에게 '휴식'을 전하고자 했다. '아이헤이트먼데이'는 월요병에 걸린 직장인들에게 '일상의 즐거움'을 주고자 했다. 결국 사람들에게 정말 전하고 싶은 핵심 키워드가 아이덴티티인 셈이다. 꿀이 아닌 휴식, 양말이 아닌 즐거움이라는 명확한 키워드는 다른 말로 '컨셉'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전문 용어들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기 위해 너무 힘쓰지 말자. 중요한 건 당신이 만들 브랜드를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느냐는 것이다. 프로스펙스는 걷기 열풍이 풀던 시절 러닝화와 비슷한 신발을 만든 후 '워킹화'라고 이름 붙였다. 걸을 때는 달릴 때와 다른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니스프리'는 중저가의 자연주의 화장품에 '제주'라는 컨셉을 부여한 후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다. 백세주는 자신이 술임을 망각하고? 스스로에게 '건강'이라는 컨셉을 부여했다. 만일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여유'라면 어떤 브랜드를 만들더라도 그 제품과 서비스에서든 그 여유를 발견하고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컨셉을 도출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뻔한 순서를 나열하는 이유는 많은 이들이 4번을 시작한 후에야 앞선 1,2,3번을 고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컨셉이 정해지면 브랜드와 네이밍과 로고 디자인, 제품의 패키지 디자인, 가게의 인테리어 디자인 등이 쉬워진다. 홈페이지에 들어갈 콘텐츠들, 홍보 전단과 브로슈어에 들어갈 카피와 멯시지, 스토리들을 일관된 톤앤매너로 명쾌하게 쓸 수 있다. 교대역 근처에 있는 '내인생치과'의 핵심 메시지는 만족이다. 그래서 치료를 마친 초등학생 아이도 무심히 들어와 만화책과 귤을 까먹고 갈 수 있는 친근하고 편안한 병원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두려움을 안고 치과를 방문한 환자들은 '치실'과 같은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일종의 '뽑기' 게임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작고 소소한 장치들은 환자들이 이 병원에서 충분한 만족감을 누리고 가게 하기 위해서다. 빠르고 저렴한 '치료'를 약속하는 병원은 많다. 하지만 병원 구성원과 환자들의 '만족'을 고민하는 병원은 치료시 어른도 안을 수 있는 인형을 준비해 환자에게 건넬 수 있다. 이처럼 명확한 컨셉은 고로와 네이밍, 패키지와 인테리에 디자인에 일종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병원의 카피는 '내 인생 가장 만족한 치과를 만납니다'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 병원의 부부 원장이 나름의 선명한 가치와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크고 예쁘고 화려한 인테리어만으로는 환자를, 손님을, 소비자를, 고객을 이끌 수 없다. '그들만의'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제품을 생산하고 가게를 오픈하면 어떤 사람이든 매일 해야 할 일들에 묻혀 일종의 심리적 아노미(혼란과 무질서) 현상을 겪는다. 당연한 과정이다. 수없이 많은 손님들의 불평 불만, 원료 수급, 말썽 피우는 직원, 매출과 원가 계산, 홍보 전단지 배포, 자잘한 주방의 문제 등을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일종의 테스트 기간이다. 만일 당신이 만들 브랜드가 배송이 가능한 물건이라면 크라우드 펀딩부터 시작해보라 권하고 싶다. 수없이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펀딩은 제품 없이 매출을 일으킬 수 있는 최고의 솔루션이다. 시장의 필요를 확인하는 동시에 제품이 가진 치명적인 결격 사유를 미리 발견할 수 있다. 제품 생산을 위한 소액의 자본을 미리 유치할 수 있다. 자신이 만든 브랜드의 컨셉과 메시지, 스토리텔링이 시장에서도 통할수 있을지를 미리 확인해볼 수 있는 것이다. 홍보는 물론 마니아 고객을 우선 유치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펀딩을 선호하는 고객들은 모험심과 호기심이 많은 일종의 얼리어답터들이다. 이들은 전쟁으로 치면 일종의 선봉대인 셈이다. 이 시장에서도 반응이 없다면 제품을 출시해서도, 가게를 오픈해서도 안된다. 페이스북, 인사트그램, 블로그나 트위터 같은 SNS 채널도 이런 용도로 활용해야 한다. 그저 남들이 하니 나도 유튜브나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절대 가볍게 생각지 말라. 이 작은 전투에서 승리한 사람이라야 목숨 걸고 싸우는 진짜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스몰 스텝'이란 책을 쓴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5명의 찐 독자들을 모아놓고 진행한 소박한 강의였다. 그렇게 만난 우리는 서로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임을 알았고 그 덕분에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수개월에 걸쳐 만나다보니 어느새 이 작은 모임은 1,000여명의 커뮤니티로 성장할 수 있었다. 스위트리라는 동네 과일 가게는 '밴드'를 통해 다양한 과일 정보를 나누고 고객들과 소통을 한다. 어떤 가게 사장님은 맘카페를 집중 공략해 동네 아줌마들의 오빠로 불리고 있다. 어차피 신문, 잡지, TV 광고를 통해 한방에 고객을 유치하는 매스미디어의 시장은 종말을 고하고 있다. 그럴수록 비슷한 취향과 니즈를 가진 충성 고객들을 모으는 일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1,000명의 팬덤을 모은 브랜드는 '생존'을 넘어 '성장'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들은 단지 제품을 팔아주는 고객,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브랜드 런칭 후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사건 사고에 맞서 대신 싸워줄 수 있는 우군이 되어 준다. 거기 좋더라, 너도 한 번 써봐와 같은 바이럴 마케팅의 최전선에서 싸워주는 선봉대가 되어 준다. 돈을 주고 하는 키워드 마케팅보다 이런 팬덤과 커뮤니티 구축에 힘쓰길 바라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힘있는 커뮤니티 구축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앞선 1,2,3번에서 강조한 시장의 필요와 브랜드 아이덴티티, 컨셉의 힘이다. 나와 비슷한 문제 의식, 가치,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야말로 평생 함께할 수 있는 고객이 된다.
그 다음엔 고객들의 다양하고도 리얼한 피드백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뼈 때리는 리뷰를 만날 때면 감사한 마음을 안고 춤을 추어야 한다. 온라인 마켓이라면 노출 대비 클릭수를 확인하고 이른바 좋댓구(좋아요, 댓글, 구독하기) 숫자를 날마다 점검해야 한다. 나는 회사 페이스북을 직접 운영하면서 이런 꼼꼼한 운영이 가진 유익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악성 댓글을 단 사람은 직접 연락하거나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작성하고 반응이 있는 내용들은 확대 재생산했다. 공유할 수 있는 정보들을 정리해 무료로 뿌렸다. 그러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는 다양한 찐팬들도 만날 수 있었다. 심지어 우리나라 최고의 광고 회사, 중앙일간지, 잡지 회사 등에서 인수 의사를 타진해왔다. 재벌그룹의 계열사 사장님은 페북 메시지로, 광고 회사 대표는 트위터로 프로젝트를 제안해왔다. 그리고 이 과정을 뻬곡히 기록해 다시금 컨텐츠로 홍보와 강연의 자료로 활용했다. 말이 쉽지 이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뜻밖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마음을 졸인 날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이 과정을 함께 한 고객들이야말로 브랜드의 가장 큰 자산임을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 브랜드의 정체성을, 컨셉을, 시장과 고객들의 문제의식과 반응을 꼼꼼히 기록하고 정리하고 반영하자. 앞서 나열한 '브랜드여지도'의 여정을 되짚어 보며 더 좋은 길은 없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자. 스마트폰도 GPS도 없었던 김정호 선생님은 맨손, 맨발로 이 일을 해내지 않았던가. 수없이 많은 전문가와 책, 사례들에 둘러싸인 당신이라고 못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이제 지도를 보고 내가 서 있는 위치와 가야할 곳을 쳐다 보자. 매일 새벽 언발을 녹이며 그 기나긴 여정을 나섰을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부디 당신들의 브랜드 여정에 행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