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른 출근 시간,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 안에서 새벽마다 한 목사의 설교를 들었다. 그리고 혼자 감동하며 삶의 의지를 다지곤 했다. 그런데 그 목사가 성추행 혐의로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마음 속으로 눈물을 흘리던 설교는 정작 그 목사가 젊은 성도들을 성추행하면서 만들어진 설교였다. 혼란과 좌절이 몰려왔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목사를 따라 천 여명의 젊은 대학생들이 새로운 교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신촌에 있는 그 교회의 이름은 '홍대 새교회'이다.
(한때 목회자를 꿈꾸었던)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대기업의 부문장으로 일하면서 십 년 넘게 꾸준히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촌철 살인의 이 글들은 널리 회자되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주말마다 올라오는 그의 새 글을 개봉 영화 기다리듯이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쓰여진 그의 글들은 '일의 격'이라는 책으로 묶여져 다시 사람들이 읽히는 중이다. 페이스북의 형태 그대로 편집된 이 책은 두껍다. 화려한 편집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읽고 또 읽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면접 보러 온 사람들에게 한 권씩 나눠주려고 수십 권씩 구매한다고 한다. 왜일까? 왜 사람들은 이 사람, 신수정 부문장님의 글에 열광하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가 리더의 부재에 있다고 생각한다. 꼰대는 넘쳐나지만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지만) 진짜 리더는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에서 진영을 막론하고 온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리더가 있는가? 나는 없다고 본다. 옛날에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믿고 존경할 만한 목사님들이 많았다. 그런 토양 속에서 나는 마음껏 영양분을 흡수하며 혼란스러운 젊은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내가 교만해진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결핍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 신수정 부문장님이 한땀 한땀 써올린 글이 울림이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이 시대, 리더의 결핍을 메워주는 가문의 단비 같은 존재다.
'스브연'에서 그를 모셨다. 강연을 잘 안하시는 분이지만 '작은' 브랜드들이 모인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이셨다 한다. 1시간 반동안 토크쇼를 했다. 책의 말들을 대화로 풀어내는건 또 새로웠다. 그는 상대적으로 기억력이 나빠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게 꾸준히 쓰는 동안 글 솜씨도,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길러졌을 것이다. 그렇게 깨달은 인사이트를 아무런 조건없이 세상과 나누고 있다. 약점을 강점으로 만든 것이다. 스몰 브랜드도 그렇다. 작다는 것은 분명한 단점이다. 하지만 그 작음이 '남다르게' 일해야만 하는 이유가 된다. 그렇게 작지만 차별화된 브랜드가 나올 수 있다. 내가 이 모임을 만들고 끌어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분의 생각이 궁금하면 책을 읽으면 된다. '일의 격', '통찰의 시간' 그리고 최근에 출간된 '거인의 리더십'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제 그를 '직접' 만났다. 한 시간 반동안 수다를 떨었다. 그것은 분명 '남다른' 경험이다. 우리가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런 토크쇼를 진행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이 시대의 살아있는 리더십을 직접 만나는 것은 축복이다. 스몰 브랜드의 리더는 외롭다. 때로는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갈짓자 걸음을 하며 숱한 시행 착오를 거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것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미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핵심 가치,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실천이다. 우리는 그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한 리더를 만났다. 그리고 그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