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의 옛 이야기를 음식에 담다, 무명일기

천 일 동안, 오늘의 브랜드 #166.

1. 내륙에서 4개의 다리를 각각 건너야만 통할 수 있는 영도에는 한국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첫 개항지인 부산항은 항공 운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까지 모든 자원이 드나드는 통로이자 사람이 유일하게 바다를 건널 수 있는 길목이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군화에 짓밟힌 아픔을 간직한 땅이고 6·25전쟁 당시 피란민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돼 준 곳이다. (매거진 한경, 2023.01)


2.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수산업이 쇠락하며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는 빈집과 낡은 컨테이너만이 남았다. 이런 영도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위한 ‘보물섬’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은 5년여 전쯤의 일이다. 부산항에 늘어선 빛바랜 폐공장은 독특한 콘셉트와 커피 맛을 갖춘 복합 문화 공간으로 변신했다. 해안가 절벽을 따라 공·폐가가 가득하던 흰 여울길에는 저마다의 오션 뷰를 자랑하는 카페가 들어섰다. 이들의 공통점은 부산의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맛과 풍경,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데 있다. (매거진 한경, 2023.01)


3. 1959년 부두창고로 만들어진 이 공간은 영도 조선산업의 흥망성쇠를 따라 조선공업소 등으로 변모했지만, 최근에는 폐공장으로 방치됐다. 오 대표는 이곳을 임차해 식음료를 판매하고 생활소품을 전시하며 각종 공연을 개최하는 복합공간으로 변모시켰다. (부산일보, 20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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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복합 문화 공간 ‘무명일기(無名日記)’를 운영하는 김미연 대표와 오재민 키친파이브 대표도 이런 점에 주목했다. 섬이라는 특수성과 근대 산업이 남긴 스토리를 어떻게 하면 영도의 정체성과 연결지을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한식 브런치 메뉴 ‘영도소반’을 개발했다. 정겨운 무명 보자기를 풀면 소쿠리 안에 오밀조밀 담긴 로컬 푸드가 모습을 보인다. 메뉴에 쓰인 대부분의 식재료는 영도에서 나고 자랐다. (매거진 한경, 2023.01)


5. 독특한 식문화뿐만 아니라 공간 자체에도 힘을 썼다. 1959년 부두 창고로 만들어져 부산의 흥망성쇠를 지켜봤지만 폐공장으로 오랫동안 방치돼 사람들의 외면을 받은 공간이었다. 오 대표는 높은 천장고와 레트로한 느낌을 살려 각종 공연·세미나가 개최되는 곳이자 누구나 머무를 수 있는 안락한 공간으로 무명일기를 개조했다. 공간 한쪽에 크게 설치된 스크린은 그날 진행되는 행사와 분위기에 맞춰 다른 그림을 연출해 낸다. (매거진 한경, 2023.01)


6. 조내기 고구마로 만든 크로켓, 봉래산 자락에서 뜯어내 무친 야채 샐러드, 파래와 감태가루를 버무린 멸치 주먹밥, 북어 보푸라기를 활용한 곤드레 주먹밥까지. 동글동글하게 빚어진 음식들이 동그란 바구니에 옹기종기 담겨 내어졌다. 이 음식들의 공통점은 오롯이 부산 영도에서 나는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것.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영도 사람들의 구황작물이었던 재료들이 ‘영도소반’이라는 이름의 한식 브런치 메뉴로 재탄생했다. 영도소반은 영도구 복합문화공간 ‘무명일기’에서 맛볼 수 있다. (주)키친파이브의 오재민(39) 대표가 지난해부터 운영 중인 공간이다. (부산일보, 20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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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영도소반은 부산관광공사가 지원하는 로컬푸드 관광 콘텐츠 공모사업을 통해 탄생하게 됐다. 오 대표는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해주는 영도의 옛날 이야기를 음식에 담아보고 싶었다”며 “음식을 통해 세대가 교류하고, 문화와 이야기가 전승되는 콘텐츠를 만들어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고구마의 국내 최초 재배지가 영도였다는 사실이나, 제주도에 살던 해녀들이 굴곡진 근현대사를 따라 영도에 정착하게 된 사연 등 영도라는 공간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이를 영도소반에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부산일보, 2020.08)


8. 해녀 카르파초에는 제주도 해녀들이 영도에 정착하게 된 사연을 담았다. 일제강점기 해녀들이 육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부산 영도를 거점으로 삼았고 광복 이후까지 이어져 정착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영도 앞바다에서는 정겨운 제주 사투리를 쓰는 해녀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 영도민들의 주 식량이 돼 준 조래기 고구마로 만든 메뉴도 있다. 한국 최초의 고구마 재배지인 영도 조래기 마을의 상징이기도 하다. (매거진 한경, 2023.01)


9. 무명일기라는 공간은 ‘정해지지 않은 일상의 기록’이라는 의미를 담고 싶어서 지은 이름이다. 누군가에게는 카페, 누군가에게는 생활문화상점,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공연장으로 기억될 수 있게 다양한 교류의 장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오 대표는 “대기표를 뽑아가며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는 인스타 맛집이 되기보다는, 지역민의 삶 속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오랜 공간으로 남고 싶다”며 “영도소반을 필두로 이 같은 가치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로컬푸드를 만들어 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부산일보, 20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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