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능 전날 밤 대치동에서 김치볶음밥집 하는 친구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다음 날 새벽 4시, 단 한 사람을 위한 수능 도시락을 싸기 위해 가게에 나간다고 했다. 그에겐 일곱 살 아들 하나만 있다. 그런데 웬 수능 도시락. 게다가 원래 가게 여는 시각은 오전 11시, 심지어 그날은 쉬는 날이었다. 며칠 전 가게에 찾아온 한 수험생 엄마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고3 딸이 수능 날 점심으로 꼭 그 집 볶음밥을 먹겠다고 했단다. 아이는 미술을 전공하는 예고 3학년생이었다. (조선일보, 2020.12)
2. 그에게 물었다. 그렇게까지 한 이유가 뭐냐고.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정작 위로받은 사람은 나였어. 가게 문 열어 놨는데 손님 하나 없이 휑한 것만큼 대책 없을 때도 없거든. 코로나가 가게를 삼켜버렸을 때, 그 아이가 온 거야. 우린 어쩌면 피난처로 함께 대피한 무언(無言)의 동지였을지 몰라.” 말 한마디 없었지만 가게 주인은 따스한 한 끼로, 아이는 존재 자체로 서로의 마음을 데우는 작은 모닥불이었다. (조선일보, 2020.12)
3. ‘미스꼬레아’의 창업자인 백래혁(40) 임진영 씨(41·여) 부부는 창업 전까지 나름대로 탄탄한 회사에서 일했다. 임 씨는 외국계 영화사에서 영화 라이선싱 업무를 해 왔다. 사회생활 15년 차. 직급은 부장이었다. 백 씨는 외국계 금융사에서 법인 자산운용을 담당하는 수석 컨설턴트였다. 두 사람이 받던 연봉은 남들이 들으면 입을 벌리고 부러워할 수준이었다. (동아일보, 2016.01)
4. 부부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동문이다. 부인 임씨가 2년 선배다. 임씨는 대학 졸업 뒤 드라마 제작 회사에 입사해 기획과 판매를 담당했다. 이어서 디즈니와 소니 등 한국에 진출한 외국 영화사에 스카우트됐다. 연봉은 1억원 가까이 됐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자신이 영업을 잘해 매출을 올리면 올릴수록 외국회사에 이익을 주는 일이었다. (한겨레, 2015.08)
5. 3년 전 우연히 남편과 노량진 학원가를 갔다가 인기였던 ‘컵밥’을 맛보았다. “순간 진짜 인생을 걸 만한 일이 떠올랐어요. 바로 한국음식을 푸드트럭을 통해 전세계에 전파하는 일이죠. 남편에게 이야기하자 적극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메뉴는 김치볶음밥으로 정했다. 가장 한국적인 음식이기 때문이다. 가마솥에서 바로 볶아준다는 것을 강조하기로 했다.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니는 남편도 발 벗고 나섰다. (한겨레, 2015.08)
6. 임씨는 그때부터 짬짬이 김치볶음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묵은지를 써보기도 했고, 막김치를 넣어보기도 했다. 마늘 등으로 소스를 만들고, 볶는 순서를 바꿔보기도 했고, 버터와 식용유를 고루 써보기도 했다. 가게 이름은 ‘미스 꼬레아(Miss Corea) 김치볶음밥’으로 정했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를 겨냥했다. 식당차에 파리, 시드니, 뉴욕, 베이징,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세계 도시 이름을 새겨넣은 이유다. 마침내 지난해 연말 임씨는 직장에 사표를 내고 올해 3월부터 길거리로 나섰다. 창업에는 4천만원이 들었다. (한겨레, 2015.08)
7. 운전도 서투른 임씨가 직접 트럭을 몰고 다니며 장소 물색에 나섰다. 학원가가 즐비한 서울 대치동이 눈에 들어왔다. 저녁시간에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은 편의점에서 사 먹던 삼각김밥이나 샌드위치가 아닌 ‘집밥’ 느낌인 김치볶음밥에 줄을 섰다. 세 끼를 내리 사 먹는 친구들도 있었다. 학부모들에게도 소문이 나 사가곤 했다. 하지만 제법 장사가 되는 듯하자 인근 상인이 신고했다. “벌금 40만원을 물었어요. 이제는 못 가요.” 임씨는 자신이 만든 김치볶음밥을 맛있게 먹던 청소년들이 눈에 밟힌다. (한겨레, 2015.08)
8. 서울을 뱅글뱅글 돌았지만 차를 세우고 영업을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지막 행선지로 택한 곳은 대학로. 일요일의 대학로는 데이트를 나온 연인과 젊은이들로 붐볐다. 이곳에서도 30분을 돌다 세 사람은 마침내 차를 멈췄다. 대학로에서 성균관대로 올라가는 작은 골목. 서로의 얼굴을 보며 조용히 “파이팅”을 외친 뒤 이들은 처음 준비할 때의 꿈을 떠올렸다. 미국과 유럽의 거리를 누비며 푸드트럭에서 김치볶음밥을 선보이는 자신들의 모습이었다. (동아일보, 2016.01)
9. “편하게 사무실에서 일하다 직접 온몸으로 세상에 부딪치는 건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어요. 추위와 더위부터 사회의 멸시, 냉정함, 가혹함을 절실히 느꼈어요.” 하지만 임씨는 그보다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세계로 진출하겠다는 꿈이 있고 매일 만나는 인연을 통해 그 꿈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부부는 배고픈 이 땅의 아이들에게 무료로 밥을 제공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한겨레, 2015.08)
10. 사실 그에게 2020년은 혹독한 해였다. 명문대 출신 전문직 맞벌이였던 그는 아내와 함께 6년 전 잘나가는 직장을 관두고 김치볶음밥 전문 푸드트럭에 도전했다. 매스컴도 꽤 탔다. 사업을 불려 1년 전 호기롭게 대치동에 매장을 냈는데 느닷없이 코로나란 암초가 나타났다. 매출은 수직 낙하. “우산 없이 언제 끝날지 모를 소나기를 하염없이 맞고 있는 기분”이란다. (조선일보, 2020.12)
11. 페이스북(facebook.com/missgamasot)을 통해 푸드트럭을 본 노르웨이의 한 페친은 현지에서 합작을 하자고 제의하기도 했다. 임씨가 김치볶음밥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넓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자신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백씨는 이런 임씨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앞으로 크라우드펀딩 등의 방법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전통과 첨단이 결합해 글로벌하게 진출하는 사례를 꼭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한겨레, 2015.08)
* 내용 출처
- https://bit.ly/43Mavf4 (한겨레, 2015.08)
- https://bit.ly/43NeZlt (동아일보, 2016.01)
- https://bit.ly/42MimYE (조선일보, 20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