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수년 만이다. 당근 앱을 말끔히 지웠다. 이유는 간단하다. 좋지 않은 경험들이, 원치 않은 경험들이 자꾸만 쌓여서다. 얼마 전 새제품에 가까운 아이패드를 올렸더니 온갖 채팅들이 올라온다. 그냥 찔러만 보는건 그렇다 치자. '네고 사양'을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멋대로 가격을 깎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심지어 구매자가 자기가 있는 곳으로 와달란다. 마치 내가 큰 맘 먹고 사주겠다는 뉘앙스다. 아무리 중고라지만 15만원 이상 깎아주면서 이런 대우를 받으면 화가 난다. 아예 돈이 모자란다고 애원하는 사람도 있다. 약속을 잡아놓고 한 시간 전에 취소하기도 한다. 물건 하나 팔기 정말 힘들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카메라를 팔 때였다. 비교적 싼 가격에 올렸더니 아주 먼데서 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다. 문제는 충전기 같은 악세서리의 정품을 하나 하나 만지면서 가격 흥정을 새로 하는 거다. 안팔겠다고 자리를 떴더니 덜컥 내 카메라를 잡는다. 그리고 그 후로 한 시간 동안 남의 물건을 잡고 놓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멀리서 왔으니 그냥 갈 수 없다는 거다. 결국 경찰을 불러 자리를 뜨는데 세상에 다시 못들을 욕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건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광기였다. 나는 그때 당근을 진즉에 끊었어야 했다.
당근은 원래 그런 앱이 아니었다. 와이프가 안쓰는 물건을 나누는, 그러면서 커피 한 잔의 예의를 지키는 사람들의 교류의 장이었다. 당근 거래에 얽힌 따뜻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하는 지금의 당근은 그런 모습이 없다. 무례함과 무모함이 당연한 듯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한 번은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내 물건을 힐끗 보고 던지듯 떠난 사람도 있다. 딱히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런 모멸감은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게다가 당근은 동네 제한이 있어서 중고나라보다 중고 가격대가 비교적 낮게 책정된다. 동네 사람이라서 가능했던 따뜻한 거래는 어딘가 사라지고 질 낮은 흥정만 남았다. 내가 당근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이유는 바로 이런 좋지 않은 '경험'들이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갤럭시와 아이폰의 최신 모델을 함께 쓰고 있다. 두 제품은 정말이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소프트웨어가 주는 감동은 아이폰을 따라갈 길이 없다. 아이패드와 맥으로 연결되는 연동성은 단순한 편리함 그 이상이다. 물흐르듯 기기를 넘나들며 두 번 고민하지 않게 만든다. 반면 갤럭시는 하드웨어의 유용함에서 아이폰을 압도한다. 갤럭시를 들고 다니면 지갑이 필요 없다.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커피를 주문하는 동안 스마트폰 하나면 다른 고민이 필요 없다. 그야말로 한손에 자유를 허락한다. 그에 비해 묵직한 아이폰은 혹시 몰라 지갑을 들고 다녀야 한다. 갑자기 버스에서 내려야 할 때 허둥거림은 경험해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갤럭시는 그런 내게 안심과 자유를 준다.
요즘의 브랜딩은 '경험'의 질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경험'하는 그 무엇은 우리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다. 그런 경험이 비단 IT 서비스에 국한될리 만무하다. 길거리 음식 하나 사먹을 때도 우리는 오감으로 그 브랜드를 '경험'한다. 터키 아이스크림 장수가 왜 사랑받겠는가. 정치 얘기를 하는 택시 기사를 극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고객 경험의 여정을 설계한다. 그 브랜드를 인지하고 구매하고 후기를 쓰는 그 순간의 모든 과정에 좋은 경험을 담으려고 애를 쓴다.
어느 나이 든 공무원은 틈만 나면 가그린을 한다고 한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공무원이라면 다른 일도 그렇게 깔끔하게 해내지 않을까? 내가 어느 가게를 가든 화장실의 위생 상태에 민감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화룡점정. 기분 좋은 경험 하나가 그 브랜드를 선택하게도, 거절하게도 한다. 그러고보면 브랜딩은 참 '인문학'적이다.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절대 좋은 경험을 설계하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문득 오뎅 한 접시에 만 원을 받던 지역 시장의 못된 인심이 생각이 난다. 아마 그 사람은 그런 모습이 유튜브를 건너 티비 뉴스에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그런데 우리는 이미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런 엄격함의 잣대에서 그 어떤 브랜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겐 기회가 되고 또 누군가에겐 위기가 될 것이다.
p.s. 결국 그 아이패드는 이번에 대학에 입학한 친구 아들에게 선물로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