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번은 와이프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신 친구들은 당신을 뭔가 한 수 아래로 보는 것 같아" 그때만 해도 그 말이 가지는 정확한 의미를 내가 제대로 알고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우울증, 낮은 자존감, 겸손을 넘어선 자기 비하... 이런 것들이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을 때였으니까. 그러나 그런 친구들 중 한 명은 내가 사는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 짐작컨대 어느 순간 자기보다 잘 나가는? (그래봐야 이 역시 그 친구의 착각에 불과하지만...)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대다수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진짜 모습과 대면하는 일은 언제나 결코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어제의 어떤 만남도 그런 의미에서 내게 또 한 번의 작은 충격을 준, 아니 아주 큰 깨달음의 시간이었다.
브랜드 강의로 알게 된 한 대표님이 있다. 이 분이 소개해준 또 한 사람이 있다. 아주 짧은 만남이지만 인상 깊은 기억 덕분에, 그리고 실제적인 도움 덕분에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이들에게 저녁을 대접하기로 했다. 그런데 앞서 소개한 이 대표님은 조근조근하고 따뜻한 분이지만 한 번씩 직설을 날릴 때가 있다. 이 분이 그 날도 내게 아껴둔? 한 마디를 내게 전하셨다. "그런데 대표님은 왜 그렇게 스스로를 낮추는지 모르겠어요. 과거에 매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저런 얘기가 오고 갔지만 핵심은 한 가지였다. 큰 사업을 하기에는 너무 예민하고 남을 의식한다는 것, 그릇이 지나치게 작다는 것, 한 마디로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 말을 듣고 나자 최근에 겪었던 마음의 어려움들이 마치 퍼즐 맞추듯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렇다. 여전히 나는 '박요철'이라는 브랜드를 잘 모르고 있었다. 내가 나를 가장 모르면서 남들에게 '자기다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스브연이란 모임을 하고 있다. 브사세란 이름으로 무료 브랜드 수업도 하고 있다. 두 모임 다 비교적 건실하게 그 꼴을 갖춰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이 활동들로 인해 가끔씩 마음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열정 페이, 무료 수업으로 인한 상처다. 좋은 마음으로 모임을 시작했다. 의미와 보람을 느끼고 일련의 활동들을 하고 있다. 나는 수익을 생각하지 않는 내 마음을 모두가 알아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적어도 몇몇 사람에겐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야겠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이 제대로 평가받는게 두려워 '무료'와 '열정페이'의 커튼 뒤에 숨었었는지도 모르겠다. 돈을 못 벌어서 억울하다는게 아니다. 나는 당당하게 일하고 그에 맞는 보수와 대가를 받는 것에 비겁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그것이 나의 수준이자 가치이자 기대치임을 간파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점을 애써 눈감아오고 있었던 셈이다.
스브연은 입회비로 49만원을 받는다. 이 비용으로는 강사비와 활동비를 겨우 맞추는 수준이다. 그런데 비슷한 모임을 하는 어떤 모임은 스무 배 넘는 비용을 받는다. 그런데 나는 그 차이가 과연 어디서 나오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 비용이 과하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런 비용을 제시할 수 있는 이름값, 유명세, 설득력... 이른바 마케팅과 브랜딩의 차이에서 오는 실력 차이를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가치를 확인받는건 결국은 돈이 아니던가. 그런데 나는 그런 차이에 눈 감은채 단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브사세 수업만 해도 그렇다. 왜 나는 유료 서비스에 저항?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그토록 서운하고 화가 났던 것일까. 1년에 24번의 무료 수업을 약속한 내가 아니던가. 수업을 시작한 이유가 어찌 되었건 사람들은 어쩌면 딱 무료 만큼의 기대를 하고 그 시간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유료 워크샵을 제안하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더 정확히는 돈을 받고 수업을 한다는 것, 그 가치를 요구하지 못했던 것은 나의 확신과 용기의 부족이지 그들의 잘못이나 오해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하는 모임이나 수업을 듣고 계신 분들은 오해 없으시기 바란다. 이건 나의 가치와 확신에 관한 이야기지 돈을 못 벌어 속상한 사람의 푸념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모임과 수업 때문에 창출된 2차 수익이 결코 만만치 않다. 나이 50에 혼자 일하면서 반 년만에 1억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내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가치는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따라주는 사람들에 대한 가치 평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나의 그릇의 크기가 내가 하는 모임, 앞으로 내가 할 사업의 규모와 직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입버릇처럼 '작은 브랜드를 돕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과연 나의 그릇은 남을 도울만한 크기의 그릇일까? 어쩌면 뜬구름 같은 구호와 생각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모임의 운영진에게 스브연의 활동들을 사업화하기로 선언한 상태다. 좀 더 규모있게 체계적으로, 필요하다면 후원과 투자를 받아서라도 작은 브랜드를 돕는 일들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런데 나는 과연 그런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일까.
중요한 것은 100여 분의 사람이 내 생각과 취지에 동의해 이 모임에 함께해주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돈의 액수를 떠나 그것은 매우 중요한 가치를 담은 행동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기대에 호응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일련의 활동들을 통해 그 작은 가능성들을 확인하고 있다. 초청 강연을 하고, 네트워크 모임을 하고, 개인 컨설팅을 하면서 확인한다. 나는 그들을 도울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을 연결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시작은 작았으나 그 끝은 창대한 브랜드들에 대한 기대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 방법과 솔루션들도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있다.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걸 느낀다. 동네 과일 가게가 , 동네 병원이 달라지고 변화하고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매일 느끼고 있다. 문제는 내가 이 기운과 아우라를 유지하고 이어갈 수 있을만한 그릇의 사람이냐는 것이다. 나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 이 일을 끌어갈 수 있다면 언제든 키를 넘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다면? 나는 이 모임의 미래에 맞는 크기의 사람이 반드시 되어야만 할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길을 가게 될지는 오로지 하늘에 맡길 일이다.
나의 바람은 간절하다. 내 나이 50이다. 피크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10년, 길어도 20년 정도가 아닐까? 그리고 이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내 나이 서른에서 50이 되기까지는 아주 잠깐이었다. 앞으로의 20년의 시간은 더 빨리 흐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시간들을 아주 소중히 다루고 싶다. 나의 역량을 넘어선 일에 나설 용기는 없다. 그러나 나의 가능성에 비해 초라한 성과로 만족하는 건 더 싫다. 성경은 말한다. 씨앗을 숨겨두지 말고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로 남기라고. 나는 여전히 꿈꾼다. 아주 작은 브랜드들이 100배, 200배의 성장을 거두며 사람들에 더 많은 선택지와, 만족과, 가치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동네 과일 가게를 해도 대기업 임원만큼 벌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오해나 불만 없이 각자의 가진 가치를 떳떳하게 나눌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그런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 믿는다. 어쩌면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은, 미션은, 비전은 이처럼 다양한 삶의 가치와 태도와 선택이 존중받는 세상일지 모른다. 문제는 내 생각과 선택의 크기다. 나는 과연 이러한 꿈을 꿀 만한 크기의 그릇을 가진 사람인가. 과연 그러한 생각의 크기를 감당할 만한 사람인가. 적어도 한 동안은 이 고민에 대한 답을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언젠가 만날 사람들에게 기꺼운 마음으로 털어놓고 고민해보아야겠다. 신이 내게 허락한 최고의 답을 찾을 때까지. 물론 그동안 벌여온 일들은 더욱 열심히 하면서 말이다.
p.s. 모쪼록 그 답을 빨리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